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음악 … 〈한일고금비교론〉 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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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 … 〈한일고금비교론〉 ⑯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4.02.2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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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본은 미술의 나라이다.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 오랜 내력이 있다. 두 가지 본보기를 먼저 든다. 기억해야 할 사실을 글로 적고 그림으로도 그려 繪卷(에마키)라고 하는 두루말이를 만들어 길이 보존한다. 널따란 벽면 전체를 그림으로 채우는 障屏畵(슈우헤이)가 또한 특이하다.

오늘날에는 간명하고 알찬 미술사 책이 흔히 보여 즐겨 읽을 수 있다. 소도시에까지도 으레 있는 미술관에 관람객이 모여든다. 예사 사람들도 미술 작품을 자기가 즐기려고 사가는 관습이 몇백 년 전 浮世繪(우키요에)가 유행할 때부터 있었다. 미술 애호의 열기가 이 정도인 나라를 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은 어떤가? 그림의 유산이 일본에 비해 적은 것만 아니다. 미술사가 미비하고, 작품 주변의 사실을 설명하기나 한다. 고미술은 문헌고증학에 갇히고, 오늘날의 작품은 외래의 들은풍월에 휘둘리고 있다. 그림을 알고 좋아하도록 하는 안내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미술관은 어쩌다가 있는 것이 너무 멀다. 찾아가 작품을 즐길 생각이 나지 않게 한다.

주민이 몇백만 이상 대도시에는 마지 못해 미술관을 만들지만, 구색을 갖출 따름이다. 건축비는 넉넉하게 주어도, 작품 구입비는 극력 삭감하는 것이 관례이다. 미술관이 건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힘들게 찾아가 보면, 외관만 대단하고 내용은 너무나도 실망스럽다.

소장품을 모아 상설전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지역 작가들은 작품을 기증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도 응하지 않고, 예우 소홀로 욕을 보지 않을까 염려하기나 한다. 그런 작품을 구입하면 정실로 예산을 낭비했다고 질책하는 감사가 나온다고 한다. 관료주의가 예술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지역이나 국가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미술관이고자 하는 가당찮은 허영심을 갖는다. 쓰레기 수준의 외국 작품 몇 점을 값을 부르는 대로 주고 사다가 모셔놓는 것은 감사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남는 공간을 괴이한 짓거리로 서툰 흉내를 내는 설치미술 특별전으로 대강 엉성하게 메운다. 난해하다는 인상을 과장해 겁을 주면서 접근을 막는다.

그래도 미술관이 주민과는 무관해 보러 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화제에 오르지도 않아 욕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지역신문이 논란거리가 아니라고 여기고, 시의원이 들고나와 인기를 얻는 데 이용하지도 않는다. 건물 공사에 부정이 없다고 확인되면, 그 이상 어떤 문제도 없다. 무풍지대여서, 어떤 장난이라도 안심하고 쳐도 된다.

무엇이 정상인지 말하자. 미술관은 작품이 먼저이다. 작품을 어느 정도 사서 모으면 기존의 건물 적절한 곳에다 내놓고 전시를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지역화가들이 굶지 않을 수 있게 하고, 지역민은 이웃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고 와서 보고 식견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 아주 많은 미술관 가운데 시골의 작은 미술관이 이런 구실을 잘한다.

재일교포 사업가 두 분이 일본에서 이런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깨달은 바 있어, 가까이 있는 무명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했다. 하정웅은 자기와 같은 처지인 재일교포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모아 고향 광주시립미술관에 주고 전시하라고 했다. 강구범은 고향 제주에서 뛰어나지만 팔리지 않는 변시지의 작품을 발견하고 대거 수집하여 전시하는 미술관까지 만들어 제주시에 기증했다. 이것은 미술의 나라 일본이 가까이 있는 덕분에 받은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정웅이나 강구범이 한 일은 이건희가 국내외의 그림 명작을 아주 많이 사 모아 국가에 헌납한 것과 많이 다르다. 규모가 작고 크다는 말이 아니다. 물량에 압도되지 말고, 진위를 분별해야 한다. 이건희는 평가가 높아져 값이 이미 많이 오른 작품을, 화가로부터 몇 손 건너간 畫商(화상)에게서 사서, 재산을 늘리고 수익 증대를 꾀했다. 하정웅이나 강구범이 팔리지 않는 작품을 직접 사서 무명화가가 생계를 유지하고, 그림을 더 잘 그리도록 독려한 공적이 이건희에게는 없다. 박수를 독점하는 것은 전연 부당하다.

일본에는 하정웅이나 강구범처럼 훌륭한 자산가가 많이 있고, 지방자치단체도 같은 구실을 하는 덕분에, 지방 무명화가의 명작을 구석구석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자기 고장을 떠나지 않아 지방이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무명이다. 그런 화가의 작품이 명작인 것은 공인된 평가와 무관하고, 알아보는 안목으로 하는 발견이다. 나는 일본의 미술관을 구석진 곳들까지 돌아보면서 지방 무명화가의 명작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하정웅이나 강구범처럼 숨은 명작을 사 모을 재력은 없으므로, 그 대신 전시하고 있는 그림에서 무시되고 있던 명작을 발견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 싶다. 유튜브에 올린 ‘남불 문화 기행에서 높이 평가되어 이름이 나지 않은 남불 화가들이 파리 화단에서 크게 행세하던 대가들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을 남긴 사실을 밝혔다. 이런 작업을 가까운 일본에서 더 부지런하게 하겠다고 그 전에도 생각했으며, 그 후에는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애가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전시하고 있는 그림 사진 촬영을 불국에서는 허용하고, 일본에서는 엄금한다. 이것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를 하는 결함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이다. 일본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상처를 입히는 실수이다. 이 글을 읽고 잘못을 바로잡기 바란다.

