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사건에 대한 민교협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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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사건에 대한 민교협 성명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2.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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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는 최근에 일어난 소위 ‘입틀막’ 사건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호실장의 즉각 파면과 피해자와 국민 앞에 사과를 요구하는 교수·연구자들의 성명서를 29일 발표했다.

민교협은 성명서를 통해 최근의 ‘입틀막’ 사건들은 민주주의 가치의 전방위적 훼손과 심각한 기본권 침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독재 회귀의 전조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벌어진 ‘입틀막’ 사태는 “그것이 표현의 자유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며, 대학이라는 공간이 우리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갖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이번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가 학문과 사상 및 표현의 자유, 그리고 교권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교협은 반민주적인 국회 무시, 헌법 무시, 기본권 무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경호실장을 즉각 파면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민교협은 카이스트 교수들의 성명 발표 불발에 대해서도 동료 교수·연구자로서 매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민교협2.0 성명】


윤석열 대통령은 “입틀막” 사건의 책임을 물어 
경호실장을 즉각 파면하고 피해자와 국민 앞에 사죄하라!


새 학기 시작을 앞둔 지금, 우리 교수·연구자들이 이런 성명을 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참담하다.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낸 것도 모자라 이젠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을 졸업생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이 사지를 들어 졸업식장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악할 일에 이젠 분노를 넘어 허탈함에 할 말을 잊는다. 이것은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경호실장을 파면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가 전방위적으로 훼손되고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소위 “입틀막” 사건은 우리 인내심의 임계치를 단숨에 넘겨버렸다. 지난달 초 지방자치단체의 한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려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호실 직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행사장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며칠 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장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려던 대학원생이 역시 경호실 직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사지를 들려 졸업식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에서 지역주민의 대표자인 지역구 국회의원이, 그리고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식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혀 강제로 쫓겨나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우리는 말문이 멎는다. 벌써 역치가 낮아진 것일까? 같은 날 카이스트 졸업생인 김선재 진보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도 졸업식장으로 가던 중 대통령 이동 경로에 방해가 된다며 직원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양당의 공천 혼란과 정쟁 속에 이미 잊혔지만, 강성희 국회의원의 입을 대통령 경호원이 틀어막은 행위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우리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송두리째 뽑아버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취임 시부터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을 철저히 무시했으며 심지어 여당 대표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들어내고 자기 오른팔 격인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들여앉힌 것처럼, 대통령의 국회 무시는 이미 그 심각성이 도를 넘은 바 있다. 국회가 의결한 법안을 줄곧 거부권으로 무시했고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법안마저도 시행령으로 술수를 부려 무력화했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나 특별검사 임명 시도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회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안중에도 없다.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일개 경호실 직원이 입을 틀어막은 채 사지를 들어 내동댕이칠 수 있는 결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일관된 국회 무시, 그리고 헌법 무시의 연장선상이라 할 것이다.

국회와 헌법을 무시하는 대통령은 이제 민주주의의 기초 중의 기초인 기본권마저 무시하는 데에 이르렀다. 일련의 방송장악 시도와 언론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억압했고, 시대착오적인 검열로 사상의 자유도 제약하려 해 왔다. 집회와 시위의 대대적인 제한과 노동·시민운동에 대한 탄압을 통해 결사의 자유도 억압하고 있다. 이제 입만 열면 자유를 뇌까리던 대통령이 근대 시민권의 기본 중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마저 무시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졸업식장에서 벌어진 “입틀막” 사태는 그것이 표현의 자유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특히 대학이라는 공간이 우리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갖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이번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가 학문과 사상 및 표현의 자유, 그리고 교권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연구개발예산 삭감으로 교육과 연구의 지속은 물론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한 대학원생이자 연구자의 절규를 경호원의 손으로 틀어막은 행패, 이제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퇴행을 넘어서 반민주적 독재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카이스트 교수들의 성명 발표 불발에 대해서도 동료 교수·연구자로서 매우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비 삭감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또 이를 바로잡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비 삭감이 생존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한 대학원 졸업생의 용기 있는 부르짖음이 졸업생으로 위장한 대통령 경호실 직원에게 졸업식장에서 틀어막힌 이 기막힌 상황에, 교수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함께 분노조차 하지 못한 것은 스승이자 선배 연구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학생의 편에 서서 같은 목소리로 대통령실의 무도한 행위를 규탄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되살리기 위해 함께해 줄 것을 동료 교수·연구자로서 호소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회 무시, 헌법 무시, 기본권 무시는 이미 선을 넘었다. “입틀막” 사건은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독재 회귀의 전조이다. 반민주적인 국회 무시, 헌법 무시, 기본권 무시를 즉각 중단하라.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호실장을 즉각 파면하고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라. 우리의 경고를 더 이상 무시하지 마라.


2024년 2월 29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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