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대기업 일자리 부족, 입시경쟁·저출산·수도권집중 심화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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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대기업 일자리 부족, 입시경쟁·저출산·수도권집중 심화 불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3.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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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연구보고서]
- 한국, 대기업 비중 OECD 32개국서 최하…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 필요
- 기업의 규모화(scale-up) 위해 정부가 나서야

 

좋은 일자리에 해당하는 대기업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의 대학 입시경쟁과 사교육 과열, 사회적 이동성 저하, 출산율 하락, 여성 고용률 정체, 수도권 집중 심화 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만큼 기업의 규모화(scale-up)를 저해하는 정책적 요인들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선임연구위원은 2월 27일 발간한 KDI FOCUS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 대기업 비중 14%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많은 청년들은 대기업 일자리를 원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중소기업 일자리다. 2021년의 경우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비중은 전체 종사자 기준으로 14%, 임금근로자 기준으로 18%에 불과했다. 반면, 10인 미만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은 전체 종사자 기준으로 46%, 임금 근로자 기준으로 31%에 달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규모가 큰 회사 비중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취업 선호도가 64%에 달했지만 실제 일자리 현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250인을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는데 우리나라는 250인 이상 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로 OECD 최하위였다.

독일은 대기업 비중이 41%에 달하고, 스웨덴(44%)과 영국(46%), 프랑스(47%), 미국(58%)은 독일보다도 높은 비중을 보였다.

 

□ 규모 큰 사업체일수록 임금 높고 근로조건 양호

보고서에 따르면 규모가 큰 사업체일수록 임금이 높고 근로조건이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2022년 기준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했다. 비교적 큰 규모인 100~299인 사업체의 임금도 71%에 그친다. 

근로조건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모습을 보였는데 출산 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의 예를 살펴보면 실제로 이러한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들이며, 소규모 기업의 근로자는 상당한 제약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출산 전후 휴가 제도가 필요한 사람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사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30%였으며, 육아휴직 제도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약 50%에 달했다. 임금 근로자의 약 절반이 30인 미만 사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좋은 일자리 부족과 입시경쟁·사교육 과열

보고서는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함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입시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점을 들었다. 상위권 대학 졸업생과 하위권 간의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에 입시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일반 대학을 수능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구분한 후, 각 분위 대학 졸업생들의 평균임금을 연령에 따라 계산하고 최저분위인 1분위와의 차이를 구한 결과, 1분위 대비 5분위의 임금 프리미엄이 40~44세 구간에서는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1분위 졸업자들이 5,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면 5분위 졸업자들은 7,500만 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임금 프리미엄이 높으니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르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임금뿐 아니라 정규직 취업, 대기업 취업, 장기근속 등에 있어서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연구위원은 "입시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경쟁은 줄지 않고 있다"며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대기업 일자리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입시경쟁은 바로 사교육의 원인이 된다. 그러니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도 제약하게 된다. 부모의 경제력이 높을수록 사교육 지출도 크고 자녀의 학업성취도도 높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좋은 일자리 부족과 저출산 및 낮은 여성 고용률

고 연구위원은 또 저출산 문제도 대기업 일자리 부족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서는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제도나 정책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집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 여성 근로자가 실제로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고 연구위원은 출산·육아와 무관하게 안 좋은 일자리 자체가 여성의 퇴직을 유도하고 이들의 재취업을 방해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열악한 근로조건은 젊은 여성들의 퇴직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좋은 일자리 부족과 국가균형발전

또한 보고서는 수도권 집중도 결국은 비수도권에서 대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 연구위원은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노동생산성이 높다면, 큰 사업체가 많을수록 임금수준이 높고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도 적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수도권 집중이 지속되는 것은 결국 비수도권에 생산성이 높고 규모가 큰 사업체가 적은 것이 중요한 이유일 수 있음을 분석 결과는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KDI 포커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 [KDI 제공] <br>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KDI 포커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 [KDI 제공] 

□ 정부에 중소기업 지원책 재점검 촉구…"생산성 낮은 기업 도태돼야"

고 연구위원에 따르면, 결국 기업 스케일업을 통한 대기업 일자리 공급 확대가 우리 사회 중대 현안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그는 사업체 규모가 커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정부는 기업의 규모화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효과성을 점검하고 기업의 성장을 막는다면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산성 낮은 중소기업은 도태돼야 생산성 높은 다른 중소기업이 규모를 키울 수 있는데 과도한 정책 지원은 이러한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는 여러 지원이 제공되는 반면, 대기업에는 여러 규제가 부과된다면 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유인이 적어 중소기업으로 남으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의 정책과 대기업 경제력 집중 관련 정책도 이런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고 연구위원은 제언했다. 

고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이 기업 규모 확대 저해 요인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대규모 사업체에서는 노조 결성이 쉬울 수 있는데, 이러한 우려 때문에 기업은 고용 규모를 키우는 대신 핵심적이지 않은 사업을 하청기업에 외주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적대적이고 전투적인 노사관계는 기업 규모의 확대를 막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고 연구위원은 "과도한 입시경쟁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하며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높이고 비수도권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개별 정책분야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공통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규모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대기업 감세 그리고 이른바 '노동개혁' 등과 궤를 같이하는 요구다. 고 연구위원은 앞서 '수요자 중심의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졸업생 연봉 공개'와 '의대 정원 최소 5% 증원' 등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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