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혁신의 영감을 끝없이 공급해주는 창의(創意)의 샘물
상태바
미술은 혁신의 영감을 끝없이 공급해주는 창의(創意)의 샘물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14 1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혁신의 미술관: 새로운 가치 창조, 미술에서 길을 찾다 |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72쪽

 

저자인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이 책에서 천착한 주제는 ‘혁신’이다. 미술사의 시공간을 능란하게 가로지르며 혁신의 비밀을 파헤칠 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분야의 혁신을 통찰하여 오늘날의 풍요와 편리, 안전 등이 혁신의 결실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혁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이라고 보았다. 이때 주인공은 물론 자본가이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까마득한 석기시대, 엄혹한 환경에서 생존이 제일가는 목표이던 시대에도 인류는 동굴 벽에 놀랄 만큼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인류 문명이 태동하기 전에 이미 꽃을 피웠을 정도로 미술은 원초적인 활동이며 혁신의 DNA가 내장되어 있다. 사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술사 자체가 혁신의 역사이며 (자본주의의 주인공이 자본가이듯) 이 역사의 주인공은 위대한 미술가들이었다.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를 내세웠듯이 미술가들도 기존 이념과 체제에 길들지 않고 파괴와 창조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이들은 미술의 천재일 뿐 아니라 혁신의 천재였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르네상스, 이후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업적을 남긴 미술가들의 혁신의 비결은 무엇일까?

★ 패턴을 찾아라
조형예술에서 패턴은 숨은 질서를 암시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조각과 그림에서는 정형화한 패턴으로 이미지를 통제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패턴을 이용해 조형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비판적으로 사고하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실제 사람의 형상을 재현한 것 같은 사실적인 표현에 성공했다. 다른 고대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완벽한 사실주의 미학은 그리스인 특유의 비판적 사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판적 사고에서 유래한 혁신은 휴머니즘에 기반을 두었다. 바로 인간의 관심사와 능력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 순혈이 아닌 혼혈이 길이다
크게 번창하고 국경을 넘어 보편화되는 문화는 강력한 혼융의 요소가 있다. 이종교배 없이는 문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고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가 번창하기도 어렵다.

★ 관점을 바꾸라, 새 세계가 열린다
갑작스러운 사회변화는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생각과 태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미술에서 이러한 전환을 이룬 일대 사건은 바로 원근법의 창안이다. 르네상스시대에 투시원근법이 창안됨으로써 화가들은 비로소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미술사의 대변혁을 일으킨 원근법이 오늘날에는 더이상 절대 규범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원근법, 아니 회화와 예술 자체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예술가들도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 의미를 부여하라
어떤 비즈니스든 그저 이윤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보다 더 큰 차원의 의미를 끌어내지 않으면 경제적 가치 창출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혁신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고, 혁신이란 근원적인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의미를 중시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행위는 혁신에 불을 지필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는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

★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라
동양의 산수화와 달리 서양의 유화는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할 수 있다. 수정과 개선, 바로 여기서 혁신이 나온다. 혁신은 한걸음에 달성되기보다 부단한 수정과 개선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맨 처음 나온 것’이 가장 오래가는 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이 가장 오래간다. 흥미롭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걸작들이 탄생했다. 

★ 다양성은 혁신의 아버지
다양성은 혁신을 낳는다. 구성원의 ‘색깔’이 다양할수록 공동체는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낸다. 다양성의 확대는 미술사에서도 빈번히 혁신을 초래했다. 

★ 관찰하고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
관찰하라. 진득하게 지켜볼수록 관찰자는 고유한 편견과 경험에 따라 남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창조와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진정한 관찰은 단순히 사물의 외양을 파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물의 질서를 꿰뚫어보고 오리지널한 시각으로 질서를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 무의식이 창조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화가들은 창작 활동을 하면서 ‘머리’가 생각만큼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곧잘 좌절한다. 일상에서는 그리도 유용한 머리가 창조 과정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아예 이성이나 의식의 체계로부터 일탈해 파괴적이고 해체적인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을 들 수 있다. 이성의 통제 없이, 또 미학적·윤리적인 선입관 없이 무의식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 표현법이다. 

★ 단순화하라
“버튼을 제거하여 장치를 단순화했고, 기능을 줄여 소프트웨어를 단순화했으며, 옵션을 없애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했다.” 애플사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 이야기다. 미술은 단순화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예술이다. 특히 추상미술은 지극한 단순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추상미술의 탄생과 전개는 산업화를 통해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인류가 마침내 ‘버림의 미학’에 의지해 ‘다다익선’이 아니라 ‘소소익선(少少益善)’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확산시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추상미술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삶의 무게를 덜라는 신호를 보내주는 현대의 나침반 같은 예술이라 하겠다.

 

모든 혁신가에게 ‘한계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혁신은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계가 없었다면 혁신도 없었을 터이다. 미술 또한 재료와 기술, 방법의 혁신을 통해 부단히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석조(石彫)를 발달시켰고,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브론즈 조각을 발달시켰다. 숯을 만드는 기술은 먹을 만드는 기술로 나아갔고, 튼튼한 돛을 만드는 기술은 유화를 위한 캔버스를 낳았다. 종이의 발명은 수성 회화 및 판화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의 발달은 이와 연관된 미술의 혁신을 낳았으며 이는 시대정신과 맞물려 다채로운 양식과 조형어법이 파생되었다.

미술가들은 매일 무수히 한계에 부딪히고 매일 부단히 판단 중지를 행한다. 그리고 순수한 눈으로 깊이 들여다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몇 시간 동안 그림을 하나도 그리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 적도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패턴을 찾고, 양식과 기법을 창안하고,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다. 이로써 새로운 혁신이 초래되고 창조가 이뤄진다. 작품 감상을 통해 혁신의 다양한 표정을 집중적으로 조망하게 하는 미술은 혁신의 영감을 끝없이 공급해주는 창의(創意)의 샘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