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담론문화의 미성숙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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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담론문화의 미성숙성에 관하여
  •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법학
  • 승인 202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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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최근 4.15총선 선거부정 여부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상당히 명망이 있는 분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인신공격에 이를 수도 있어서 보는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데다가 서로 현재 종사하는 자신의 직과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걸고 자기주장이 맞다고 하고 있어서 보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담론문화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4.15총선 결과 통계 데이터이다. 미시건 대학의 월터 미베인(Walter Richard Mebane, Jr.) 교수까지 나서서 해석할 정도로 세기적인 특이현상인 이번 선거 결과 통계수치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언론사 기자, 경제학자, 경영학자, 통계학자, 통계물리학자, 통계사회학자,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공학자, IT전문가, 법경제학자 등 전공과 특성이 다양하다.

이 중에서 언론사 기자들은 주로 경험과 촉을 중시한다. 경제학자, 경영학자, 통계학자, 통계물리학자, 통계사회학자 등은 주로 생성된 통계를 가지고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공학자나 IT전문가들은 통계를 생성하는 작업에 익숙하다. 법경제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통계에 대한 해석과 생성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다른 주장이 있으면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그들의 직업적 습관 때문일 것이다. 

통계를 생성하는 작업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주어진 통계를 해석하는 사람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쉽게 통계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마치 산 정상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산 아래 전체 지형을 아는 것과  산 아래 한 지역의 상황만 보면서 그 산을 둘러싼 다른 지역이나 산의 높이를 유추하려고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차이다. 알고리즘 설계에 능한 공학자는 알고리즘을 짜서 초등학교 수학을 푸는 것보다 더 쉽게 이번 선거 통계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계 생산자들보다 통계 해석자들의 주장이 더 강하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실체적 진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조사에 의하여 밝혀지게 된다. 담론이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한다는 것이다. 논의가 격렬해지면 다툴 수도 있고, 당사자가 스스로 그 다툼을 해소할 능력이 없으면 제3자가 조사를 해서 밝히면 되는 것이다. 의문이 있고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사안이면 법적으로 다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직이나 목숨을 걸 일은 아니다.

걸핏하면 직이나 목숨을 거는 담론의 경박성을 보면서 조선 시대 여러 차례 경험했던 대형 사화들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만에 하나, 현재 선거부정 담론의 경박성과 미성숙성이 한국적 전통이라고 하더라도, 담론문화의 미성숙성은 지혜를 발휘하면 변화시킬 수 있다. 다툼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한다. 걸핏하면 소송을 거는 소송의 천국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소송 중 끝까지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은 3%가 안 된다는 사실은 필자가 늘 경외감을 가지고 보고 있는 통계이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운 것이다. 똑똑한 것으로 국제적으로 소문난 한국인들이 멋진 담론문화를 창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선거부정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서 자신의 추론만 가지고 선거부정이 없다고 강변하여 필요한 증거조사마저 못 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선거부정이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도 수학적으로 틀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해석이 틀리면 롯데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도 없이 뛰어내릴 수 있다며 함부로 목숨을 걸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야 확신이 있으니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간이 작은 필자 같은 사람은 그저 놀랍고 아슬아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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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법학

경남대 법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제12대 한국중재학회 회장, 제7대·8대 한중법학회 회장과 중국 위해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중국 대련중재위원회 중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대한중재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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