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서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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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0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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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이라는 꿈 | 대니얼 데닛 지음 | 문규민 옮김 | 바다출판사 | 320쪽

 

우리의 축축한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나올 수 있을까? 일부 심리철학자와 과학자는 의식은 나에게만 알려지는 신비로운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 데닛은 의식은 사적이라는 입장을 부정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의식은 없다’는 제거주의가 아니다. 철학자와 과학자가 말하는 ‘그런 의식’ ‘그런 주관성’ ‘그런 감각질’은 없다는 것이다. 의식과학은 명실상부 정상과학이 되어가고 있으며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이다. 

데닛은 이를 위해 획기적인 사고 실험과 비유를 동원해 의식 연구를 가로막는 불량 직관들을 폐기하고 우리의 통념과 관성을 부순다. 의식은 놀라운 현상이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다양한 진화적 알고리듬의 비교적 최근 결과물이며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데닛에 따르면 의식을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내밀한 속마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한때 지구가 중심이라고 믿었던 천동설과 다를 바 없으며 의식과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데닛의 의식 이론은 크게 부정적·비판적 단계와 긍정적·설명적 단계로 나누어진다. 부정적·비판적 단계에서는 일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각질, 현상적 속성, 현상적 의식, 주관성과 같은 것들을 ‘해체’한다. 감각질(퀄리아)의 어원은 질quality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복수형이다. 의식에 대한 가장 흔한 직관으로 정신 상태의 질적인 내용을 의미하며 의식을 다른 모든 심리 상태들과 명확히 구분된다고 본다. 데닛은 감각질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대 철학자들이 감각질을 전제하고 의식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것이 현대의 뇌과학적 성과를 무시한 채 여전히 데카르트적 시각에 갇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긍정적·설명적 단계에서는 뇌가 의식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제안한다. 최근 의식에 대한 철학적 논쟁에서 주목받는 범심론과 환영론 중에서 환영론의 원천 발상은 전부 데닛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뇌가 의식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데닛 고유의 이론적 모델을 뼈대로 한다. 이후 데닛은 다중 원고 모델을 더욱 발전시키고 세련되게 다듬은 개념들을 ‘뇌 안의 명성’, ‘두뇌의 유명인’ 등으로 이름 붙였었는데 이 책에서는 ‘환상의 메아리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환상의 메아리 이론은 스타니슬라스 드엔의 광역 뉴런 작업 공간 이론을 뼈대로 삼아 데닛이 보충적 설명을 덧붙였다. 그 핵심은 뇌 안에서 매 순간마다 정보들, 표상들, 신호들 사이에서 선거 또는 오디션과 같은 경쟁과 선발 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식적 뇌는 최정상의 자리를 두고 온갖 정보, 표상, 신호들이 서로 정치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수라장이다. 단일한 자아가 총본부로서 기능하는, 그런 의식은 없다.

이 책에서 저자 데닛은 데이비드 차머스가 주창한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반박한다. 이는 데이비드 차머스를 일약 철학계의 락스타로 만든 구분법으로서 어떤 대상을 설명하는 표준 패러다임으로 마음, 특히 마음의 의식적인 측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몸속의 신경 과정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지, 인간의 내적 경험을 직접 다룰 수 없는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차머스는 쉬운 문제와는 달리 어려운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결이 어렵다고 보는데, 데닛은 아예 그런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의식을 물리적 관점으로 설명될 수 없는, 주관적 느낌이라고 보는 것은 환영이라는 것이다.

데닛은 이 외에도 기존의 사고 실험에서 의식과학을 가로막는 철학적 장애물들을 지적해낸다. 그중 하나가 좀비감이다. 좀비감은 의식적 인간과 완전한 좀비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가 있다는 확신 및 직관을 일컫는데 데닛은 이를 천동설과 같은 직관이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색 과학자 메리 사고 실험을 비판한다. 색 과학자 메리는 1982년에 첫선을 보인 프랭크 잭슨의 사고 실험이다. 메리는 흑백의 방에서 흑백 텔레비전을 보며 세상을 보는 과학자다. 토마토의 빨강색이나 다른 색깔 용어를 사용할 때 일어나는 물리적 정보를 알고 있다. 이를테면 빨강색을 볼 때의 망막 자극이나 성대 및 폐의 변화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흑백방에서 풀려나 컬러 텔레비전 모니터를 얻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의문을 던지며 ‘물리주의는 거짓’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사고 실험은 좋은 사고 실험일까? 데닛은 이를 반박하기 위해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오래된 충고를 끌어온다. 철학자들이 사고 실험을 다룰 때, 과학자들이 자신의 관심 대상을 다루는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변형시키고, 뒤집고, 모든 각도에서 검토하며, 다른 모든 설정과 조건에서 당신이 인과의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반드시 확인하라는 의미다. 데닛은 메리에 대한 사고 실험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메리를 흑백방에 억류한 사람이 색을 보여주기로 마음 먹으며 ‘파란 바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메리는 그것을 보자마자 ‘파란 바나나’라는 것을 알아챈다. “색 지각의 물리적 원인들과 효과들”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주의를 부정하는 사고 실험은 보통 이런 상황까지 가정하지 않은 채 쉽게 결론을 내려 버린다. 색 과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진 가상 인물에 대한 상상력 부재다. ‘무엇을 본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신경계에 끼치는 세세한 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기존 철학적 전통에만 기댄 통념적 사고 실험은 논리적 비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류에게 의식이 생긴 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며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면역, 시각 등의 체계를 선사한 진화적 산물이지만 단순히 마음이 여타 생물학적 현상들과 달라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상적인 생명과학이 기계론적으로 해석할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의식과학은 명실상부 정상과학이 되어 가고 있다. 데닛은 그 기초가 될 수 없는 불량 직관들을 폐기하며 통념과 관성을 부수는 것이 참다운 앎에 기여하는 철학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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