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의 제22대 총선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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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의 제22대 총선 관전평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4.04.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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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국민은 언제나 옳다.” 지난 총선 이후 여야 정당은 물론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총선 평이다. 4월 10일 저녁 6시 정각에 동시다발적으로 발표된 언론사 출구조사 결과는 대부분 ‘민주당의 200석 이상 압승’을 예상했다. 민주당 당사의 환호성과 국민의힘 당사의 싸늘한 침묵이 한 화면 속에서 극한 대비를 이루면서 선거의 비정함을 일깨웠다. 거기는 없었지만 ‘용산’의 표정은 아마도 사색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200석은 헌법 개정과 대통령 탄핵은 물론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마저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절댓값’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당별 최종 의석수는 국민의힘 108석, 더불어민주당 175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개헌과 대통령 탄핵 저지선을 자력으로 확보했다는 데서 한숨을 돌렸고,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승리를 쟁취했음에도 다른 야당들과 협력하지 않는 한 대통령 탄핵안이나 신속처리안건 단독 의결 등을 꿈꿀 수 없게 됐다. 22대 총선 판에서 예상 밖의 ‘돌풍’을 일으키면서 선거 ‘쟁점’ 몰이에 성공한 조국혁신당은 애초 목표했던 10석보다 2석을 초과 달성하면서 편안하게 원내 제3당 지위를 확보했다. 

가장 손에 땀을 쥐고 개표방송을 지켜보게 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개혁신당이었다. 출구조사에서 모든 언론사가 패배할 것으로 예상한 이준석 후보가 상당한 표 차로 승리한 것도 놀라울뿐더러 비례 2석까지 추가하면서 당당히 제4당으로서 원내 진출하게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다. 물론 새로운미래가 ‘어부지리’한 1석의 의미도 결코 간단히 지나칠 성격이 아니다. 민주당이 공당 수준에 맞지 않는 하자투성이 후보를 부실 공천했다가 판세가 불리해지자 급히 무공천으로 선회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진보당의 지역구 1석과 비례 2석도 나름 정치적 상징성이 적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3% 득표로 원내 진출의 쾌거를 이룩한 이래 지난 20여 년간 당내 분열과 당외 선거연합을 반복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은 녹색당과 연합해 녹색정의당 이름으로 4선의 심상정 후보를 비롯해 17명의 지역구 후보를 냈지만 모두 낙선했고 거기다 총득표율 3% 기준도 미달해 원외로 밀려나게 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보당은 지역구 1석 외에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해 비례 2석을 추가로 확보했다. 덕분에 우리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해 온 정당 플랫폼이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필자를 비롯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자유통일당의 0석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기독교를 등에 업고 기독교를 욕 먹이는 ‘불한당’(不汗黨)이 원내에서 저질 발언과 패악을 부리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약간 다른 경우지만 역시 흡족한 결과는 민주당에서 내리 4선을 하면서 민주당 몫으로 장관과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김영주 후보와 5선 관록의 이상민 후보가 연유야 어찌 됐든 공천이 불투명해지자 20년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자신의 둥지였던 당과 당원들에게 즉각 등을 돌리고 반대당 당적으로 출마해 낙선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국민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말해주는 분명한 징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지난 2월 26일 자 칼럼에서 선거판의 백전노장 김종인이 공관위원장으로 진두지휘하는 제삼지대 ‘개혁신당’의 앞날이 모 아니면 도가 되리라 전망했었다. 그 예상과 달리 결과는 ‘개’ 또는 ‘걸’ 정도로 나온 듯하다. 여러 후보가 지역구에서 치열하게 선거전을 펼쳤지만, 백병전의 귀재인 이준석 후보만이 역전의 용사로 당당히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비례 2석을 추가로 건진 덕에 단숨에 원내 제4당의 입지까지 확보하게 됐으니 하는 말이다. 결국 김종인은 비록 그가 이전에 이룬 것들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승리’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패배하지 않은 셈이다. 

