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만화가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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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만화가를 회상하며
  • 서철원 서울대·고전문학
  • 승인 2024.03.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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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오공이 있어서 즐거웠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로 유명했던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화백이 세상을 떴다. 하필이면 한일 양국에 모두 뜻깊은 3.1절에 떠났다. 그의 역작 <드래곤볼>이 주인공 손오공과의 시간이 즐거웠다는 짤막한 말로 끝맺었듯이, 이제 그의 독자들 역시 그가 주었던 즐거움을 담백하게 되새겨야만 한다. 그래, 슬퍼하기보다 즐거워해야겠다. 외국의 어느 대통령조차 그를 추모했다는데, 추모와는 좀 다른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는 처음엔 한국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지금이야 움직이는 애니메이션보다 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술 동작을 정지된 종이에 옮겨놓은 신묘한 박력으로 이름난 작품이지만, 아직 개념을 확고히 잡지 못했던 연재 초반 상당 부분에는 원작 『서유기』를 패러디하며 화장실 개그와 야한 농담을 주고받는 가벼운 내용이었다. 어느 신생 만화잡지가 주목받기 위해 이 작품을 일본과 약간의 터울을 두고 한국에서 연재했는데, 청소년이 주 독자층이었던 잡지에 야한 내용과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에 뜻있는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저질 일본 문화를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 무렵은 일본 대중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이전이었다. 아니, 불량만화를 모아 화형하곤 했던 시절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았다. 한국 사회의 만화에 대한 편견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문화 혐오와 그리 다를 것도 없었다. 아기공룡 둘리가 사람이 아닌 공룡으로 등장했던 이유가 그런 악동이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흉내를 내니까, 그런 짓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하는 것으로 설정해야 했다는 괴담(?)이 한낱 뜬소문이 아닌 것처럼 비치곤 했다. 요컨대 만화는 건전해야 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교과서만큼 정확해야 했으며, 만화 속의 악당도 선을 절대 넘지 않고 예의 바른 모범생만 주인공 자격을 주었다. 그래도 만화가 법적으로 예술도 아니었던 때였다.

우리는 그런 만화라도 읽으며 꿈과 상상력을 키웠던 세대였다. 아니, 그런 만화에서 한글을 깨치고 맞춤법을 배워 필자는 결국 국어 선생 비슷한 무엇이 되었다. 그렇게 굴레를 뒤집어쓰고 안팎의 어려움을 버텨낸 과거의 한국 만화가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아무튼 많은 이들이 건전해야 한다는 압박과 검열의 부담에 시달렸던 ‘자유’ 한국의 분위기에서, <드래곤볼>을 비롯한 일본 만화의 표현 수위는 큰 충격이었다. 토리야마는 우리가 만난 첫 일본 만화가는 아니었지만, 아무 서점에서나 쉽게 살 수 있었던 만화잡지에 일본 만화가, 그것도 검열로 삭제한 부분도 없는 모습으로 찾아왔던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화장실 개그는 <시티헌터>라는 다른 만화가, 폭력적인 묘사는 무려 ‘동경대 선정 우수 도서’라는 기이한 문구를 표지에 달고 나타났던 <북두의 권>이 한 수 위였다. 그렇지만 <드래곤볼>은 이들보다 약간 이르게 수용되어 일본 만화는 폭력과 성에 대한 묘사가 상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세기말의 불안과 I.M.F. 시대의 절망이 이어지며, 어느덧 한국 만화도 점차 건전함의 굴레를 조금 덜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 대중문화도 개방되어 한국 문화에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토리야마의 만화를 이런 개방의 직접적인 계기라 해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어른들이 시키는 건전한 모범생만이 유일한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 세대에 일깨워 주었다. 특히 문화는 다양해야 살아난다는 점을, 그 당시 일본 문화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며 절감했던 것 같다.

