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향전〉의 문학사적 가치와 의의를 총체적으로 구명(究明)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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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향전〉의 문학사적 가치와 의의를 총체적으로 구명(究明)하다
  • 이상구 순천대학교·한국고전산문
  • 승인 2022.10.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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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숙향전」의 이본과 작품 세계』 (이상구 지음, 국학자료원, 492쪽, 2022.08)

 

<숙향전>은 <구운몽>, <사씨남정기>, <창선감의록>, <소현성록> 등과 함께 국문소설의 발흥기인 17세기 말에 창작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가장 애독되었던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숙향전>의 이본이 137종이나 될 뿐만 아니라 여러 문헌과 고전문학 작품 속에 <숙향전>과 관련된 내용이 두루 삽입되어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권섭(權燮, 1671~1759)의 『남행일록(南行日錄)』, 이옥(李鈺, 1760~1815)의 『이언(俚諺)』,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추재집(秋齋集)』, 홍희복(洪羲福)의 <졔일긔언서문>(1835), 소전기오랑(小田幾五郞)의 『상서기문(象胥紀聞)』(1794) 등에는 ‘숙향전’이라는 작품명이 언급되어 있으며,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 김수장(金壽長, 1690~?)의 『해동가요(海東歌謠)』, <박씨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배비장전>, <두껍전>, <옥소전>, <담낭전>, <봉산탈춤>, 민요 <성주풀이>, 가사 <화전가> 등에는 ‘숙향’이라는 이름이나 <숙향전>과 관련된 대목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문헌 가운데 『추재집』과 <배비장전>에 수록된 내용은 조선 후기 <숙향전>의 인기를 시사하고 있어 특히 주목된다. 『추재집』에는 전기수(傳奇叟)가 구송했던 작품들 가운데 <숙향전>이 맨 처음 언급되고 있으며, <배비장전>에는 배비장이 ‘<삼국지>, <수호지>, <구운몽>, <서유기>는 책 제목만 잠깐 보고 <숙향전>을 펼쳐 읽는다’는 대목이 있다. 보통 사물을 열거할 때 중요하거나 독자의 관심도가 높은 것을 먼저 제시한다는 점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러 작품 가운데 오로지 <숙향전>만을 골라 읽었다는 것은 당시 독자들에게 <숙향전>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조선 후기 독자들에게 <숙향전>은 대단한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숙향전>에 대해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작품의 내용이나 수준보다는 초기 고소설 연구자들의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우리 고소설사를 정리한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서 ‘<숙향전>은 몽환적·비현실적 부분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나머지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이러한 견해가 1990년대까지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사실 <숙향전>은 천상의 신령들이 직접 지상계에 내려와 위기에 처한 숙향을 구원하고 선계와 신선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등 고소설 가운데 환상적 성격이 가장 농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태준의 지적처럼 <숙향전>은 비현실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볼 것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숙향전>은 비현실적 측면 못지않게 전쟁고아가 겪는 고난의 실상을 비롯하여 봉건적 신분관계에 따른 애정갈등의 문제 등 현실적 계기들을 사건 전개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숙향전의 이본과 작품 세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숙향전>을 종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숙향전>의 문학사적 의의와 가치를 정당하게 자리매김할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숙향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은 크게 이본 연구, 작품 세계, 부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본 연구는 주요 이본 32종(국문본 20, 한문본 11, 일역본 1)을 대상으로 삼아 각 이본의 선후관계와 계통 등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현존 이본 가운데 가장 선본(善本)은 한중연A본이며, 원작은 현존하지는 않지만 국문으로 된 한중연A본의 선본(先本)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작품 세계에서는 창작 시기와 작품의 유형, 작품의 현실적 성격과 애정 갈등, 낭만적 구성의 의의와 한계, 작가의 세계관과 그 지향 등을 고찰·분석하였다. 그 결과를 간략하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숙향전>의 창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권섭이 1731년 동래 왜관에서 ‘諺書淑香傳’을 보았다는 기록(『남행일록』)과 일본 유학자 우삼방주(雨森芳洲)가 1703년에 ‘<숙향전>으로 조선어를 공부했다’는 기록이다. 두 기록은 <숙향전>이 적어도 17세기 후반에는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숙향전>의 유형은 서사의 초점이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결연 및 이로 인한 갈등과 해결 과정에 맞춰져 있는바, 애정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온당하다. 

