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시대, 경계에 선 여성 스타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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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시대, 경계에 선 여성 스타들의 삶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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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제국의 아이돌: 제국의 시대를 살아간 네 명의 여성 예술가 | 이혜진 지음 | 책과함께 | 336쪽
 

20세기 이른바 아이돌로 불린 네 명의 여성 스타 최승희, 리샹란, 레니 리펜슈탈, 마를레네 디트리히. 이들은 ‘제국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다양한 아이덴티티의 ‘경계’를 경험했던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일본과 독일의 제국주의, 즉 당시 동서양의 제국주의를 경험한 이들이 내셔널리즘과 개인의 아이덴티티, 프로파간다와 예술적 성취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었는지, 그것이 성공 혹은 실패했는지를 추적한다.

국가와 예술에 관한 담론은 언제나 활발한 논쟁거리 중 하나로, 특히 20세기에 목도되는 국가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다차원적인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제국의 은막 스타들이 어떻게 국가이데올로기와 교착하면서 내셔널리즘 미학을 구성해갔는지,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이들에게 어떠한 위상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살펴본다. 여기에는 제국 은막의 여성 스타들이 경험한 국가 권력과 문화 권력, 그것을 전유한 대중의 집단기억이 중층적으로 뒤섞여 있다. 이 시기 정치와 예술, 국가 권력과 대중문화의 공모관계는 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기반이 되었던 예술 행위가 자기모순을 초래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과정 자체와 후대의 집단기억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젠더, 인종, 민족 등을 둘러싼 문제들이 빈틈없이 얽혀 있다.

책에 나오는 네 명의 여성은 일본과 독일 제국주의의 유토피아를 기반으로 한 프로파간다를 수행해 당시 스타로서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나, 패전 이후 그 지위를 완전히 박탈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네 명의 사례는 제국주의와 냉전, 국민국가로 이어지는 세계질서 재편 과정에 대한 해소 불가능한 정체성의 균열을 보여줄 것이다. 흔히 ‘아이돌’이라고 하면 빼어난 춤과 노래 등으로 무장한 당대의 슈퍼스타가 연상되지만, 그 어원을 보면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우상’의 의미로 소급된다. 즉 인간 오성의 특별한 경향성을 일컫는 ‘우상’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는 ‘아이돌’은 특유의 친근함과 신비주의를 주요 콘셉트로 하면서 대중의 환상과 동경을 이끌어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제국의 아이돌’이었던 네 명의 이야기는 단지 전쟁과 파시즘이 주조한 극단적인 정치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연쇄가 과거에 일어난 적이 있다면 미래에도 그것이 반복될 수 있으리라는 가정과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 바로 그것이 이들을 주인공으로 소환하게 된 이유다. 오늘날의 첨단 미디어가 여론을 형성하는 방식은 훨씬 더 빠르고 교묘해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속에 프로파간다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무형의 이념이 도처에 존재한다.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부당한 지배 메커니즘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국민=주권자’라는 국적 관념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여하거나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언제든 배척당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 대중은 국가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계기에 직면할 때마다 언제든지 자신의 감각을 재구조화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겪은 뒤틀린 삶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국가이데올로기와 문화 권력 속에 놓인 한 개인의 딜레마, 그리고 소비사회의 기만성과 대중의 공통감각 등 우리 삶의 맥락에서 반추해야 할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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