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에서 일으킨 물결 … 〈한일고금비교론〉 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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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일으킨 물결 … 〈한일고금비교론〉 ⑰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4.03.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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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본 미술 이야기를 더 하기 위해, 말머리를 멀리서 가져온다. 福岡(후쿠오카) 아시아문화상을 받고 강연을 할 때, 동경대학 인류학교수 伊藤亞人(이토아비토)가 토론자로 왔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어를 잘하는 분이다. 

한국인은 방송극을 보니 부부 싸움도 논리적으로 하는데, 일본인은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는 말했다. “일본은 미술이 대단하다. 좋은 그림이 많고, 그림 좋아하는 것을 부러워한다.”

일본 그림은 중국이나 한국과 공유한 동아시아의 관례를 넘어선 독자적인 세계를 江戶(에도) 시대의 浮世繪(우키요에)에서 이룩했다. 浮世(우키요)는 덧없는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해서 하는 말이다. 갖가지 방식으로 즐기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담하게 그린 유키오는 활력이 넘쳐 충격을 준다. 작가와 작품이 아주 많았다.

목판에 새겨 찍어낸 것을 팔았으므로, 원본이 따로 없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대단한 장점이었다. 작가도 구매자도, 작품 속의 사람들도 町人(쪼우닌)이라고 일컬어지던 시정의 상인이나 수공업자였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다면적인 창조력을 보여주며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한 것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수 있다.   

廣島(히로시마)에 갔다가 우연히 우키요에의 대가 葛飾北齋(카스시카 후쿠사이) 특별전을 보고 대발견을 했다. 일본에서 가장 높아 숭앙을 받는 富士山(후지산)의 모습을 원경에 두고 근경에다 당시의 풍속화를 다채롭게 그렸다. 화가가 살았던 당시 사람들이 노동하고 생산하고 사회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한 단면씩 다양하게 선택해서 그린 목판화 연작이, 36점도 있고 100점도 있는 것을 전시했다.  

마음속으로 비교고찰을 하면서 다시 바라보았다. 풍속화만이어서 동시대의 다른 거장 金弘道나 고야(Francisco Goya)보다 폭이 좁다고 할 수 있으나, 풍속의 소재는 더욱 다양하고 묘사가 세밀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멀리 있는 명산을 불변하는 정신의 상징으로 삼고 별의별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에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을 알려주었다. 

후쿠사이를 비롯한 여러 우키요에 화가들의 그림이 서양 특히 불국에 전해져 대단한 평가를 얻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다투어 모방했다. 일세를 풍미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말이 적절하다. 아주 생생한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불국 파리에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Musée Marmottan Monet)을 찾아갔다가, 그 윗층에 모네가 수집한 우키요에가 아주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우키요에의 인기는 K-pop과 흡사했다. 韓流와 대칭되는 말이 필요해, 일본을 뜻하는 말 和를 사용해 和流(와류)라고 하자. 아무도 쓰지 않은 이런 용어가 있어야 한일문화 비교론을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를 두고, 타당하게 전개할 수 있다. 

와류와 한류를 비교해 고찰해보자. 일본은 미술의 나라여서 미술로 와류를 이루고, 한국은 음악의 나라여서 음악으로 한류를 이룬 것이 당연하다. 양쪽 다 자기 장기를 살려 유럽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그 의의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와류는 끝을 보여주었다. 19세기 말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잠잠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 의문을 풀면 21세기에 일어난 한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와류와 한류의 비교 고찰을 확대해, 한류의 미래 예견에 도움을 얻어야 한다.

와류가 잠잠해진 것은 무슨 까닭인지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일본이 脫亞入毆(탈아입구)해 우키요에를 모방한 인상파 그림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상적인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없다. 그 증거가 倉敷(쿠라시키) 大原(오하라)美術館에 가보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오하라라는 부호가 兒島虎次郎(코지마 토라지로우)라는 화가를 불국에 보내 공부시키고, 그림을 수집해 오라고 해서 그 미술관을 세웠다. 거기서 일본과 유럽 미술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코지마의 그림이 건물 한 채를 차지하고 전시되어 있는데, 무엇을 그렸는지 얼른 알기는 어렵다. 더덕더덕 발라놓은 물감이 눈에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다. 불국에서 인상파 그림을 배우고 본뜬 것이 그렇게 되었다. 다른 건물에서 전시하고 있는 모네를 위시한 몇몇 화가의 본바닥의 인상파 그림은 물감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햇빛이 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풍경만 보이는 것과 아주 다르다. 

일본의 근대 서양화는 수준 이하의 모방작임을 알리느라고, 많은 돈을 들여 미술관을 지었다. 모방작은 얼마나 초라한지 분명하게 알리려고 하는지, 본바닥 그림과 대조해 보게 한다. 서양 모방이 일본을 망하게 했다. 삶의 활력도 예술이나 학문의 창조력도 잃어버리게 했다. 이런 사실을 그림에서 잘 보여준다.

모방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말을 해야 논의가 더 분명해진다. 차용모방은 하면 일을 더 잘해, 위로 올라간다. 추종모방은 하던 일에 차질이 생겨, 아래로 내려가도록 한다. 불국의 우키요에 모방은 차용모방이어서, 위세를 키웠다. 일본의 인상파 그림 모방은 추종모방이어서, 위축을 초래했다. 두 가지 모방의 차이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 

한류 K-pop에는 서양 노래의 차용모방이 많다. 그것들까지 활용해 한국인의 장기인 신명풀이를 걸판지게 하니, 세계 도처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으로 동참하고자 한다. 그 어느 쪽의 모방이 역수입될 가능성은 없다. 한류 물결은 여러 겹이라, 많은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여러 영역에서 각기 자기 일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해 신명나게 하면서 많은 성과를 이룩한다. 나는 내 장기를 살려 이 글을 비교론을 포함한 한일고금 비교론을 전개한다. 신명풀이의 원리를 밝히는 대등생극론을 정립해 철학의 새 역사를 창조하고자 한다.    
 
논의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葛飾北齋와 兒島虎次郎를 비교해보자. 이 둘은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일본 미술이 어떻게 해서 그처럼 아주 달라졌는가 하고 길고 복잡하게 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명백한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일본은 유럽을 따라가 후진이 선진이고자 하다가, 그 반대의 결과에 이르렀다. 높이 평가되어 모방의 대상이던 장기를 잃고, 선진이 후진이 되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이런 희극이 세계사에 더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 것은 아니고, 역사 전개의 숨은 원리를 찾아내는 데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도 뒤떨어졌다고 한탄하면 우습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고, 슬기로운 변신을 해야 한다. 잠재 능력을 살리며 후진이 선진이 되어, 일본의 실패까지 바로잡는 작업을 더욱 넓고 높게 해야 한다. 신명풀이는 대등론의 실현이다. 패권을 장악하고 침략을 일삼는 차등론을 대등론으로 바로잡는다.

한일 양쪽은 널리 퍼지는 물결을 일으킨 것이 같다. 물결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 서로 다 구실을 했다. 일본의 와류는 실패로 끝나, 한국의 한류가 그 상처까지 회복하며 세계사의 전개가 바람직하게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책임이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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