남불 그림을 이야기할 때 내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도판으로 이용했다. 결함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실감 나게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일본 그림은 사진을 찍어 보여주지 못한다. 대단치 않다고 여기는 것들이어서, 공식적인 경로를 이용해 대금을 지불하고 도판 이용권을 사는 방법도 쓰기 어렵다. <일본 미술 기행>을 유튜브에 올리고 책으로 내겠다고 하는 꿈을, 일본의 방해 때문에 접어야 한다.

여기서 글을 끝내지 않고 다음 말을 한다. 일본은 미술의 나라이고, 한국은 음악의 나라이다. 대조가 되는 내력을 들어보자. 일본의 和歌(와카)는 나타내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함께 감상하는 관습이 있고, 한국의 시조는 歌集(가집)에 수록되어 전하는 歌唱(가창) 예술의 작품이다. 일본의 고전소설에는 삽화가 많이 들어가 있어 시각적인 이해를 중요시하고, 한국의 고전소설은 삽화는 하나도 없으며 낭독하는 것을 듣고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요일 저녁 두 나라 공영방송 텔레비전에서, 일본은 ‘일요미술관’으로, 한국은 ‘열린 음악회’로 국민의 호응을 모은다.

일본에서 演歌(엔카)라고 하는 애수를 띤 자학적인 노래가 일제 강점기에 건너와 한국 유행가가 되었다. 식민지통치를 하는 권력을 배경으로 음반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 상인들이 내놓는 물건을 절망에 사로잡혀 비관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흉내를 내서 재생산했다. 치욕의 역사이고 불명예의 상처이므로, 청산하고 치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음악의 나라 한국은 유행가를 잘도 키워 일본 것들보다 월등한 우량아를 만들었다.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 등 기량이 탁월한 인기가수가 이어져 나와 온 나라를 들뜨게 한다. 열린 음악회, 전국 노래자랑이 온 국민을 하나이게 한다. 유행가에다 팝송을 보태고, 공연예술의 전통을 계승해 재생산한 K-pop이 멀리까지 나가 세계를 뒤흔든다.

일본은 K-pop 이전의 고전을 더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 자라난 유행가가 추방 명령을 받지 않고 원래의 고향인 일본으로 스스로 되돌아가 크게 활약한다. 일본에서만 계속 머문 친척들보다 활력이 넘치고 울림이 큰 노래로 일본인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재일교포 가수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가 혜성같이 나타나 전국을 뒤흔든 것은 그 활력, 그 울림이 놀랍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최고의 찬사를 바치면서 열광한 것이 당연하다. 한창 시절에 세상을 떠나자 국상이 난 듯이 애도했다. 방송 드라마를 만들어 추억을 되살렸다. 여기서 히바리 노래를 한 곡 들어야 하겠는데 방법이 없다. 기술 좋은 독자는 인터넷에서 찾아 듣기 바란다.

히바리가 세상을 떠나 모두들 서운해 할 때 金蓮子(キム・ヨンジャ)가 일본으로 가서 뒤를 이었다. 김연자는 국내에서는 여러 인기가수의 하나였으나, 일본에서 히바리의 왕관을 물려받아 가수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일본식 예명을 사용하지도 않고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며 한복을 자주 입고 출연해, 가수의 제왕은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한국이 음악의 나라인 진면목은 옛사람의 풍류를 계승한 국악에 있다. 시나위, 거문고와 가야금, 풍물과 사물놀이, 판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여기서 새삼스럽게 고찰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 국악인이 아닌 농민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전통민요에 천고에 빛나는 명작이 있다. 민요를 찾아 멀리까지 돌아다닌 사람만 그 진수를 알 수 있다.


구야구야 까마구야 지리산 갈가마구야
작년에 난 묵은 까마구야 올게 난 햇까마구야


이것은 경북 영천군 어느 산골 마을에서 손인술이라는 노인이 부른 <어사용>의 서두이다. 산에 나무하러 가서 신세타령을 하는 이 노래를, 둔탁한 목소리로 삶의 모든 고난을 마구 쏟아붓는 듯이 불렀다. 지금도 그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온몸이 뒤흔들리는 것을 다시 느낀다. 이 노래를 여러 번 듣다가 저절로 배워 복창하고 다닌다. 나는 그 전에 음치였는데, 이 노래 덕분에 명창이 되었다. 놀랄 만한 변화를 일으키는 마력이 그림에는 없고 노래에는 있다.

진실한 예술의 극치가 궁벽한 시골 무명의 밑바닥에 있다. 어떤 찬사를 바쳐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K-pop의 궁극적인 원천이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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