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윤동주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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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윤동주의 모든 것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15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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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살아있다: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인의 모든 것 |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640쪽

 

『윤동주 살아있다』는 2022년 윤동주 순절 77주년을 맞이하여, 이제까지 발표된 국내외 윤동주 관련 자료와 새로 취재해 찾아낸 사실들을 한 권에 수록한 책이다. 영원한 대한민국 청년시인 ‘윤동주 시정신’을 지키고 기리기 위해 2017년 ‘윤동주탄생 100주년문화예술제’를 하면서부터 기획된 책이다. 

그동안의 기록과 폐간되어 없어진 국내외의 신문 잡지를 찾아 자료를 모아서 정리하고 번역했다. 따라서 윤동주의 탄생부터 서거까지를 망라한 책으로 영원한 청년 시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의 친구, 스승, 가족과 함께 사후 윤동주를 연구하고 사랑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 그의 한글 사랑과 독립에 대한 염원과 시를 쓰는 절절한 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인의 ‘시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나라는 윤동주 보유국입니다. 일본도 윤동주 시인을 탐하고 중국도 윤동주 시인을 욕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윤동주를 지키고 기려야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하늘’이고 ‘바람’이며 ‘별’이고 ‘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윤동주는 청년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었고, 시인들에게는 왜,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2017년 ‘윤동주 100년의 해’ 선포식을 가진 후부터 저는 윤동주 시인의 혼적이 남아 있는 많은 현장을 탐사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유혼(幽魂)과 만났습니다. 이를 통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윤동주 관련 유의미한 자료 수집은 물론 아직 규명되지 않은 윤동주 죽음의 미스터리를 취재하여 그 결과물들을 이 책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윤동주를 ‘발견하고’ ‘지키고’ ‘기리는’ 일의 시작일 뿐이어서, 누군가 더 능력 있는 분들이 더 ‘깊이’ ‘정확하게’ 계속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윤동주 시인 순절 77주년에 맞춰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펴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민윤기 시인의 책머리에 … 문학평론가 저널리스트 서울시인협회 회장)


* 처음 공개되는 사실 10가지

01 윤동주 시신을 화장한 화장터는 후쿠오카 히바루 장제장이다
02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서시」라는 제목이 없다
03 왜, 어떻게 고향에서 윤동주 가족은 재산도 빼앗기고 쫓겨났을까?
04 ‘윤동주는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중국 동북공정의 음모
05 어떻게 일본 국어교과서에 윤동주 시가 실리게 되었을까?
06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는 어떻게 참혹하게 죽어갔을까?
07 신사참배 반대운동 앞장서다 숭실중학을 자퇴한 윤동주의 용기
08 윤동주와 교유한 일본시인을 최초로 공개한다
09 윤동주는 창씨개명하지 않았다
10 윤동주에게는 시인 막내동생이 있었다

 

*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 사람들

  윤동주  시인 (사진출처=위키백과)

- 윤동주는 죽기 전에 그의 시 속에서 죽고, 그 시를 열고 이제 부활하였다.(문익환)

- 조용한 몸가짐에, 격동하는 마음을 가진 시인이 윤동주입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 속에 휘말려도, 조용히 이를 맞아 가며 사는 시인이었습니다. 죽음의 뜻을 깨쳐 가며 사는 시인이었습니다. 순수하기만 한 시인입니다. 늘 잠잠한 표현을 합니다. 그런 삶의 리듬이 시에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읽혀지는 것이라 봅니다.(박창해)

- 윤동주가 옥사했다는 부음을 나는 신경(新京)에서 받았다.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기는 동주가 사망한 지 10일 후였다. 면회 절차 수속을 밟으며 뒤적거리는 놈들의 서류를 보아한즉 ‘독립운동’이라는 글자가 한자(漢字)로 판 박혀 있는 것이었다.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주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 사망한 지 열흘이 되었으나 규슈제국대학에서 방부제를 써서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본 청년 간수 하나가 따라와서 우리에게 하는 말, “아하, 동주가 죽었어요, 참 얌전한 사람이…. 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소리를 높게 지르면서 운명했지요.” 하며 동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윤영춘)

- 나는 그 무렵 윤동주가 암흑의 동굴 속에 있으면서 더욱 더 한 줄기 불빛을 비추고 있는 꿈을 꾸었다. 쇼와 18년(1943년) 수도 신경 초여름의 상쾌한 관사에 있던 나에게 보내온 친구의 전문(電文)은 “동주 체포”였다. 한 순간 눈앞을 검은 장막이 뒤덮고 솟아오르는 분노로, 예전에 전차포를 우리 아군의 사령부를 향해 발사한 사고思考의 흐트러짐을 내 정신의 분열과 함께 느꼈다. 윤동주는 나의 뇌리에 아름답고 선명하게 불꽃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치안 유지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윽고 윤동주는 조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옥중사(獄中死)했다. (우에모토 마사오)

- 윤동주는 언제나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살았던 시인이었다.(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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