그의 두 가지 행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자칭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작전의 하나로 이준석 후보의 유세차에 몸소 노구를 이끌고 올라가 ‘여러분, 여기 있는 이준석이를 국회로 보내 주십시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호소한 장면이다. 이 원로 정치인의 소신과 경륜이 오롯이 실린 군더더기 없는 지지 연설은 인구에 회자된 후보 어머니 눈물의 지지 호소 못지않게 표몰이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하나는 천하람을 비례대표 2번에 배치하는 ‘플랜 B’를 가동한 점이다. 이는 분명 노련한 김종인의 경험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묘수였다. 장차 개혁신당은 원내 ‘80년대생 정치’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총선의 ‘블랙홀’이었다. 단순히 제삼지대의 표를 빨아들인 것뿐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눈과 귀를 장악하는 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선거일 기준, 창당 한 달 남짓한 신생 정당이 전국 득표율 24.25%로 비례 의석 12석을 얻는 일은 한국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조국혁신당은 현행 우리 선거제도의 약점을 가장 잘 공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최대 수혜자다. 그러나 기표 용지 4장 중 한 장이 조국혁신당으로 갔다는 사실은 분명 그 신생 정당에 대한 단순한 질타나 폄하가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을 촉구한다고 볼 수 있다. 

조국 대표가 스스로 고백하듯, 그는 여러모로 ‘하자’ 있는 공직선거 후보였고 그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가 자신의 사법리스크 돌파용 최후 수단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일각에서는 ‘누가 그에게 표를 주겠는가?’라며 냉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라는 ‘깜깜이’ 터널을 지나 반대편 입구로 나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는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도 사뭇 놀랍고 얼른 적응이 안 되는 광경임이 틀림없다.

“조국에 등 돌렸던 중도층이 돌아왔다... 왜?” 이것은 3월 30일 자 CBS 유튜브 방송 제목이다. 그 이유가 궁금한가. 정치논평가이자 녹색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종대 씨의 직관적 설명 속에 그 답이 있다.


“‘3년은 너무 길다.’ 
선거 메시지가 굉장히 팍팍 꽂힌다.
지금까지 실제로 말이 화제가 돼왔고 
그런 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모여들고
심지어 돈도 모였단 말이죠. 
이런 부분들을 보면 분명 돌풍이 된 건 맞고 
이게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한
민주당의 한계를 걷어버리는 효과 
일종의 카타르시스입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조국혁신당이 내 건 ‘3년은 너무 길다’라는 표제어의 외침을 듣는 순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후련하다고 느낀 것은 비단 필자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국의 주장처럼 우리 시민들을 장기판의 ‘졸’로 보는 대통령과 용산 사람들은 지난 2년간 한없이 ‘무도’했고,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에 갔다가 무참히 희생된 젊은이들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시종일관 부정하는 주무 부처 장관은 ‘무책임’했다. 더욱이 부산 엑스포 유치를 빌미로 ‘국빈’ 외교에 엄청난 국고를 탕진하고도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외교는 ‘무능’의 극치였다.

이러한 외적 요인 말고도 조국혁신당이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른 결정적 요소가 있다. 조국의 ‘정치 언어’는 근래 우리 정치판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함 바로 그 자체였다. 예컨대 그가 제시한 ‘사회권’ 공약은 한국의 이데올로기 빈곤의 정치 지형에서 표 계산에서의 유불리를 떠나 우리가 점차 도입해야만 할 선진국형 복지정책 패키지임이 틀림없다. 그런가 하면, “윤석열 정권은 좌파·우파로 망하는 게 아니라 ‘대파’로 망할 것”이라는 독설은 알 만한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한 고차원적 중의법 수사(修辭)였다. 이는 “파란 주나 빨간 주가 아닌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라는 버락 오바마의 2012년 원본을 재치 있게 비튼 세련된 정치 언어였기 때문이다.

누가 필자에게 이번 22대 총선에서 가장 긍정적인 면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숨에 개혁신당과 조국혁신당의 원내 진출이라고 말할 것이다. 필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16~18일 시민들에게 ‘이번에 당선한 국회의원 중 앞으로의 의정 활동이 가장 기대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물었는데 1등은 12%를 얻은 조국이었고 2등은 8%의 이준석이었다. 

제번하고 이 두 신생 정당과 그 대표들이 한편으로는 한국의 고질적인 양당 체제에 창조적 균열을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주공산의 ‘제삼지대’라는 공유지를 잘 관리함으로써 우리 정치의 품격과 효율을 크게 높여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2017),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공저, 2022), 『문화의 이동과 이동하는 권리』(공저, 2022), 역서로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책임과 판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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