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본 척하며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 - 신해철, 말할 자유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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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하며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 - 신해철, 말할 자유를 노래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4.02.25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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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푸코의 〈감시와 처벌〉로 본 신해철의 〈재즈카페〉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 연기 / 테이블 위엔 보석 색깔 칵테일
촛불 사이로 울리는 내 피아노 / 밤이 깊어도 많은 사람들

토론하는 남자 술에 취한 여자 /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척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사람들 돌아가고 문을 닫을 무렵 / 구석 자리의 숙녀는 마지막 메모를 전했네

노래가 흐르면 눈물도 흐르고 / 타인은 알지 못하는 노래에 담긴 사연이
초록색 구두 위로 떨어지네 /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신해철이 부른 노래 <재즈카페>다. 그는 한밤의 재즈 카페에서 노래를 부른다.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 연기, 테이블 위 보석 색깔 칵테일, 촛불 사이로 피아노를 울리며 그는 노래를 부른다. 토론하는 남자, 술에 취한 여자, 밤이 깊어도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며,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척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한다. 그의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한 야당 의원이 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과 악수하며 한 마디를 건넨다.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됩니다!” 그 순간 대통령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고 나간다. 빨간 의자들, 무대 위 오색 색깔 복주머니, 번쩍이는 조명 사이로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됩니다.”라는 한 마디를 외치며 그는 끌려나간다. 연설하는 남자, 박수 치는 여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며,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척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축하한다. 그의 한 마디는 누굴 위한 걸까?

한 대학생이 졸업식에서 작은 펼침막을 펴고 한 마디를 외친다. “연구개발비 예산을 복원하십시오!” 그 순간 대통령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고 나간다. 빨간 카펫, 오색 색깔 학위복, 번쩍이는 조명 사이로 “연구개발비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는 한 마디를 외치며 그는 끌려나간다. 연설하는 남자, 박수 치는 여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며,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척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축하한다. 그의 한마디는 누굴 위한 걸까?

아니, 다시 물어본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못 본 척했을까? 왜 그들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모두가 깊이 숨겨둔 그 마음을 애써 못 본 척했을까?

프랑스 철학자 푸코(Michel P. Foucault)는 그의 책 〈감시와 처벌〉에서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은 (...) 신체의 감옥이다.”

                     - 푸코, 〈감시와 처벌〉


그 많은 사람들이 그 한마디를 못 본 척한 까닭은 영혼이 신체의 감옥이 되었기 때문이다. 몸이 마음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이 갇혀있는) 마음이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럼 마음은 어디에 갇혀있을까? 마음은 시선 속에 갇혀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봄(감시) 속에 갇혀있다.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년 10월 15일 ~ 1984년 6월 25일)

푸코는 현대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봄(감시) 속에 갇혀있는 상황을 철학자 벤담이 발명한 원형 감옥인 판옵티콘(Panopticon)을 빌어 설명한다. 원형 감옥은 감시 탑이 가운데 있는 도넛 모양의 감옥이다. 감옥 벽은 투명한 창살이어서 감시자는 수감자를 잘 볼 수 있지만, 감시 탑의 사방으로 난 감시 구멍은 작아서 수감자는 감시자를 잘 볼 수 없다.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는 봄의 비대칭, 봄의 불평등이 원형 감옥의 핵심이다.

이러한 봄의 불평등은 감시자가 늘 보고 있지 않아도 늘 보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수감자는 보이지 않는 늘 봄(감시)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된다. 수감자는 감시자가 늘 보고 있다는 생각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한 생각의 감옥 속에 갇힌 수감자는 창살이 없어도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한다. 몸이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감옥은 한 명의 수감자 몸을 가두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감옥 밖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시선의 감옥 속에, 다시 말해 늘 봄(감시)의 감옥 속에 가두는 게 목적이다. 한 명을 가두어 수많은 이를 가둘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이제 물어보자.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됩니다!”라는 한마디를 건네는 야당 의원이나 “연구개발비를 복원하십시오!”라는 한마디를 외치는 대학생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가는 데도,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못 본 척했을까? 왜 그들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모두가 깊이 숨겨둔 그 마음을 애써 못 본 척했을까? 아니, 다시 물어보자. 왜 그들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을까? 한 명의 야당 의원이나 한 명의 대학생 입을 틀어막아 수많은 이들의 입을, 아니 마음을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척하던 사람들이 돌아가고 재즈 카페가 문을 닫을 무렵, 구석 자리의 숙녀는 마침내 노래를 신청하는 마지막 메모를 전한다. 노래가 흐르면 눈물도 흐르고, 못 본 척하며 깊이 숨겨둔 마음을 담은 사연이 초록색 구두 위로 떨어진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흐르는 그녀의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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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람들!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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