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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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3.02.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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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올더스 헉슬리가 부추겼다. 조지 오웰도 거들었다.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은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 『멋진 신세계』와 『1984』를 가능케 한, 이른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 그러나 나에게는 정작 사랑 소설이었다.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문학이라기보다 인간의 심리를 중심으로 자아의 서사가 펼쳐지는, 슬픈 러브 스토리.
   이 책을 지루하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흥미진진했다. 읽는 내내 일기 형식이 지닌 진솔함에 온전히 빠져들었고, 메타포가 가득한 문장들에 설렜으며, 사랑을 중심으로 자아의 면모를 헤아려나가는 주인공 D-503에게 내 온 마음을 투사했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멋진 신세계』나 『1984』보다 『우리들』이 훨씬 좋았다. 올더스 헉슬리와 조지 오웰 면전에서는 말하기 곤란하지만, 원조가 지닌, 무시할 수 없는 아우라의 찬란함이란.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들’과 ‘나’ 사이를 러브 스토리로 유영하는, 아련하게 반짝거리는 빛나는 작품.

   나, D-503은 인쩨그랄의 조선 담당 기사이다. 나는 그저 단일제국의 수학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숫자에 익숙한 나의 펜은 협음과 압운을 갖춘 음악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 나는 다만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더 정확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바로 그것이다. 우리, 이 ‘우리’가 내 기록들의 제목이 되도록 하라). 그러나 이것은 단지 우리의 삶, 단일제국의 수학적으로 완벽한 삶의 도함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서,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 편의 서사시가 되지 않겠는가? (「첫 번째 기록」).

   『우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정체성을 규정지어 호명할 이름이 없다. 대신 번호로 불린다. 주인공이 D-503인 것처럼. 전 세계는 ‘은혜로운 분’(『1984』의 빅 브라더와 닮았다)이 통치하는 단일국가 체제로, 모두 유리로 만든 투명한 ‘녹색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속 모든 사람들은 아주 잠깐인 개인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시받는다(그러나 그들은 집단 속 일원으로 보호받는다고 여긴다).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각자 명령 받은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일상의 사이클은 정해져 있다. 
   여기서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 개인의 주체성은 아예 부정된다. 철저하게 이성이란 이름으로 재단된다. “낙원에서 가능한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자유가 없는 행복이냐, 아니면 행복 없는 자유냐”이다. “세 번째는 없”다(「열한 번째 기록). 『우리들』의 경우는 물론 전자. 이러한 맥락은 『멋진 신세계』나 『1984』와 흡사하다.

   주인공 D-503은 원래 수학자이다. 단일제국을 위한 서사시를 쓰려는 D-503은 수학자에서 시인으로 변모한다. 집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 속의 소설, 메타픽션의 구조를 보이는데, 이때 D-503이 써내려가는 글이 일기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일기는 스스로를 독자로 삼는 가장 내밀한 장르. 그 어느 글보다 진솔하게 표출될 수 있는 세심하고도 성찰적인 글. 그래서 『우리들』을 읽는 내내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그대로 온전히 빙의되면서. 
   ‘첫 번째 기록’에서 ‘마흔 번째 기록’까지 소제목을 달고 거기다 키워드들을 기재한 ‘개요’까지 첨부하는 친절함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요가 참고서식 요약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히려 문제제기 역할을 함으로써 독자들의 사유를 확장시켜서 좋았다. 이러한 형식적인 특징들을 배경으로 이성과 비이성의 이분법적인 원리가 ‘녹색의 벽’을 축으로 놓이면서 『우리들』의 내러티브 구조는 전개된다.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일기라는 형식 덕분에 주인공이 집필하는 글은 단일제국을 위한 서사시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헤아리는 심리소설 형태로 바뀐다. 이러한 심리소설을 가능케 한 것이 이 작품의 갈등이나 사건의 계기가 되는, 주인공 D-503이 맞닥뜨린 사랑이다.

