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협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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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협조적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02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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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게더: 공동체 의식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 | 울리히 슈나벨 지음 | 김현정 옮김 | 디 이니셔티브 | 368쪽

 

기후변화, 환경 문제, 전염병, 사회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엄청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은 무엇일까? 저자는 기술이나 경쟁이 아니라 ‘잊혀져 가는 미덕’인 공동체 의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우리가 모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와 같은 도덕적인 의미에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공동체 의식이란, 우리가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는 ‘상식’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사고와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사고에 대해 좀 더 섬세한 감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독특한 문화적 지능과 협동적 사고력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와 의식은 끊임없는 사회적 교류를 통해 형성된다. 인간은 초사회적 존재다.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비교 관찰하기 때문에 결단력 있게 먼저 행동하는 소수의 행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은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면서 어떤 상황에서 협력이 성공하는지, 왜 공동체 의식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왜 개인의 자유가 올바른 정치 사회적 틀을 갖춘 공동체에서만 발전할 수 있는지 등을 보여준다.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도 함께 고려하는 것’,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다.

공동으로 위협에 맞서면 왜 그 위협이 약해 보일까? 우리가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왜 그 고통을 덜 느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초사회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지능이 매우 발달한 ‘초사회적’ 존재다. 바로 이러한 독특한 문화적 지능과 협동적 사고력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라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관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이 주장이 사실일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 인간은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할까? 항공기 비상착륙 사례의 97%에서 탑승객은 침착하고 질서 있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9·11일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뉴욕 시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구조대원들은 재난의 공포보다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놀랐다.

재난 발생 시 인간 행동에 대한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델라웨어 대학 재난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비상 상황에서 사람들은 집단 패닉 행동이나 비정한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인 성향과 공동체 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자기중심적인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이타적인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인간의 선한 면이 바로 ‘긴급 상황’에서 도리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어떤 생각이 처음에는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점차 인정을 얻어가다 어느 순간 기존의 생각을 대체하는 티핑 포인트가 일어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때 티핑 포인트가 발생할까?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체 집단의 10~25%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본다.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의 비교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결단력 있게 먼저 행동하는 소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도미노가 하나씩 쓰러지듯이 가장 가까운 블록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먼저 관심을 보인 사람은 첫 번째 도미노 블록이 되어 발전을 촉진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든 사람이 다 ‘슈퍼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

기후변화, 환경 문제, 전염병, 사회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엄청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술이나 경쟁이 아니라 21세기의 핵심 역량인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공동체 의식에 부합하는 행동을 먼저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항상 즐거운 일도 아니다. 거기에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감하고, 소통하고, 함께 행동하는 초사회성이 우리 유전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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