도시에서 이동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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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이동한다는 것은?
  • 김나현 용인대·국문학
  • 승인 2024.03.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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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도시 모빌리티와 도덕성: 도시의 기술과 철학』 (셰인 엡팅 지음, 김나현 옮김, 앨피, 302쪽, 2024.01)

 

도시에서의 이동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기술의 혁신으로 우리는 이 복잡한 도시를 점점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게 되었고 자유로운 도시 모빌리티는 그 자체로 도시의 번영을 상징한다. 반짝이는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첨단 기술의 자동차.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동차 광고가 보여주는 이 전형적인 이미지야말로 현재 도시 모빌리티의 성취점을 가장 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도시 모빌리티 문제를 기술 유토피아적 관점에서만 사유해도 괜찮을 것일까?
 
고도 모빌리티 시대에 도시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되묻는 책이 바로 『도시 모빌리티와 도덕성』이다. 저자 셰인 엡팅(Shane Epting)은 미주리과학기술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윤리적인 도시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며 도시 철학 및 교통 정의를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도시 모빌리티 문제를 철학적 사유로 점검해보며 도시 교통수단에 얽혀있는 도덕적 문제들을 하나씩 제기한다.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집과 학교 혹은 일터 등으로 이동해야만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가야만 하는 그곳으로 과연 어떻게 이동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책은 도시 교통 시스템의 이면에 있는 사고 패턴을 드러내어 도시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도시 모빌리티의 도덕성 문제를 사유하기 위해 저자가 우선 제안하는 것은 부분전체론적 사고방식이다. 철학의 한 영역인 부분전체론(mereology) 개념을 도시 모빌리티를 보는 일종의 렌즈로 차용하여, 교통 시스템을 크고 작은 부분들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로 놓은 뒤 각 부분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여러 단위의 부분들의 네트워크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부분전체론적 사고방식으로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검토하면, 예컨대 고속도로 신설 및 철거 문제나 출근길 도로 정체 등의 문제는 교통 시스템 상 특정 ‘부분’의 배치 문제로 환원된다. 엡팅은 단일기술포화(mono-technical saturation) 혹은 다중기술분산(poly-technical dispersion)이라는 개념으로 도시 교통 시스템의 문제들을 재사유함으로써, 이 문제가 기술적인 문제인 동시에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교통 시스템을 부분전체론적으로 사고했을 때 도로와 차량은 물론 관련 법률, 행정 조직 등은 모두 교통 시스템을 이루는 하나의 ‘부분’으로 간주되는데, 이때 도시에 거주하며 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역시도 ‘부분’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물론 조금은 특별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도시를 스스로 돌아다니고 교통 시스템을 구성하는 다른 부분들을 직‧간접적으로 작동하고 이용하며 움직이고 있으며 필요한 정책을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중심적 사고로 무책임하게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확장해가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야생동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도시 모빌리티를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만도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안하는 중요한 요점 중 하나는 도시 모빌리티를 둘러싼 시급한 쟁점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엡팅은 소외된 취약 계층, 공중(public), 비인간(nonhuman), 미래 세대, 도시 인공물 등과 같은 여러 이해관계 그룹을 나눈 뒤, 교통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도덕적 우선순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통 시스템의 부분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추가하고 수정할 것인가의 문제에 인간중심주의 혹은 생태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순서’라는 개념적 장치를 활용하여 조정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오류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엡팅은 도덕적 순서화와 ‘약한 인간중심주의’를 통해 도시 모빌리티 문제에 도덕적 차원, 즉 철학을 도입한다.

흔히 상상하는 대로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날아다니는 자율주행차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도시를 누비게 될까? 그러나 미래를 낙관하기 전에 현재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 인접지에 사는 아이들은 피할 길 없는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고, 쾌적한 모빌리티 선택지가 없는 취약 계층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과시간의 절반 이상을 파트타임 직장을 오가는 데에 쓰고 있다. 또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발생한 ‘로드킬’은 15만 건이 넘는다. 이제는 빠르고 효과적인 모빌리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동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이 책은 교통 정의라는 시급한 과제를 환기하며 도시 모빌리티에 대한 가장 현재적인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 책을 통해 도시의 기술과 철학, 그리고 모빌리티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만나보기 바란다.

 

김나현 용인대·국문학

현재 용인대학교 용오름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80년대 문학 연구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모빌리티 인문학과 정동 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모빌리티 인문학 서적인 『모바일 임모바일 2』, 『모빌리티와 푸코』, 『도시 모빌리티와 도덕성』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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