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인의 삶을 통해 본 한인 사회 정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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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한인의 삶을 통해 본 한인 사회 정착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2.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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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한인의 베트남 정착과 초국적 삶의 정치 | 채수홍 지음 | 눌민 | 344쪽

 

베트남 한인의 정착 과정과 사회경제적 분화, 한인과 베트남인이 벌이는 정체성의 정치를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베트남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정착사를 통해 베트남 경제가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 한인들이 해온 역할과 활약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베트남 한인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오랫동안 축적해온 자료는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번 저서를 통해 베트남에서 사는 한인의 정체성을 한인 사회 내부의 사회경제적 분화와 문화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였다. 특히,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와 호찌민을 필두로 한 남부에 형성된 역사와 사회문화적 특징에 따라 베트남 한인 사회 내에서 문화적 ‘구별 짓기’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기술은 매우 흥미롭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는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로 90년대 베트남 개혁개방정책을 계기로 시장경제체제로 빠르게 변화해나가며 외국자본에 의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한국의 많은 기업이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베트남 현지에 공장을 짓고 직원을 파견, 이주하였다.

이렇듯 베트남 한인 사회는 아주 짧은 기간에 형성되었으며, 한인의 베트남 이주는 정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기 위한 일시적인 이주인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 한인의 삶이야말로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넘어서는 초국적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베트남 한인은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하고 질적으로도 분화될 수밖에 없다. 해외 공관원이나 대기업 상사 직원 등의 주재원, 중소기업의 공장 매니저, 자영업자, 취업 대기자와 실업자, 은퇴자 등이 정치경제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실천 행위에 따라 차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 형태나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따라서도 베트남 한인 사회는 조금씩 다른 양태를 나타낸다.

오늘날 한국은 베트남의 제2 수입국이자 제3 수출국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상태이다. 57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와 7천 개가 넘는 기업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과 한국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 협력국인 것이다. 여기에는 삼성과 같은 초대형업체뿐 아니라 대형 은행, 건설사, 유통업체 등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형업체를 따라 이동해온 하청업체와 부자재 업체, 이들의 식품, 교육, 편의, 유흥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자영업자까지 치면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인 수가 최소 15만에서 최대 2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자본 기업이 베트남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젊고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베트남 경제의 고속성장과 경제발전에 한인 사회가 일조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베트남인을 타자화시키는 문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원인으로 베트남인의 문화적 관념과 행동양식 탓으로 돌리는 행태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내는 것이다. 공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장 매니저는 베트남인이 “청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책임감이 없다”라고 비난하고, 마찬가지로 베트남 근로자도 불만이 증폭되면 한인 매니저가 “급하고”, “폭력적이고”, “의심이 많다”라고 하며 부정적 ‘민족성’으로 해석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오래 살아온 많은 한인이 베트남을 ‘감사의 땅’이라고 말한다. 현지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문화적 차별을 거의 느끼지 않으면서 현지인과 함께 살 수 있었다는 점에 위안을 얻고 안도한다. 이처럼 감사하는 감정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한국 자본의 베트남 투자 추이에 달려있다. 베트남 한인 사회가 형성된 계기와 발전 동력이 모두 한국기업의 이전과 투자에서 비롯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전지구화와 초국가주의의 물결 속에서 타문화와 다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청년층 한인 수가 증가하고, 이러한 구성원의 변화는 한인 사회를 이전과는 다른 공동체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베트남 한인과 현지인의 관계 맺기 양상 또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부류로 분화하면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해가고 있는 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특징을 가진 베트남 한인이 현지 베트남인과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떻게 일상에서 협력하고 갈등하는지, 어떠한 문화적 관념을 주고받으며 어떠한 정치 과정을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인들 간의 ‘구별 짓기’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베트남과 한국 간의 경제적 상생 관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베트남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인의 역할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화해나갈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낀’ 채 초국적 삶을 살아가는 베트남 한인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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