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을 통한 조선시대 ‘감정사(感情史)’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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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을 통한 조선시대 ‘감정사(感情史)’ 연구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0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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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읽기_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부안김씨 간찰』 (전경목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424쪽, 2021.04)

조선시대 양반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 고문서 연구를 통해 일상사를 규명해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전경목 교수가 이번에는 편지의 행간과 이면에 담겨 있는 인간의 감정에 주목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 향촌에 있던 한 가문과 외부의 여러 세력들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저자는 부안 김씨 우반종가에 소장된 간찰 자료를 활용해 양반의 일상사와 다양한 감정을 살핀다. 

부안김씨 우반종가에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5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주고받은 수백여 편의 편지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지방양반의 생활상과 일상 감정을 전한다.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의 유물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는 우반동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앞에는 넓은 농토와 뒤에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이 마을은 서해 부안 변산 바닷가에 인접하여 있고, 마을 입구에는 고인돌과 지석묘가 있다.

부안김씨의 시조는 김일(金鎰)이며 중시조는 문정공 김구(金坵)이다. 김일의 증손 김경수(金景修)가 고려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 우복야(右僕射)에 올랐다. 그의 아들 김춘(金春)이 나라에 공을 세워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책봉된 바, 이후에 후손들이 부령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부안은 1413년 조선 태종 13년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 두 개의 현을 합병하여 부안현(扶安縣)이 됐다.

우반동에 처음 입향한 인물은 김번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명열(金明說)이고 조부는 김홍원(金弘遠)이다. 김번은 원래 부안군 건선면 주을래리에서 살았는데, 1678년경에 이곳으로 이거하여 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후손들이 300여 년간 세거지를 형성하여 살고 있으며 일명‘우반동 김씨’라고 일컫는다. 우반동은 반계 유형원(柳馨遠)이 ‘반계수록(磻溪隧錄)을 집필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유씨들의 터와 토지를 김번의 조부 김홍원이 유형원의 조부인 유성민(柳成民)으로부터 구입했다. 이들이 부안 지역에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발생한 토지 및 가옥 매매문서, 분재기, 노비매매문서와 거주하면서 발생한 호적문서 등이 다량 전해지고 있다. 일명 ‘부안김씨우반고문서(扶安金氏愚磻古文書)’라고 일컫는다.

저자는 부안김씨의 고문서 가운데 655점의 간찰에 주목했다. 지방의 양반인 부안김씨가 서울의 경화사족과 500여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에는 다양한 생활상이 가득 그려졌다.

여기에는 역사서에는 실리지 않은, 또는 실리지 못할 은밀한 이야기도 풍성하다. 일테면 아들의 첩(妾)을 중매해 달라는 관찰사의 내밀한 청탁이나 구중궁궐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층들에 대한 유언비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도망친 노비를 잡아달라는 부탁들이 장면마다 빼곡하다. 

김명열(1613-1672)은 김홍원(1571~1654)의 큰아들이다. 그는 평산부사로 재임 도중 1668년 아내를 잃는 등 일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겼었다. 온천에 머물며 치료하던 김명열의 아내 전주이씨는 큰 효혐을 보지 못하자 관아의 내아로 돌아와 요양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싱해 위중한 상태가 됐다. 아기 금교찰방(今郊察謗)이던 이일삼(李日三, 1626~1700)에게 쓴 편지를 통해 급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소개됐다.

‘(중략) 오늘 밤이 되도록 죽지 않는다면 내일 새벽에 본부(本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만, 혹시 사행이 도착하기 전에 이르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들어가지 못한 사연을 사행에 급히 보고했습니다. 이곳의 상황을 그대께서도 자세히 아실 것이니 사행에 전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이 어떻게습니까? 제가 파직을 당하더라도 불쌍히 여길 일은 아니지만 이때에 만일 계파(啓罷)을 당하는 조처가 있게 된다면 더욱 큰 낭패이니, 그대께서 좋은 말로 주선해 주시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배천현감이 지나가다가 이곳의 형세를 두루 살펴보고 갔습니다(하략)’

저자는 이들의 간찰을 읽으며 가장 자주 마주했던 주요 감정으로 욕망, 슬픔, 억울, 짜증, 공포, 불안, 뻔뻔함 등 일곱 가지를 꼽는다. 이 일곱 가지 감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 옛사람들의 내면은 의외로 솔직하고 비통하며 때로는 집요하기도 하다. 여과 없이 분출되는 감정들이 삶의 현실과 버무려지는 생생한 일상을 눈앞에 풀어 놓는다.

