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마지막 ‘정치적 도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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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마지막 ‘정치적 도박’이 시작됐다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4.02.2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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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올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는 1942년생인 바이든 현직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그보다 네 살 아래인 1946년생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서서 재대결을 벌일 것 같은 분위기다. 최근 미국 내 대선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 86%와 62%가 각각 바이든과 트럼프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라는 듯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서도 이런 시각에서 거론할 만한 인물이 있다. 1940년생 김종인 말이다. 그는 바이든보다도 2년 먼저 태어난 ‘형님’이다. 이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 그는 우리에게 자기 몸과 마음이 한순간도 ‘구름’을 멈추지 않았음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스스로 증명해 보여준다. 

84세의 노안에 어찌 저렇게 윤기가 돌 수 있단 말인가. 언뜻 들으면 촌부의 말투인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한 치 어긋남도 없는 명민한 기억력과 거침없고 논리정연한 사통팔달의 쟁쟁한 논법이 듣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 좋게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에서 태어나 경제전문가로 성장한 덕에 일찌감치 정치권에 발을 들여 정권 아홉 개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면서 유장한 40년 정치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정치사는 물론 숨겨진 정당인들의 내밀한 치부들까지 속속들이 다 꿰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정치적 해박함에는 가히 당할 자가 없으며, 거기다 경제전문가라는 명함은 모든 정치인이 부러워하는 최고 이력 사항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정치권에서 무슨 일만 났다 하면 ‘레거시’ 미디어든 종편이든 할 것 없이 득달같이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특히 선거 때가 다가오면 이 원로 정치인의 주가는 상한가를 치고, 이 당 저 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급조하고 ‘전권을 드리겠다’라며 읍소한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권력에 눈이 멀어 여기저기서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한 신조 없는 노욕의 화신이라거나 노익장을 부린다고 비난한다. 그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또 경제학자로서 학문적 소신을 펼치고자 대권 후보들이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그의 개인적 행보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그의 정치적 효용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마평이 떴는데, 4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개혁신당의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다. 그는 즉각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 “당을 내가 전체로 다 맘대로 하라고 해도 할동말동인데 공천관리위원장 얘기가 나오니. 나, 참, 솔직히 언짢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김종인은 역시 김종인이다. 그는 지난 23일 자신의 네 번째 정당의 공천관리위원장직을 수락하고 전격적으로 22대 총선 판에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이번 등판은 그가 어쭙잖은 정치인들에게 훈수 두는 일이나 이 당 저 당 다니며 남의 머리에 왕관 씌우는 일을 하는 마지막 기회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정치적 도박’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총선에서 개혁신당이 몰락한다면 당과 함께 김종인이라는 이름 석 자도 빠르게 한국 현대정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해 보이지만, 만약 개혁신당이 총선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여 원내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면 김종인은 그가 평소 즐겨 쓰는 표현대로 그야말로 ‘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새로운 미래’와 불편한 결별 이후 당이 존폐 위기를 맞은 9회 말 상황에서 지명된 구원투수로 나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격이니 그의 존재가 곧 개혁신당이라고 말한다 해도 전혀 이상해할 것이 없다. 따라서 그에게 주어졌던 공천의 전권은 당무에 대한 무소불위의 통할권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원내 제3당이 된 개혁신당은 원내 제1 당과 제2 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의정은 물론이고 국정 전반에 대해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거기다 경이로운 수준의 ‘정치 IQ’에다 불과 나이 40에 이미 정치판 ‘짬밥’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밀당’의 고수가 대표로 있는 한 이 원내 제3당의 정치적 협상력이 막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정치적으로 영리한 이준석은 설령 그가 22대 의원 뺏지를 달았더라도 불과 2년 차 국회의원으로서 21대 대선판에 자신이 직접 후보로 나서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그는 당내 세력들 사이에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김종인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자 은인에게 진 빚을 갚는 도의적 선택이라는 명분뿐 아니라, 이제 막 원내 진출의 꿈을 이룬 초선 의원이 당내는 물론 원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시간 벌기용 미래 전략적 포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이러한 정치공학이나 순수한 운발의 도움으로 김종인이 마침내 대선 후보가 됐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어떠한 공약을 내세우며 우리 국민에게 표를 호소할지도 흥미로운 상상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혹시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들을 듣게 된다면 그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는가. 필자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만약 제21대 대통령이 된다면 지금에 이 엉망진창이 된 나라 꼴이 바로 잡히고 주먹구구식 즉흥적 경제 운영 행태가 일거에 사라지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독일식 ‘경제민주화’의 주창자로서 대한민국의 극심한 경제 양극화를 완화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국가’로 빠르게 변모시킬 것이며, 그 결과로 국민행복지수가 높아져 저출생률, 청년실업률, 자살률, 노인빈곤율 등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둘째로, “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고서 이제 인생의 달관기를 맞은 사람입니다. 또한 여야 정당의 치졸한 집단이기주의와 ‘너 죽고 나 살기’식 권력투쟁을 직접 정치 현장에서 또는 지근 거리에서 뼈저리게 겪어 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히 저야말로 그 모든 망국적 병폐를 뒤로 하고 하나의 선진화된 국가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적 자부심에 걸맞은 쟁쟁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널리 들어 쓸 수 있는 정치적 식견과 실행 의지를 함께 갖춘 국정의 최적임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를 믿어주십시오!” 

셋째로, “저 김종인은 제가 최선의 후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거론되는 차기 대선 후보 가운데 저보다 더 안심하고 이 나라 국정을 맡길만한 재목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대통령’이라는 후진국형 삼류 코미디가 다시 연출되는 불행이 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5년 우리는 국정 참여와 의정 활동 경험이 전무한 아마추어 대통령이 외교의 최전선에서 우리 국가의 위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며, 스스로 힘을 모아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반(反)민주 정권들을 축출한 자부심 넘치는 우리 민주 시민들에게 얼마나 깊은 실망감을 안기는지 이미 충분히 경험했지 않습니까.”

끝으로, “국민 여러분, 저 김종인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려 깊은 애국 시민들이 요소요소에서 이념과 정파를 불문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재 우리는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일지 몰라도 아직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그 ‘문화 국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 ‘문화 대국’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저 김종인이 바로 그러한 정치지도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문화 대국의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그간 김종인은 권력을 탐한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아쉬운 게 뭐가 있어서, 더군다나 이 나이에, 노망들었다는 소리 들을 게 뻔한데 뭘 그런 가당찮은 일을 하겠느냐’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그랬던 그가 84세 최고령 현역으로서 마지막 ‘정치적 도박’을 시작했다. 이번 그의 행보에 행운의 여신이 또다시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그의 고색창연한 45년 정치 인생의 대단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왕이면 그의 도전이 한국의 다당제 정당정치,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 선진화의 신기원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2017),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공저, 2022), 『문화의 이동과 이동하는 권리』(공저, 2022), 역서로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책임과 판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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