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상 속 서양 문화의 유래를 찾아가는 인문학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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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상 속 서양 문화의 유래를 찾아가는 인문학 어드벤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10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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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세계사 | 찰스 패너티 지음 | 이형식 옮김 | 북피움 | 528쪽

 

문화와 문명은 공기처럼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하루 24시간, 365일은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밤새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자고 아침에 상쾌하게 눈을 뜨는 침대는 언제부터 인류의 곁에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하고 샤워를 하는 데 쓰는 치약과 칫솔, 비누와 샴푸 등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아침 식사에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는 언제부터 식탁에 놓였을까? 식사 예법은 천 년 전인 중세와 21세기인 현대와 얼마나 다를까?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노릇노릇 잘 구워져 토스터에서 ‘푱’ 튀어나오는 토스트는 언제부터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었을까? 옛날 사람들도 잠잘 때 잠옷을 입었을까?

이 책은 서양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300여 가지 일상 속 사물의 유래와 원조, 그리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두루 훑어본다. 오랫동안 인류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적인 관습과 습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일상용품의 오래된 역사를 통해 장대한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유산을 하나하나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수많은 미신과 행운의 상징들, 네 잎 클로버에서 토끼 다리, 검은 고양이 등에 대한 이야기로 장대한 ‘인문학 어드벤처’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서 생일과 결혼, 장례 등 생로병사와 관련된 다양한 관습들, 명절과 축제일에 얽힌 유래와 사연, 식탁을 둘러싼 풍경과 부엌에 놓여 있는 것들의 크고 작은 사연들, 화장과 화장실과 목욕탕, 침실 등에 관련된 시설들의 기원, 아름답고 잔혹한 동화와 동요의 유래, 화장품과 온갖 약의 발견과 발명의 역사, 옷과 신발, 그리고 재미있는 놀이와 맛있는 음식, 달콤한 과자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왜 상복은 검은색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죽은 이에 대한 슬픔과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검은 상복을 입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옛날 사람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망자의 혼이 살아 있는 사람 몸으로 들어온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입었던 검은 상복은 21세기 현대에도 굳건한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물의 이야기지만 거기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는 사람들이 ‘교양 없게’ 식탁에서 나이프로 이를 쑤셔대는 꼴을 보기 싫어서 나이프 끝을 둥글게 갈아버렸다. 장미 향수를 유행시킨 사람은 로마의 네로 황제였고, 최초로 고기 대신 과일을 넣은 파이를 먹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1세였다. 17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는 궁전에서 먹고 자면서 오로지 가발만 만드는 사람이 40명이나 고용되어 있었다. 하이힐의 유행은 루이 14세의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에서 시작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여행복을 한꺼번에 여러 벌 주문했다가 도피 계획이 들통났다.

문화의 차이가 낳은 인식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로마 시대 이래로 남자들은 비가 오면 그냥 맞았고, 우산을 쓰는 남자는 ‘나약한 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우산을 사랑한 한 남자의 평생에 걸친 ‘투쟁’으로 남자들도 더 이상 비를 맞지 않고 우산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담배의 소비가 크게 증가한 것은 성냥이 발명된 다음부터였다. 처음 나온 성냥은 폭죽 같은 불꽃과 역한 냄새를 풍겼고, 당시 사람들은 담배가 아니라 성냥이 건강에 해롭다고 믿었다. 무시무시한 천연두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곰보 자국을 가리기 위해 ‘애교점’을 붙이기 시작했고 애교점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것을 담았던 용기는 콤팩트로 우리 곁에 남았다. 15세기 중국의 농촌 아낙네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썼던 리넨 헝겊은 서양으로 건너와 아가씨들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스르륵 떨어뜨리는 패션 소품인 손수건이 되었다.

역사는 멀리서 보면 코믹하고 가까이서 보면 잔혹하기도 하다. 전쟁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의치와 가발 에피소드가 좋은 예이다. 자기로 만든 의치는 휴머니스트였던 한 의사의 아이디어였다. 예전에는 전쟁 포로의 이를 마구 뽑아서 의치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워털루’ 의치나 ‘남북전쟁’ 의치를 끼고 다녔다. 로마의 여인들은 게르만 포로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포로 학대’가 태연히 자행되던 시대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원시 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관습이나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장대한 역사를 알게 되면 우리 주변의 소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예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것 하나에 삶을 통째로 바치고 스러져간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그들의 야심과 욕망, 절절한 사연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무미건조한 사물이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소재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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