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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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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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예술이 현상해낸 사상의 모습들 | 박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410쪽

 

우리는 사상을 머릿속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이거나 들리는 것 혹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상도 그렇다. 그리고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 책은 2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예술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현대사상을 현실에 현상해낸다.

책에서 연결하고 있는 사상가와 예술가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쇤베르크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브뤼헐 또한 자신의 그림이 하버마스 사상과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는 기존의 법칙을 자연법칙인 양 따르려는 당시 음악계의 분위기에 맞서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낸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자본주의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착취를 은폐하거나 당연시하는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마르크스를 듣는다. 그리고 정해진 소실점 없이 흐트러진 현실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식’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결사(結社)를 이루는 브뤼헐의 그림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합리적 공동체를 추구했던 하버마스의 모습을 본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반면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저자는 예술작품의 미덕이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의 오감(五感) 중 예술작품이 일상에서 구현해낸 시각, 청각, 촉각에 집중하여 사상을 풀어낸다.

‘1장 현대사상을 보다’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등 낯선 조합이 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2장 현대사상을 듣다’는 쇤베르크, 바그너, 루솔로, 영의 음악을 통해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와 베르그송의 사상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삽입했다. ‘3장 현대사상을 만지다’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허스트의 설치예술, 추미의 건축물을 통해 라캉과 바타유의 사상 또한 피부로 느끼듯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3장에서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두 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추가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더 깊고 다양한 관점을 주고자 했다. 바로 니클라스 루만과 앤디 워홀, 브뤼노 라투르와 미카 로텐버그다.

우리가 사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실체 없는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과 이어지는 예술작품과의 공통점을 보고 듣고 만진다면 사상을 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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