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더라도 우리 삶의 미래는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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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더라도 우리 삶의 미래는 준비해야 한다”
  • 권영상·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 승인 2024.04.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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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총선

얼마 전 22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났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선거였지만, 지역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임에도 수없이 등장한 공약들 중에서 국토, 도시 분야의 담론을 이끌어갈 만한 파괴력을 가진 이슈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면이 있었다. 이번 총선은 극심한 네거티브 이슈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록 급조되더라도 국토, 도시 분야의 정책을 제안한 후보들은 반가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제안된 수많은 개발사업과 선심성 공약들도 오랜 고민들이 정제되어서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만한 장기적인 담론보다는 급조되거나 지역의 민원성 이슈를 풀기 위한 개발사업에 대한 이슈들만이 등장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이랬을까? 그래도 한때는 국토균형발전이나 수도권 상생발전과 같은 거대담론 이슈들이 정치권에서 제안되었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들 정책을 갈고 닦아서 실현해 나가기도 했다. 낭만의 시대였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오랜 고민을 가지고 만들어진 정책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치와 도시계획의 밀월관계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면서 정치와 도시계획은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20년 주기로 중앙정부에서 국토 전체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국토종합계획을 수정, 재수정, 재재수정했다. 국토와 도시계획은 국가의 장기적인 플랜보다는 선거의 단기적인 전략을 위해 만들어졌고, 아무리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라고 해도 표가 되지 않는다면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철저하게 부인되었다. 한 정권에서 진행했던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철회, 변경되거나 대폭 예산이 삭감되기도 하고, 불경스러운 단어가 되어 비슷한 다른 명칭으로 바꿔서 진행되기도 했다.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계획적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한 정권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했다면 다음 정권에서는 취소되거나 축소 혹은 명칭을 바꿔서 진행되는 상황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미래 국토, 도시환경의 담론을 선도하는 단어들은 민원 해결성, 선심성, 임시방편적인 정책들로 빠르게 대체되어갔다. 


기후변화, 인구구조변화, 인공지능, 지방소멸

그렇지만 현재 국토, 도시 분야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첫째로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기후변화대응, 탄소중립과 같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단어를 가져와서 앞선 단어를 대체하고 이들의 차별성을 찾기 위해 헛된 에너지들을 쓰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과정에서 실제 우리 도시환경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계획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것이 있는가? 둘째로 인구 고령화, 생산인구 감소와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이슈이면서 곧 닥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당에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위원회가 있었고, 파격적인 정책이 제안되었지만, 조율이 부족하여 선택받지 못했다. 셋째로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 삶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그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정비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전무했다. 젊은 층들이 정치권에 많이 등장했고, 젊은 층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고 했음에도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 따른 정책개발이 부족했다는 점은 향후 한국의 성장이 지속가능할지 의심을 품게 한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지방소멸 문제에 대해서도 지자체 간에 제로섬 게임만 난무했다. 각 지자체에서 인구를 끌어온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서 끌어오겠다는 말인가? 해외 선진국에서 익숙했던 이민정책도 우리에게는 관심 밖의 구호처럼 여겨졌고, 획기적인 정책은 표가 안 되기 때문에 묻혀버렸다. 


이제는 우리 삶의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할 때다

정치적으로 너무 정쟁이 심해지다 보니 국토, 도시계획 분야처럼 우리의 후손을 위해 노력을 모아야 하는 분야마저도 정치적인 논리가 정론을 폄훼하거나 왜곡되어왔다. 기후변화, 생산인구 감소, 인공지능 등장, 지방소멸과 같은 우리가 공동으로 처한 난제만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후손들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과 의견수렴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토, 도시정책으로의 추진이 필요하다. 다행히 당분간은 선거가 없다. 국토, 도시정책에 있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장대한 플랜을 차분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우리 삶의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하는 국토, 도시정책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권영상·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도시계획설계전공 교수
•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스마트시티 센터장
• 한국도시부동산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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