   그녀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영감에 가득 찬 시선으로 모든 것을 둘러보고 있어서요. 마치 천지 창조의 제7일을 맞은, 어떤 신화 속의 신 같았답니다. 제게는 당신이 저 또한 당신에 의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확신하는 듯 여겨지는군요. 제겐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 그러나 그녀의 얼굴 어딘가에는, 눈인지 눈썹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묘하고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듯한 X자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포착할 수도, 산술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 (……) 한 가지 철저하게 분명한 것은 대비, 즉 현재와 그 당시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 (……) 나의 오른쪽에는 그녀, 즉 날씬하고 날카롭고, 마치 채찍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유연한 I-330(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번호를 보았다)(「두 번째 기록」).    

   I-330, 그녀는 주인공 D-503을 혼란스럽게 만든 장본인이다. 아니, D-503 그에게 절절하게 사랑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나아가 D-503 자신의 정체성을 헤아리게 한 장본인이다. 
그녀는 D-503에게 영혼의 문제를 진지하게 불러일으킨다. I-330 “그녀는 이미 더 이상 번호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인간이었다.”(「스물두 번째 기록」) 그러니까 영혼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것이지, 단일제국의 시민들 번호들에게는 질병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단일제국의 시민들인 “우리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개인’이 아닌 ‘…… 중의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동일한 것이다.”(「두 번째 기록」) 이러한 동일성과 단체성을 넘어 D-503은 사랑의 힘 덕분에 영혼의 카테고리 속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D-503은 억압적인 단일제국의 틀에서 점점 이탈한다. ‘인간’ I-330과 사랑에 빠지면서 ‘번호’ D-503은 영혼의 위력을 얻는 질병에 걸리게 되고 서서히 ‘인간’이 되어간다. 영혼과 자유의 의미망을 유영하면서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개인성을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사랑마저 작위적이었던 단일제국의 틀을 벗어나 D-503은 주체적으로 삶을 헤아려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혼란이나 갈등과 함께 자아분열을 겪는다. 이것이 『우리들』에서 일어나는 최대의 사건이다. 플롯의 역동성이 전혀 불가능했던 단일제국에서의 삶의 서사에서 D-503은 사랑으로 자유를 선택했으니. 

   두 명의 내가 있었다. 하나는 이전의 나, 이전의 D-503, 번호 D-503. 또 다른 하나는 ……. 이전에 그는 다만 자신의 털북숭이 손을 껍질 밖으로 슬쩍 내밀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온몸이 밖으로 나왔다. 껍질이 소리를 내며 찢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산산이 부서질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지푸라기를 부여잡듯이 전력을 다해 의자의 팔걸이를 꽉 잡고서 나는 물었다. 나 자신, 즉 이전의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 그때 제2의 내가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나는 허락하지 않겠어! 나 이외에는 아무도. 누구든…….”(「열 번째 기록」).

   융의 자기(self) 개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융은 온전한 하나의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에게는 자기(self)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받아들여 의식의 세계와 통합하는 자기실현 또는 개인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온전한 ‘나’이기 위해서는 의식과 오성의 테두리 안에 놓인 자아(ego)의 세계를 벗어나 무의식적이고 반이성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존재인 자기(self)의 세계를 발견하고 가 닿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D-503은 I-330과의 사랑으로 자기(self)의 세계를 발견하려 나아간다. 영혼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면서. 그러므로 그 가운데 겪는 분열이나 혼란, 갈등은 통과제의 같은 것이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독백은 뜻밖의 발언이 아니다. “나는 혼자다. 저녁, 희미한 안개. 하늘은 황금빛이 도는 우유색 장막으로 가려져 있다. 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내가 정말 나인지 알 수 있다면(「열한 번째 기록」).” 이어 자신을 성찰하는 독백도 낯설지 않다. “나는 거울 앞에 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그래 정확하게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놀라워하면서 나 자신을, 제3의 인물을 보듯 바라보고 있다. 여기 내가 있다. 그는 동시에 제3의 인물이다(「열한 번째 기록」).”

