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적 생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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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적 생명관
  • 강순전 명지대·철학
  • 승인 2024.02.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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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적 생명관』 (강순전 지음, 세창출판사, 260쪽, 2024.01)

 

학문의 발전사에서 생명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목적론과 기계론 간의 거인의 싸움(Gigantomachie)으로 전개된다. 목적론은 존재의 궁극적 근거인 무제약자 혹은 궁극목적을 결정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이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을 존재의 최고 원인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목적론은 형이상학과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중세에 신학적으로 변형되었고, 근대 과학과 철학은 이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근대 과학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네 가지 원인 중 운동인만을 과학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면서 목적론적 사고 전체를 무력화시켰다. 목적인이 배제됨으로써 ‘무엇을 위해서’(Wozu)라는 질문이 근본적으로 폐기되고,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은 자연의 의인화로 간주되어 신임을 잃게 된다. 

근대의 정밀과학은 운동이나 변화의 문제를 탐구대상의 측정 가능성과 수학화 가능성으로 환원시킨다. 자연과학적으로 정확한 사고의 성공은 목적론, 특히 자연적 목적론의 포기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목적론적인 문제 제기를 완전히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연 탐구의 이러한 근대성에로의 발전 경향은 “세계관의 기계화”(Mechanisierung des Weltbildes)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뉴턴 역학의 수학적 엄밀성에 기초한 기계론은 오늘날까지도 자연과학의 지배적 모델이 되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모든 자연과학을 기계론적 물리학으로 환원하는 통일과학의 이념이 제기되었고, 화학은 원칙적으로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에, 기계론에 포함되었다. 현대의 기계론은 물리학과 화학, 전자기학, 분자생물학의 자연법칙적 이론을 포함하는 포괄적 기계론을 형성하고 있다.

기계론은 생명현상에 관한 연구에도 관철되면서, 모든 전통적인 생각들을 ‘애니미즘적이고 마술적인 사고’로 간주하여 완전히 몰아내 버렸다. 생명현상의 연구에서 기계론은 19세기에 절정에 이르지만,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현상에 직면하여 설명력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이미 17세기부터 그와 반대되는 경향이 등장했다. 요한 블루멘바흐(J. F. Blumenbach)와 한스 드리쉬(H. A. E. Driesch)가 대표하는 생기론은 기계론의 적대자로서 이미 19세기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성기에 도달했고, 이때 생기론과 기계론의 대립도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기론은 20세기 초에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기계론적 설명 모델에 대한 거부가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기론은 신비한 힘에 대한 가정에 기초하였지만, 이 비물질적인 생명의 요소를 정확하게 설명해낼 수 없었다. 에른스트 마이어(E. Mayr)는 철학적 목적론을 생기론에 귀속시키지만, 목적론과 생기론은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적론은 ‘원형질’이나 ‘엘랑 비탈’과 같은 신비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생명 실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객관적 질서에 대한 개념적 설명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기론에 대한 대안은 기계론적 접근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종류의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마이어를 위시한 현대 생물학자들은 기계론과 생기론의 대안으로서 유기체주의(Organizismus)를 제시한다. 유기체주의에 따르면 유기체에 있어서 분자 수준의 과정은 물리 화학적 메커니즘으로 철저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더 높은 수준의 통합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설명이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거기서 창발적 특징들이 유기적 체계의 결정적인 특성으로서 도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은 더 이상 합성을 통해서는 적절하게 설명될 수 없으며, 유기적 연관 안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유기체주의자들은 유기체의 유기적 특성과 진화론적으로 형성된 유전 프로그램을 강조한다. 그들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의 통찰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기체주의와 더불어 생명현상에 대한 설명 모델로서 목적론이 다시금 관심을 끌게 된다.

생물학은 기계론적 물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학문으로 성립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기계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생명의 유기성을 개념적으로 논증하는 목적론적 생명관은 기계론적 환원주의와 투쟁하는 생물학의 중요한 동맹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은 한편으로 정밀과학의 영향 아래서 받게 되는 기계론적 학문성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론과의 동맹의 필요성 사이에서 갈등해왔다. 존 홀데인(J. B. S. Haldane)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은 재치있는 말로 표현한다. “생물학자에게 목적론은 첩실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공공연한 장소에서 눈에 띄기를 꺼린다”(Mayr 1979, 210). 

실로 목적론에 대한 관심은 생물학 연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진화론을 목적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오랫동안 있었으며, 최근에 목적론의 문제는 다시 생물학적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근대 과학과 철학이 목적론을 비과학적인 것으로서 폐기 처분했지만, 그들이 버린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아니라 그것을 신학적으로 변형한 중세의 목적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칸트와 헤겔에 의해 근대에 다시 살아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근대적 관점에서 되살린 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을 통해, 생명현상에 대한 다양한 기계론적 설명과 다투면서 오늘날의 생물학을 위한 철학의 목적론적 생명관의 현재적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비판철학에 기초한 칸트의 목적론이 갖는 규제적 특징을 고찰하고, 여기로부터 어떻게 헤겔이 자신의 고유한 목적론의 단초를 발전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턴 역학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기계론적 세계를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로 간주한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는 『판단력비판』의 합목적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칸트는 합목적성을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주관의 사고물로 간주하여 양자를 조화시킨다. 헤겔은 유기체를 인식적으로 구성할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이 기계론에 기초한 인식 비판에 근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칸트의 인식 비판의 전제를 거부하고 유기체를 객관적 실재로서 구성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이 책은 칸트에서 헤겔로의 이행을 칸트 철학에 대한 헤겔의 내재적 비판으로서 논증한다. 칸트는 생명에 대한 개념적 고찰에서 불충분한 사고에 머물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와 헤겔은 이후의 생명에 대한 고찰들이 간과하는 생명의 개념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사유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내용에 기초하여 다윈 진화론과 자연과학적으로 재구성된 목적론인 텔레오노미와 같은 생물학의 기계론적 경향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목적론에 대한 비판으로 거론되는 다윈 진화론의 기계론적 특징을 밝히고, 다윈이 이해한 목적론이 전통적 철학적 목적론의 주장과 다른 것임을 해명한다. 텔레오노미는 형이상학적 목적 개념을 유전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지만, 생명현상의 설명을 위해 유전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결국 목적 개념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하고 목적론을 자연화하고자 하는 논리실증주의의 시도를 이어받은 현대 영미권의 생물학적 기능 논쟁에서, 기원론과 성향론의 일면성을 지적하고 그것들의 종합을 자처하고 등장한 유기체론을 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학문의 발전사 전체를 관통하여 철학은 자연과학에 밀려나면서 언제나 수세적인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자연과학의 객관주의에 대한 후설의 비판, 자연과학과 기술지배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은 철학이 할 수 있는 탁월하고 소중한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자연과학의 침범에 대해 총질을 하면서도 자꾸만 뒤로 물러서기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철학이 생명에 관한 목적론적 통찰을 통해 자연과학 진영 깊숙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철학은 더 이상 자연과학에 밀려 인간적 세계로 물러날 필요 없이, 목적론적 생명관과 함께 객관 세계의 설명에 있어서 크게 전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학적으로 해명될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강순전 명지대·철학

명지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졸업 및 박사 수료. 독일 보쿰(Bochum)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Post-doc., 서울시립대학교 연구교수, 한국헤겔학회 회장 역임. 저서로는 Reflexion und Widerspruch: Eine entwicklungsgeschichtliche und systematische Untersuchung des Hegelschen Begriffs des Widerspruchs, Hegel-Studien (Beiheft 41), 『칸트에서 헤겔로』, 『정신현상학의 이념』, 『철학수업』(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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