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일제가 급조한 괴뢰국이었는가,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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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일제가 급조한 괴뢰국이었는가,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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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480쪽

 

“나는 만주국을 머리가 사자, 몸뚱이가 양, 꼬리가 용인 괴물 키메라로 상정해 보고자 한다. 사자는 관동군, 양은 천황제 국가, 용은 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에 각각 대비시키는데, 그 의미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가운데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이 책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제시한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나갔다.

오늘날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기대와 이상을 품고 이 국가의 건설에 투신하였다. 관동군, 제국주의자들, 국민당 정부와 대립한 중국의 실력자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각자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곳이 바로 만주국이었다. 순천안민(順天安民),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가 실현될 이상국가, 그것이 바로 만주국의 건국이념이었다.

저자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각자 다양한 기대를 품고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을 1~3장에 제시한 뒤 이러한 이상이 삽시간에 변질되고 바스러지는 과정을 4장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일본인 지식인의 표현으로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를 배제하고 아시아에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의 장”이었던 만주국은 일제의 ‘세계전쟁’ 야욕을 위한 병참기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갓난아이를 벌거벗겨 키울 수밖에 없는 참혹한 약탈과 착취의 땅으로 전락해갔다.

만주국은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를 비롯해, 대동학원 출신의 최규하, 겐고쿠대학 출신의 강영훈, 민기식 등 만주국에 참여했던 식민지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국가를 경영하는 주체가 되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만주국의 무엇이 이들을 매료시켰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만주국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주국의 멸망 후 겐고쿠대학의 조선인 학생은 일본인 조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한다. “선생님, 조선이 일본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독립해서야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제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패망하여 후퇴해 가는 일제에게 뼈아픈 충고인 동시에 오늘날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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