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사회적이고 심지어 생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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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사회적이고 심지어 생태적이다
  • 조재원 UNIST·환경공학
  • 승인 2022.12.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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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참사 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희생자 부모와 유족들의 마음은 피멍이 든 채 한해를 넘길 듯하다.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고 책임자가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희생자 부모와 유족들에게 이미 받았을 많은 위로를 넘어 이번에는 충분한 사회적 애도를 하는 것이다. 위로는 개인 간에 이루어지지만 애도는 사회적 행동이다.

수능시험을 망친 수험생에게 친구들은 위로한다. 시험점수가 곧 인생의 점수는 아니지 않냐고, 재수를 한다면 내년에는 시험 잘 볼거라고 위로한다. 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카타르에 갔지만 단 1분도 뛰지 못한 그리고 예비선수로 참석한 선수들에게 우리는 위로를 보낸다. 비록 경기에는 뛰지 못했지만 그래도 함께 해서 강한 원팀이 될 수 있었고 다음 월드컵 때는 주력 선수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위로는 이렇듯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전달된다. 위로의 행동은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는 있지만 한정적이다. 위로는 개인 간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사의 희생자와 같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위로를 전할 대상이 없다. 이때 우리는 애도의 길을 택한다.

애도는 슬퍼하고 또 슬퍼하는 행동이다. 위로를 받을 희생자가 없으니 애도하는 것이다. 애도도 개인이 희생자란 또 다른 개인에게 하는 행동이지만 희생자가 받아줄 수 없으니 애도의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사회적이다. 애도라는 사회적 소통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이 위로했다, 충분히 보상했다, 슬픔에 머물러 있을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는 애도가 가진 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것이다.

자식의 영정 사진을 부둥켜안고 잊지 말아달라고 울부짖는 부모는 이미 많은 위로 받았고 충분히 보상받았고 슬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답을 강요할 수 없으니 해석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 부모가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우리에게 말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아니 말해야만 하는 말이 희생자의 부모에게 있다. 조목조목 따져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닌 언어 이전 인류의 피 속에 담겨 있는, DNA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진리 말이다. 그것은 희생자를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우리가 애도하지 않으면 결코 사회는 집단 우울을 극복할 수 없다는 진실이다. 희생자를 충분히 애도할 때 애도는 사회적 소통 속에서 비로소 애도하는 모두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가? 누구도 알려주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다. 우리의 애도를 받은 희생자가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 가해자가 이제 충분히 사과했다고 말하는 것은 가식으로 사과했다는 증거다.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야 용서는 받아들여지면서 끝이 난다. 희생자에게 오히려 위로받을 때까지 애도하고 또 애도해야 한다. 그 시점은 국가, 법, 개인, 유족이 아닌 애도를 전하는 우리 가슴이 희생자의 위로가 하늘로부터 전해질 때 알려줄 것이다. 이것이 세상 모든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진리이며 희생자 부모가 눈물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훗날 우리 모두가 받게 될 위로의 메시지이다. 슬픔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이타적 행동으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희생자 부모께 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재원 UNIST·환경공학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환경공학자이고, 환경윤리학, 과학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과학예술융합 프로젝트 사이언스월든을 2015~2021년 동안 연구책임자로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똥본위화폐을 제안하고 플랫폼을 통해 실제 구현하였다.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개마고원, 2021)’를 공저로 출간하였다. 현재 서울신문 ‘조재원의 에코사이언스’ 칼럼을 격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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