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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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반도체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4.02.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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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무전공 모집을 확대하면 인문학이 망한다고 하자 교육부에서 인문학도 융합 교육을 해야 하며 ‘철학과 반도체’와 같은 과목을 개설하면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고로 철학은 만학의 여왕이었고, 반도체도 훌륭한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도체라는 물질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질 수도 있고, 반도체 산업이 낳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도 있다. 물론 반도체에 대한 이러한 교육은 교육부의 의도가 전혀 아니라고 하겠지만, 애써 깎아내릴 건 없지 않을까? 한 나라의 교육부마저 산업적 수요에 따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교육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면, 즉 교육부에서 한 말이 겨우 "철학도 이 나라의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해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라는 것이라면, 이 나라가 너무 창피하니까.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교육 현장에 있는 우리는 교육부의 의도를 비틀어 수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전공 입학이 늘어나면 전공이수학점이 줄어들어야 한다. 교육부가 십수 년 전부터 목을 매는 대학 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융합 교육인데, 이를 위해 그동안 부전공이니 복수전공이니 하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면서 교육부에서는 또 한편으로 수능에서 심화 수학을 배제하고 과학탐구도 고1 수준의 통합 과학으로만 수능을 치르게 하였다. 수능에 나오지도 않는 것을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지는 않을 것인데, 대학에서는 전공이수학점마저 줄어들었으니, 무엇과 무엇을 융합하란 말일까? 융합 교육은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배우는 것이 아닐 터인데?

게다가 무전공으로 들어와서 2학년이 되면 학과를 선택하게 되는데, 교육부는 학생들의 선택을 성적순으로 제한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이번 정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어떤 방식으로건 제한하는 순간 학생들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이 사라져 버리니. 이제 학생들은 취업이 잘되는 전공으로 몰릴 것이고, 인기 학과에는 교수는 부족하고, 대형강의와 기자재 부족 등으로 교육이 부실해질 것이다. 맞은편의 비인기 학과는 폐과 위협에 시달릴 터이고, 손님들 구미에 맞는 강좌를 만들고 학습 부담도 없애고 교수들은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에서 이를 모를 리 없으니, 이는 학생들의 손을 빌려 선택받지 못한 학과는 없애려는 것 아닌가? 구조조정의 최대 걸림돌이 교수들인데, 이들의 본거지가 학과다. 그동안 구조조정은 취업률과 충원율로 했는데, 이 지표로 지방 사립대는 어느 정도 손을 봤는데, 국립대와 수도권 사립대는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도권 대학은 학생들이 넘쳐나고, 국립대는 기초학문 육성이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이래서는 학령인구 감소 해결 안 된다, 손을 좀 보자, 그런데 학과가 있는 한 버틸 것이니 학과를 없애버리자, 무전공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학과들은 그러면 말라죽을 것이다.

무전공 입학은 사실상 구조조정 방식이고, 그것도 몹시 나쁜 방식이다. 대학 교육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학술 생태계마저 파괴한다. 인문대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학들은 받아들일 것이다. 돈이 절박한 대학 본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교수들도 받아들일 것이다. 대학 자치 기구가 약화하였으니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하고 모두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 90년대에 총학생회는 운동을 버리고 복지를 내세우면서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교수 단체와 직원 단체도 그 길로 들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 저항이 없으면 막간다. 대들지 않으면 막 대한다.

전국의 인문대 학장단에서 성명서를 냈다. 무전공 모집 계획을 중단하고 대학 자율에 맡길 것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지체하지 않고 수용했다. 그런데 무전공을 해야 돈을 주는 방식으로. 그리하여 이제 학장단은 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무전공 입학이 시행된다. 공허한 대학 자율 대신에 소규모 강좌 확대를 요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는 실로 인문대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긴요한 일이 아닌가?

세간의 선입견과 달리 대학 강의는 반복 작업에 가깝다. 그런데 반복 작업은 세간의 편견과 달리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 작업이 단순한 반복 작업이 되기 위해서는 숱한 반복에 의해 숙련되어야 하고, 독창성이란 것도 실로 이러한 반복 작업의 토대 위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규모 강의실에서는 그 반복 작업이 지루한 일이 된다. 그들은 강의실에 있지만 그 강의실은 교육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기계적인 반복 작업을 하는 곳이다. 거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없으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일은 출석 확인과 수업 시간 준수다. 학령인구 감소는 초중고에 먼저 닥쳤고, 초중고에서는 콩나물 교실이 사라졌다. 대학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학을 없앨 것이 아니라 소규모 강좌를 확대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는 일개 대학, 특히 사립대로서는 대응할 수 없는 문제다.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다. 학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대학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나서서 우선하여 강사들에게 기본급과 연구비를 지급하여 학술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학문에 뜻을 둔 후속세대들이 절멸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데 필요한 일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비록 막지 못하더라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전국의 모든 강사들에게, 국립대 사립대 가릴 것 없이, 기본급과 연구비를 주자.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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