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가 들려주는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사회
상태바
최재천 교수가 들려주는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사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02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재천의 곤충사회 |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80쪽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그동안 관찰한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곤충사회로부터 시작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보고서”다. 오랜 유전자의 역사 끄트머리에 우연의 확률로 생겨난 인간, 자신들을 최후의 위험으로 몰아넣은 인간. 그러나 동시에 유일하게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탐구하는 인간.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곁에 두고 배우며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태초에 생명의 늪에서 우연치 않게 자기를 복제할 줄 알던 어떤 화학물질, 이게 DNA입니다.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이 많은 생물은 전부 하나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개미가, 나와 은행나무가 다 한 집안에서 왔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우리 생명 가족 중에 제일 막둥이입니다. 거의 제일 나중에 탄생했습니다. 인간은 어쩌다보니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결과로 태어난 겁니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꼬락서니를 못 봐줍니다. 자연계에서 우리처럼 배타적인 동물은 처음 봅니다. 주변에 있는 비슷한 놈들을 몽땅 다 제거해버리고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그래놓고 스스로 ‘현명한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는 것처럼 한 종이 사라질 때 전체 생태계가 와해하는 현상이 벌어질지는, 지금 우리가 가진 자연에 대한 지식으로는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데이터도 우리한테는 없어요. 우리 인류의 불행의 근원은, 끊임없이 다양화하는 자연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다양성을 말살하다가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8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가 ‘곤충사회’를 비롯한 자연 생태계로부터 배워야 할 경쟁과 협력, 양심과 공정에 대하여, 그리고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로 인해 닥쳐오는 “어마어마한 일들”에 대하여 두루 다룬 저자의 강연들과 2023년 열림원 편집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부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한때 생명의 아름다움을 읊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가 유학을 떠나 생태학을 공부하게 된 삶의 여정을 찬찬히 풀어낸다.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개미는 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사회를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지’ 의문을 품은 소설가 솔제니친의 일화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인 인간을 고찰하기에 이른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연구 이력을 관통한다. 그 속에는 사회생물학의 대가이자 그의 스승이 된 윌리엄 해밀턴,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알렉산더 등과의 만남뿐 아니라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정말 희귀한 곤충”이었던 ‘민벌레’를 처음으로 연구하며 한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방황”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연구와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기꺼이 선택하고, 온갖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에 참여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양심”이다.

2부 ‘이것이 호모 심비우스의 정신입니다’는 본격적으로 사회성 곤충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최재천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 누구냐” 물으면 “잠시도 머뭇거림 없이” 개미라고 답한다. 이들은 때로 여러 종이 “서로 조율하면서 함께 진화”하고 때로는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치열한 정쟁을 벌인다. “농사를 지을 줄 알고 낙농업을 하고 대규모 전쟁도 일으키고 (…) 아주 고차원의 분업 제도를 개발한 동물”이다. 이렇듯 인간과 가장 닮았으나 인간보다 기꺼이 희생하며 자가 조직 사회를 꾸리는 일개미들 - ‘아즈텍개미’ ‘거북이개미’ ‘꿀단지개미’ ‘베짜기개미’ ‘잎꾼개미’ - 의 치열하고 경이로운 세계부터, 다른 듯 닮은 흰개미와 꿀벌의 진사회성까지. 저자는 이들의 삶을 “열심히 베껴” 연구할 것을 강력하게 권하며 “의생학”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소개하고 제언한다. “수천만 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거친 곤충사회, 자연의 탁월한 아이디어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자는 것. 다른 모든 생명과 이 지구를 공유하는 공생인 ‘호모 심비우스symbious’로 거듭나는 길이 여기, 우리가 마음껏 모방할 수 있는 자연 곳곳에 심겨 있다.

저자는 3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합니다’에 이르러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진실”을 건넨다. 지구의 기반인 식물계가 무너지고 “드디어 곤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의 생물다양성 절반 정도가” 사라지리라는 예측. 최재천 교수가 평생 관찰해온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이하며 새로운 종을 만들고 다양화한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이 고갈되는 지금, 생물학자들은 머지않은 미래를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대멸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느덧 일상에 깊이 새겨진 바이러스 팬데믹이나 각종 병원체는 절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없지만, 다름 아닌 인류가 자초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고갈은 “우리 인간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완벽하게” 위협하며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과 살처분 체제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유전자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는지, 인간 없는 세상이 얼마나 균형 있고 건강한 생태계일 수 있는지 가감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만여 년 만에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1퍼센트 남짓으로 줄여버리고” 지구를 차지한 인간에게 남은 오늘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