시선을 좀 바꿔본다. 지금도 한국학에서 소중하게 대하는 화두로 동아시아에 대한 것들이 바로 이때부터 쟁점이 되었다. 토리야마를 필두로 일본 대중문화를 공식적으로 수입하게 되었고, 지금과는 달리 중국과의 무역이 한국의 한 성장 동력으로 기대받던 시절에 떠올랐던 화제였다. 그런데 그때 동양학이라고 불렀던 게 기실은 중국학이었던 것처럼, 우리 전공에서 동아시아 담론이라고 불렀던 주제들의 상당수가 중국에 치우쳤거나 한중 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따금 한일 사이의 비교도 더러 있었지만, 더러는 우열 관계를 밝히겠다며 치우친 시각을 취하기도 했다. 어떤 단행본에서는 일본의 콘서트홀이나 야구장은 조용히 감상하며 응원해서 흥이 없지만, 한국은 크게 환호하며 호응하니까 역시 흥의 민족이라기도 했다. 민족이란 말이 급기야 이렇게도 팔릴 지경이 되었는가 싶지만, 한국 역시 건전한 모범생을 지향했던 그 시대에는 관객의 호응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출연한 외국인 가수가 주한 미군 출신이라 소개하면 약간 환호하고 손뼉 치는 정도였다. 모든 동아시아 담론이 이런 소박하고 작위적인 비교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특수한 한국적인 무언가를 – 예전엔 이 ‘무언가’를 민족혼이라 부르기도 했다. - 학문의 목표로 삼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이 된다. 이 제약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학의 자기 검열의 한 수단이었던 듯하다.

위기의 한국 인문학을 구할 단 하나의 방법론이 동아시아 담론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에 다들 크게 공감했다. 한국문학의 장르론이니 율격론이니 하는 것들 역시 외국 이론에 맞지 않는 한국적인 면들을 오히려 그 특수성에 주목하고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새로운 이론이란 것들은 고작 외국 이론의 번안이거나 의도적 오역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때로는 기적적이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서 가장 세계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다들 공감하고 그 성과가 절실했다. 그래서 세종계획이니 두뇌한국이니 하며 연구비와 장학금이 조금씩 생기고, 한국적인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일에 시선이 쏠렸다. PC 통신과 인터넷에는 한국적인 판타지를 창조하겠다는 야심가들이 웹 소설의 조상님쯤 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몰락해 가는 국어국문학 전공이 콘텐츠나 스토리텔링으로 눈을 돌리곤 하는 인연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나 보다.

그런 과정에서도 역시 일본 만화며 콘텐츠를 이래저래 참고했다. <이누야샤>처럼 동물 요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의 성공에서 한국의 신이나 요괴로 이런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껴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고전에도 『삼국유사』 이래로 비슷한 캐릭터가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칫하면 겉옷만 한국이고 일본을 흉내 낸 결과가 나오곤 했다. 일본 게임을 베꼈다는 평가를 받았던 초기 한국산 게임 가운데는 오히려 한국적인 소재를 채용한 사례가 많았다. 이 아이러니는 어쩌면 한국식 <이누야샤>를 기다리고 바랐던 그 아쉬움에 응답한 것처럼 보인다. 근래에는 유럽에서 한국의 남존여비 풍습이나 구미호 전설로 게임을 만들곤 한다. 한복이나 한옥 등 물질문화에 대한 고증은 철저하여 훌륭하지만, 결국은 한국식이 아닌 유럽식 줄거리와 주제를 지녔다. 일본풍 중화요리가 결국 일식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작 K-문화의 성공은 한국적인 것에 퍽 절박했던 저런 시도들과는 딱히 얽혀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외국에 K-팝의 인기가 상당하고 한국 관련 강연이나 수업에 수천 명이 모인다고 하니, 국어국문학 전공도 여기에 가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문화를 저들에게도 알리고 가르치자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난감하겠다. 그런 건 뭐든지 김치에 싸 먹어보라는 강요처럼 느낄 만하다. 저들이 좋아할 만한 걸 간추리고 맞춰주자는 식도 아니다. 그들이 좋아할 만한 건 이미 저들의 문화에 대개 이미 갖추어져 있다.

그 시절 우리가 <드래곤볼>에 열광하고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열렬히 읽고 사랑했던 이유는, 당시 한국 문화에 결핍된 매력이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좋아하거나 자국 문화를 무시하거나 해서 일본 대중문화에 젖어 들었던 것만이 아니었다. 한국 인문학이 K-문화의 발신자로서 기능하려면, 우리가 수용자였던 그때의 경험을 곰곰이 회고해 보면 어떨까 떠올린다. 인문학의 현실은 아무래도 암담하지만, 좋았던 그때를 회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서철원 서울대·고전문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경남대와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향가와 삼국유사, 불교시 등 고대 한국의 서정, 서사, 사상을 두루 연구해 왔으며, 한국 시가의 이론과 고전의 현대적 소통에 관심을 지니고 있다. 그간 지은 책으로 『한국 불교시의 기원: 의상과 원효 그리고 균여』, 『고전시가 수업』, 『삼국유사 속 시공과 세상』, 『향가의 유산과 고려시가의 단서』, 『향가의 역사와 문화사』, 『한국 고전문학의 방법론적 탐색과 소묘』 등이 있으며, 『삼국유사』를 번역, 해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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