“저는 관찰사의 농간으로 지금 막 영남의 읍에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혹 하룻길을 갈 하인과 말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계묘년 12월 1일 저녁 누제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조선 경종 시기, 부여현감 권응이 부안 김씨 집안의 김수종에게 전한 편지다. 급박함이 느껴진다. 노비와 말을 구하지 못할 경우, 양반 입장에서 엄청난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배지를 옮길 때, 동행하는 나졸배들은 유배자의 행색이 초라하면 곧바로 무시하고 학대하기 일쑤였다. 양반출신 관료들은 이런 상황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으며 미리 대비하려고 했다.

특히 유배를 경험했던 양반들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는 흥미를 더해준다. 유배지에서 힘들 때는 지인들에게 말, 노비, 생활용품 등을 빌리기 위해 온갖 하소연을 하다가, 해배되면 은혜를 기억하며 후견인들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권응도 해배된 후, 말과 노비를 돌려보내는 편에 부친 감사 편지를 끝으로 김수종과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저자는 “서울로 돌아간 유배자들은 유배지에서 느낀 고마움 대신 그곳에서 겪은 괴로움만 고통한 기억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br>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

인조반정 공신인 원두표는 자신의 며느리가 임신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안출신 명망가인 김홍원에게 첩을 중매해주기를 당당하게 요청하기도 하고, 김홍원의 큰 아들인 김명열은 평산부사로 재임하던 도중 아내를 잃자 친한 지인에게 여과 없이 슬픔을 드러낸다.

밀려드는 청탁을 거부하지 못하는 현실과 약자 입장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경우도 나온다. 김명열은 평산부사를 지낼 때 토지, 노비, 농장관리 등 여러 청탁을 받지만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외면하지 못하고, 상관인 황해감사에게 수차례 휴가 요청을 거부당했어도 반발하지 못하는 현실을 답답해한다.

이밖에 일상에서 피할 수 없던 기근과 돌림병에 대한 공포, 서울 정가의 민감한 소식과 불안에 뿌리를 둔 유언비어, 누명을 피하기 위해 비빌의 흔적을 지워야만 하는 불안함 등도 세세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축첩(畜妾)의 명분과 욕망의 변화, 가족을 잃은 슬픔 감추기와 드러내기, 청탁 처리로 점철된 수령의 일상과 은폐된 짜증, 출신에 따른 차등과 편견, 드러내서는 안되는 약자의 억울함과 사회관계망 유지를 위한 감정 통제, 아무도 피할 수 없었던 기근과 돌림병, 일상에 깊게 드리워진 굶주림의 공포, 서울 정가의 민감한 소식과 불안에 뿌리를 둔 유언비어, 비밀의 흔적을 지워야만 하는 불안함, 유배당한 관리들의 고달픈 생활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뻔뻔함 그리고 그들을 돕는 후원자의 속마음 등을 세세하게 살펴본다.

다소 근엄하고 절제가 미덕이라고 알았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편지 속에 쏟아 놓은 천진난만할 정도로 솔직하거나 격정적으로 드러낸 감정 표현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눈길을 끈다.

사대부 가문에서 전하는 고문서에는 이렇듯 관찬(官撰)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세밀한 인간의 면모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역사읽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감정사(感情史)’ 연구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야지만, 자료의 특수성과 맞물려 기존과는 또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저자인 전경목 교수는 “간찰에는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는 기록되지 않은 당시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매우 세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보고이자 소중한 자료”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일상생활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 정도의 단순한 호기심과 관련된 것들도 충분히 탐구 가치가 있다”면서 “간찰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이 조선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하도록 돕고 그런 편린들이 모여 한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좀 더 총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 전경목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고문헌 전공 교수. 조선시대 고문서 연구를 통해 일상사를 규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고문서를 통해서 본 우반동과 우반동김씨의 역사』,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숨은그림찾기: 유희춘의 얼녀 방매명문」, 「조선후기 소 도살의 실상」, 「조선후기 탄원서 작성과 수사법 활용」, 「양반가에서의 노비 역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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