   짐작하듯이 세상의 이치가 내 마음처럼, 순차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D-503이 I-330과의 사랑을 지속하면서 영혼을 온전히 지닌 개별 인간으로 한없이 나아갔더라면, 나름의 해피엔딩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먀찐은 존재가 지니는 내부의 이율배반적인 상태에 아무래도 방점을 두고 싶었던 것 같다. 이성의 범주와 비이성의 범주와의 역학관계가 그것이다. 먼저 이성의 범주로 보면, 작품 속 ‘녹색의 벽’의 비호 아래 안주하려는 욕망을 들 수 있다. 녹색의 벽은 인간을 자연과 격리시키고 자연스러움이 주는 고통이나 욕망, 카오스의 상황들을 차단하는 보호막을 제공한다. 보호막 아래 단일제국이라는 전체성에 소속되면서 그 일원으로서 그저 안주하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비이성의 범주로 보면, 이른바 자유의 구가를 들 수 있다. 또는 일탈과 거부의 욕망이 그것이다. 주인공인 D-503의 몸속에는 자연의 상징인 ‘숲의 피’ 한 방울이 숨겨져 있는데, I-330과의 사랑으로 ‘숲의 피’가 발현되고 억압의 상징인 녹색의 벽을 넘는 자유를 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D-503은 다시 ‘우리들’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헐떡거리고 더듬거리며 일어난 모든 일을, 여기 쓰인 모든 일을 얘기”하면서. “진짜 나와 털북숭이 나에 관해” 말하면서. “묶인 채 수술을 받”고 “그 다음 날 나 D-503은 ‘은혜로운 분’께 출두하여 행복의 적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모조리 진술”하면서. 그리고 영혼을 덜어내는 수술을 한 탓인지 사랑한 그녀 I-330이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하려는 상황을 무신경하게 목도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거나. 이러한 이율배반적이고도 양면적인 상태의 갈등이, 그 역학관계가 언제까지고 변주되는 것이 여전히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 그래서 자먀찐이 ‘우리들’ 속으로 D-503을 결국 들어앉혔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그러한 파국을 차치하고서, I-330과의 사랑이 있었기에 D-503 자신의 삶의 서사에 역동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들』은 결국 러브 스토리라는 생각.   

   “그대는 안개를 사랑하나요?” (……) / “그래, 좋아해…….” 나는 큰 소리로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안개를 증오해요. 나는 안개를 두려워해요.”/ “그것은 즉 사랑한다는 얘기죠. 그대는 안개가 자신보다 강력하기에 두려워해요. 그리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증오하지요. 또 정복할 수 없기에 사랑하지요. 사실상 우리는 정복할 수 없는 것만을 사랑할 수 있죠.”/ 그래, 맞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열세 번째 기록」).

   『우리들』을 읽으면서 문학작품이 지닌 힘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무엇을’보다 그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진실과 감동의 힘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메타픽션과 일기의 형식으로. 이렇듯 『우리들』은 ‘어떻게’에서 절묘하게 그 위력을 발휘한다. 온 몸의 영양분이 빠져나가듯 시선을 ‘어떻게’로 흐르게 한다. 결코 독단적이지 않게. 마치 포르투갈의 파두를 읊조리는 느낌으로.
   I-330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마치 소설과 같아서,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 전에 그것이 어떻게 끝나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힘으로 ‘우리들’에서 ‘나’로 초점이 옮아갔지만 결국에는 다시 ‘우리들’로 되돌아가는 결말이 아프면서 마음을 몹시 복잡하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의 맨 마지막 문장이 자꾸 마음 쓰인다. “이성은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 1920년에 창작된 작품을 백년도 더 된 2023년 2월에 거듭 읽는 마음자리란. 그렇지만, 그래도, 사랑의 힘, 그 역동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자리란.

   정말로 나 D-503이 여태껏 2백여 페이지를 쓴 것일까? 내가 정말로 한때 이런 식으로 느꼈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상상을 한 걸까?/ 필체는 나의 것이다. 계속 같은 필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필체만이 나의 것이다. 이제 그 어떤 혼몽도, 어리석은 메타포도, 그 어떤 감각도 없다. 있는 것은 다만 사실들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건강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절대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소 짓는다.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내 머리에서 무슨 가시 같은 걸 뽑아냈으므로 머릿속은 가볍고 텅 비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텅 비었다기보다는 이질적이거나 미소를 방해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마흔 번째 기록」).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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