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뷰카 시대, 대학 교육 패러다임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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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뷰카 시대, 대학 교육 패러다임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 승인 2024.04.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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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21세기 초뷰카 시대의 삶은 사막 여행과 비슷하다. 사막을 여행하려면 많은 준비를 하고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모든 준비가 헛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밤사이 모래바람이 불어와 지형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한 지도도 쓸모가 없어진다.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에 준비한 물품들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 ‘초뷰카(hyper VUCA)’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약자 VUCA의 더욱 심화된 상태를 뜻한다.

지도가 없어지면 정신적 공황 상태인 멘붕에 빠지게 된다. 멘붕에 이르면 머리에 있는 지도가 사라져 버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정신적 공황 상태 속에서는 잘못된 행동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잘못된 지도라도 있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볼 수 있고, 그러면 지도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멘붕은 지도 자체가 지워진 상태다.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은 사막 여행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서 길 잃은 지점을 알아내 동료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는 능력을 지녔다. 나침반이 있어서 길 잃은 지점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교육 분야에서 오랫동안 헌신하신 분이 초뷰카 시대의 디지털 폭풍 속에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 생각을 물어 오셨다. 본인은 대학의 존재이유에 대한 문제는 대한민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담론임을 강조했다.

이미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구글에서 더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고, 강의실 교육을 원한다면 유튜브에서도 더 빠르고 세련되게 대학 교육 수준의 강사를 찾을 수 있는 시대다. 챗GPT와 로봇은 변호사, 의사, 회계사, 판사, 기자보다 더 뛰어난 성적으로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있다. 대학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대체재가 등장했다. 이런 대체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혼돈을 막기 위해 대학의 졸업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회의 방파제 역할에도 대학은 사실상 붕괴의 위기에 처해있다.

대학의 교육은 역사적으로 강의(Instruction), 학습(Learning), 교육(Education)의 패러다임으로 발전해 왔다. 강의 시대에는 지식을 독점적으로 가진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표준이었다. 오려 전에는 교수가 수업 시간에 자신이 만든 강의 노트를 읽어주면, 학생들은 그것을 필기하고 시험 통해 암기한 것을 증명하는 공부가 유행이었다. 교수는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이었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교수가 물고기를 잡아다 학생들에게 먹여주는 방식이 교육의 표준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방적 강의(Instruction)에 기반한 교육에서 학습(Learning)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학생들이 자신 대학의 교수가 아닌 다양한 출처에서 나온 전문 지식에 다양하게 노출되면서 대학교수는 지식의 유일한 생산자로서의 권위를 잃었다. 또 다른 문제는 대학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된 지식이 현실 세계에서 적용되지 않는 지행격차 문제가 대두되었다. 기업들은 회사에 취업한 졸업생들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대학 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요구에 대응하여 대학은 학생들이 배운 지식과 이론을  직접 경험하고 체화하는 방식인 체험학습(Learning by Doing)이 등장했다. 학습 패러다임 속에서 교수는 여전히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일방적인 지식 전달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해 지식을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이 강조되었다. 학습 패러다임에서 교육의 목적은 교수가 학생에게 학생이 원하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챗GPT와 휴머노이드가 강의와 학습이라는 전통적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초뷰카 시대 대학의 교육 패러다임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본인은 21세기를 주도하는 교육의 패러다임은 진성 교육(Authentic Education)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의 패러다임 시대의 교육은 교수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고기를 잡아주는 시대이고 학습 패러다임 시대에는 지행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어떻게 체화할지를 가르치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진성교육 패러다임 속에서는 왜 자신이 나서서 학습을 주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음으로써, 학생이 필요에 맞게 주도적으로 학습을 진행하고, 교수는 코칭과 멘토링, 퍼실리테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 요구된다. 학생들은 왜 자신이 나서서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 이유를 각성하고 이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자신에 맞게 설계한다. 대학은 이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한다. 

초뷰카 시대 진성교육 패러다임에서는 주체적으로 성장한 학생이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에 의해 대체되지 않고 이들을 활용하여 자신과 사회,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대체불가능한 인재로 키우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다.

21세기 초뷰카 대학의 책무는 현재처럼 유명무실한 졸업장과 자격증 장사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이 왜 자신이 직접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목적을 깨달아 학습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 또는 동료 학생들과 협력하여 커리큘럼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대학은 이들이 존재하는 기술을 이용해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체불가능한 주인의 삶을 실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재설계 되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디지털 리더십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이 왜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신의 대체 가능성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대학교육의 혁신을 위해, 커리큘럼에서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강의 비중을 줄이고, 학생들이 체험을 통해 지식과 이론을 습득하는 학습의 패러다임을 증대시켜야 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이미 잘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학생들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경험하게 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대학이라면, 대학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GE와 GE의 씽크탱크였던 크론트빌 연수원이 매각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가 번창하던 시기에는 연수원이 초우량 기업의 사내대학으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기능이 사라져 기업이 스스로 해체를 결정한 것이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대학이 초뷰카 시대에 맞춰 해체적 재구축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결국 사회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전공 교수. 리더십, 조직변화, 다양성 등을 연구하고 있고 대표적 저서로는 <진성리더십: 21세기 리더십의 새로운 표준>, <백년기업의 변화경영>, <황금수도꼭지>, <초뷰카 시대 지속가능성의 실험실>,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몰개성화 시대 사회적 헌신>,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본 질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이 있다. 기업과 기관들의 리더십, 다양성 설계, ESG 거버넌스 개선에 관한 자문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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