<숙향전>은 숙향이 ‘전쟁고아’에서 ‘시녀’로, ‘시녀’에서 다시 ‘술집 기녀’로 전락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하나하나는 현실적 개연성이 농후하며, 조선 후기의 세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들 사건이 모두 숙향의 현실적 처지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 일관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숙향전>은 환상성 못지않게 현실적 성격도 풍부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숙향전>의 핵심적인 내용은 숙향과 이선의 만남 및 결연이며, 이들의 결연으로 야기되는 숙향·이선과 이상서의 대립이 <숙향전>의 가장 핵심적인 갈등으로 설정되어 있다. 술집에 기거하는 비천한 존재인 숙향과 양반사대부가의 귀공자인 이선의 대등한 결연은 본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필연적으로 중세적 신분질서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상서가 굳이 숙향을 죽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숙향전>의 환상성도 숙향과 이선의 대등한 결연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중세적 신분관계의 질곡이 엄연히 존재했던 조선 후기에 술집에 기거하는 숙향과 귀공자인 이선의 결연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숙향과 이선의 대등한 결연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도선적 요소와 결부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숙향전>은 그 제재와 주제가 현실의 민감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강한 현실적 성격과 의미를 내포하게 됨으로써 더욱더 환상성이 강화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요지연도(瑤池宴圖)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숙향전>에서 남녀 주인공의 전신(前身)은 월궁소아와 태을선군인데, 요지연 때 월궁소아가 반도를 훔쳐 태을선군을 주면서 수작한 죄로 인간세계에 적강하게 된다. 인간세계로 적강한 숙향(월궁소아)과 이선(태을선군)은 어느 날 각자 요지연에 참여하는 꿈을 꾸고 서로 천정연분임을 깨닫게 된다.<br>
요지연도(瑤池宴圖)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숙향전>에서 남녀 주인공의 전신(前身)은 월궁소아와 태을선군인데, 요지연 때 월궁소아가 반도를 훔쳐 태을선군을 주면서 수작한 죄로 인간세계에 적강하게 된다. 인간세계로 적강한 숙향(월궁소아)과 이선(태을선군)은 어느 날 각자 요지연에 참여하는 꿈을 꾸고 서로 천정연분임을 깨닫게 된다.

<숙향전>은 철저하게 숙명론적 세계관을 작품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데, 그 요체는 천정연분이다. 조선 후기의 지배층은 성리학적 도덕관념에 따라 청춘남녀의 사랑을 억압하였다. <숙향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숙명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숙향과 이선의 만남과 결연이 천정연분에 따른 것임을 그럴듯하게 구현하였다. 따라서 <숙향전>의 숙명론적 세계관은 성리학적 천명사상과는 분명 다르며, 도리어 그것을 부정·극복하기 위한 관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숙향전>은 전반적으로 ‘시은(施恩)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대변되는 도덕적 지향을 철저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는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처럼 소박한 차원의 것으로, 중세적 이념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층의 성리학적 도덕관념과는 분명히 다르다. 특히 <숙향전>의 도덕주의적 지향은 남녀차별과 가장의 절대적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숙향전>에서는 작가의 철저한 도덕주의가 남녀차별과 가부장적 권위를 부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숙향전>에 표방된 소박한 도덕주의는 ‘진리와 정의에 의해서 최후에는 선이 승리한다’는 민중지향적 관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부록에는 「숙향전의 연구 현황과 전망」, 「숙향전에 나타난 선계의 형상과 작가의식」, 「후대소설에 미친 숙향전의 영향과 소설사적 의의」를 수록하였다. 「숙향전의 연구 현황과 전망」은 2000년 이전까지 이루어진 연구를 대상으로 그 성과와 한계를 점검한 후 향후 과제와 전망을 다루었다. 「숙향전에 나타난 선계의 형상과 작가의식」은 ‘작품 세계’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집필하였다. <숙향전>에는 우리 소설이나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선계와 신적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신선처럼 장생불사하면서 선경에서 자유롭게 풍류를 즐기려는 작가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후대소설에 미친 숙향전의 영향과 소설사적 의의」에서는 <숙향전>에 나타난 화소를 중심으로 후대소설인 <박씨전>, <금방울전>, <남윤전>, <소대성전>, <적성의전>, <육미당기>, <쌍주기연>, <김진옥전>, <장경전>, <김원전> 등에 미친 영향을 논증하였다.   

<숙향전>은 <구운몽>, <사씨남정기>, <창선감의록>, <소현성록> 등과 함께 17세기 말에 창작되었으나, 이들 작품과는 달리 민중적·진보적 성향이 강한 작품이다. 신분의 차이에 따른 남녀의 애정 문제를 주요 갈등으로 설정한 가운데 남녀의 차별과 절대적 가부장권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숙향전>은 숙향의 시련과 행복한 결말을 통해 당시 민중과 부녀자 등 소외된 계층의 고달픈 삶을 반영하면서 그들의 원망을 환상적 기법을 통해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숙향전>의 가치와 의의를 총체적으로 밝혀보고 싶었던 저자의 욕망의 산물이다. 부족한 점이 적지 않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숙향전>은 물론 우리 고소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이상구 순천대학교·한국고전산문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숙향전의 문헌적 계보와 현실적 성격」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장과 사범대학장, 한국고전여성문학회장, 한국고소설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역서로는 『한국 고소설의 작품 세계와 지향』, 『17세기 애정전기소설』, 『유충렬전』, 『숙향전·숙영낭자전』, 『방한림전』, 『금방울전·박씨전』 등이 있다. 특히 고소설을 현대어역한 『숙향전·숙영낭자전』은 프랑스어, 몽골어, 베트남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출간되었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일본 등에서도 번역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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