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프랑스어권 문학에 입문하는 하나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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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프랑스어권 문학에 입문하는 하나의 길잡이
  • 김지현 서강대·유럽문화학
  • 승인 2024.03.03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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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역사, 문화, 정체성의 교차로: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과 프랑스어』 (김지현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220쪽, 2024.01)

 

역사, 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프랑스 바깥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지역에서 형성된 프랑스어 문학은 프랑스 문학장의 외연을 확장했다. 국내 학계에서도 비(非) 프랑스 지역의 프랑스어 문학을 통칭하는 ‘프랑스어권 문학(la littérature francophone)’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대표적으로 퀘벡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프랑스어권 문학 연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나타난 인종, 언어, 문화, 정체성의 상호작용 및 혼종성은 문학 텍스트의 다양성 이해에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프랑스어에 대한 한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프랑스어와 작가들의 다각적 관계를 제시한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지배나 보호령 시기에 태어나 교육받은 북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에게 프랑스어는 식민체제의 유산이었다. 그중에서도 알제리 전쟁이라는 격렬한 갈등과 저항을 끝으로 130년 이상의 식민지배를 마감한 알제리에서 프랑스어는 프랑스의 문화 동화정책의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아랍 문어, 다양한 방언의 아랍 구어, 베르베르어가 공존하는 알제리 사회에서 작가들은 창작 언어 선택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보호령이었던 모로코와 튀니지에서도 다언어, 다문화적인 상황이 특징적이다. 그렇지만 식민 지배기에 프랑스 학교 교육을 받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북아프리카 작가들 대다수에게, 프랑스어는 사실상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창작 수단이었다. 물론 창작 언어 선택의 문제는 북아프리카 작가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권 작가들의 보편적 경험일 것이다. 

그러므로 북아프리카 작가들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배 및 독립 이후에 프랑스어와 다른 언어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 선택과 타협 양상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하여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작가들과는 달리,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작가들의 프랑스어 인식 문제, 타언어와의 관계는 창작의 출발점이자 작품의 핵심 주제로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서는 대표적인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다언어적 현상과 프랑스어와 타언어가 갖는 관계를 탐구한다. 이 지역의 근대문학이 프랑스의 식민체제기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창작 언어로서의 프랑스어의 선택과 활용, 타언어와의 복잡한 관계, 문학 텍스트에 드러난 언어 문제 등은 이 지역의 사회, 문화, 역사의 특징과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도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 작품이 번역 소개되고 연구 역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단행본 연구서는 아직 나오지 못한 실정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역사, 문화, 정체성의 교차로 :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과 프랑스어』 는 작가에 대한 개론적 소개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어’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시론적이나마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특히 저서 전반부에 논의하는 이론은 다른 프랑스어권 문학 작품 이해를 위한 비교문학적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프랑스 문학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북아프리카 출신 작가들 작품 이해에도 유용하다. 

또한 본 저서를 구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는 연구의 내용을 프랑스어권 문학 및 문화 수업에서 교육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이었다. 저서의 논의는 좁게는 북아프리카 프랑스 문학 수업에서 개별 작가의 이해를 높이거나, ‘프랑스어권 문학의 프랑스어 이해와 특성’과 같이 확장된 방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연구의 내용은 문학 분과 이외에 북아프리카와 관련한 역사학, 인류학, 사회언어학, 지역학, 문화 연구, 여성주의 이론 영역에서도 보조적 교육 자료로 연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1부의 이론적 접근과 2부와 3부의 문학 텍스트 분석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프랑스어권 작가들의 언어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 리즈 고뱅, 자크 데리다, 압델케비르 카티비, 카텝 야신의 언어관을 중심으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한다.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프랑스의 작가들과 달리, 다언어, 다문화 상황에 있는 프랑스어권 작가들은 창작 언어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는 작가의 언어 인식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중심 주제로 등장하거나 더 나아가 작품 속에 언어에 대한 메타 담론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2부와 3부에서는 역사, 문화,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같은 문학 텍스트 형성의 외적 조건과 이것이 텍스트의 서술자, 인물, 형식과 같은 내적 특징과 맺는 관계에 주목하여 작품을 상세히 분석한다. 특히 2부는 자전적 글쓰기의 일반적 특성과 더불어 20세기 중후반에 중요한 장르 경향으로 등장한 프랑스 문학의 자전적 글쓰기의 특징을 함께 고려할 것이다. 북아프리카 종교, 가족 제도와 식민지배로 인한 변화된 정치 현실은 이 지역 작가들의 소설 창작의 핵심적인 동기였고, 작가들은 소설에서 식민체제가 야기한 사회적 변화의 여러 양상, 알제리 전쟁을 묘사하고 증언한다. 자전적 글쓰기는 서사적 진실성을 토대로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기억을 표현하는 중요한 표현 방식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튀니지 유대인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멤미의 자전적 소설 『소금 기둥』과 모로코 작가 압델케비르 카티비의 자전적 소설, 『문신 새긴 기억』을 분석한다. 

3부는 알제리 프랑스어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아시아 제바르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제바르 작품에서 드러난 프랑스어에 대한 인식은,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알제리 문화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동시대 남성작가들의 프랑스어 인식과 차별되는 중요한 쟁점을 제시한다. ‘타자의 언어’, 그러나 유일한 창작 언어인 프랑스어는 역사, 문화, 언어적으로 알제리와 프랑스 사이에 놓여 있던 제바르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제바르는 알제리 여성의 목소리를 프랑스어로 옮길 때 다양한 여성 고유의 목소리를 왜곡할 가능성을 의식했고, 단상적 형식, 복수(複數) 서술자를 활용하는 기법과 자서전, 역사서술, 구술 증언, 산문시 등 여러 가지 장르의 담화 활용을 통해 계층과 경험이 이질적인 여성들의 모국어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다문화, 다언어 사회 알제리에서 벌어지는 언어들의 긴장, 갈등, 융합의 양상이 역동적으로 드러난다.

본 저서가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의 특징과 개별 작품의 심층적 이해를 도모하고, 동시대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문학, 사회언어학, 역사학, 문학사회학, 여성주의 이론, 지역연구 등 여러 학제의 소통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지현 서강대·유럽문화학

현재 서강대학교 유럽문화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및 프랑스어권 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아프리카 프랑스어 소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북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이민 세대 작가들과 관련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아시아 제바르의 대표적인 소설인 『사랑, 기마행진』과 츠베탕 토도로프의 정치 에세이, 『민주주의 내부의 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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