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현대의 자크 데리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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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현대의 자크 데리다까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02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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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 | 히라하라 스구루 지음 | 이아랑 옮김 | 더디퍼런스 | 476쪽

 

철학은 지금까지 ‘보편적인 인식은 가능한가,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풍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등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의문을 품어봤을 법한 문제를 제기하고 깊이 수긍할 수 있을 만한 해답을 제공해왔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50권의 고전은 그런 노력으로 탄생한 철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철학자들이 남긴 작품을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여 철학이 어떻게 탐구되고 전해져 왔는지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철학은 한마디로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해가는 활동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공통 이해의 언어게임’이라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로 간에 처음부터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 공통의 이해를 새로이 창출하는 시도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게임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는 뜻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곤경에 처했을 때야말로 진가를 시험받는 도구다.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야말로 깊이 수긍할 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매일 사고를 단련하는가가 학설의 시금석이 된다.

아무리 박식하더라도 그 지식을 통해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철학에 권위를 위한 자리는 없다. 날카로운 감수성과 단련된 통찰력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파악하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 형태로 완성시켜 수긍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읽혀지고 탐구되어 온 학문,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의 재미있는 점은 사고를 위한 ‘재료’가 개개인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완성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개념의 공예라고 할 수 있다. 완성도 높은 개념은 계승되고,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개념은 계승되지 않는다. 간단하지만 엄격한 원칙이다. 그 점에서 철학의 고전은 ‘개념의 전통 공예’라고 불릴 만하다. 고전은 오래되었기에 훌륭한 것이 아니다. 훌륭하기 때문에 수없이 읽히고 다루어지고 시험받아 온 것이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꾸준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고전의 본질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을 때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살펴보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고전은 단순한 영웅담에 그치고 만다. 영웅담도 그 자체로 재미있기는 하지만 철학으로서 활용하려 한다면 철학자를 위인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것이 고전을 ‘철학적’으로 읽는 첫걸음이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철학서를 읽기 시작하면 일단 그 어려움에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도 하나의 학문인 이상 어느 정도 난이도는 감수해야 한다. 누구든 금세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학문으로서 이어져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철학이 필요 이상으로 어려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

 

철학은 일반인의 시민 감각으로 시험되면서 활용된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거리의 청년들에게 논의를 던지고, 데카르트는 ‘세상이라는 책’을 배우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이런 태도를 망각하고 지식 계급의 지적 유희라는 색을 띠기 시작하는 순간 철학의 ‘정신’은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다.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 사고방식, 즉 원리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가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자들은 뛰어난 원리를 철학의 주제로 발전시켰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에게 맡겨진 문제이다. 

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 여러 가지 관념을 다루면서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먼 고고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확실히 그런 철학자도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고전이라 여겨지는 철학서를 대강 읽어보면 철학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은 그때까지의 전통적 세계관이나 상식을 일단 제쳐두고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제시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각 장은 철학이 탄생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구분되어 있다. 1장은 신화에서 벗어나 개념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2장은 기독교 신학에 지배당한 중세 철학을, 3장은 보편성을 탐구하는 근대 철학을, 4장과 5장은 다양한 주제를 논하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책들을 다룬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군주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죽음에 이르는 병』, 『비극의 탄생』, 『인간의 조건』 등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책들이지만 어려운 개념과 난해한 표현 때문에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철학의 핵심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전하고 있다.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뛰어난 원리를 제시할 수 있는가에 있다. 내게 정말 ‘좋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회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조건일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이런 물음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철학자들의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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