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윤리 의식: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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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윤리 의식: 무엇이 문제인가?
  • 장동익 공주교육대·윤리학
  • 승인 2024.02.04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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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의사는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의사의 권리, 의무, 의료윤리의 한계에 관하여』 (장동익 지음, 씨아이알, 240쪽, 2024.01)

 

의사는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물론 의사도 윤리적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윤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라고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물음은 모든 사람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즉 윤리의 일반적 적용에 관한 물음이 아니다. 우리는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빤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의사의 직무과 관련된 특별한 의미에서 제기된 것이다.

우리의 물음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의사가 일반 윤리의 수준을 훨씬 넘는 윤리 의식을 가지고서 행동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의사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보다 정확히는, 의사가 일반인의 윤리 수준을 훨씬 넘어서 높은 윤리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에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의사에게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유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의사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 윤리 그 이상의 윤리 의식을 가져야만 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상식적인 주장에는 특별한 이유나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 상식 그 자체가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윤리 의식이 상식적 근거를 가졌다면, 이 주장을 위해 굳이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주장이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합당하고 타당한 그리고 명백한 이유와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의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윤리성은 근거를 잃은 억지 주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래서 의사에게 높은 윤리성을 주장하는 이유나 근거를 살펴보는 것은 의료 전문직 윤리의 핵심을 구성한다.

의사의 윤리성에 대한 고찰은 의료 전문직의 특성에 크게 의존한다. 의사의 윤리성은 그들의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 일반이 인간의 사회적 삶과 관련이 있듯이, 의사는 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료 전문직의 본질적 특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렇다고 의료 전문직의 특성과 본질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의사의 윤리가 완전히 해명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전문직 활동으로서 의료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이로써 한 사회에서 의사가 갖게 되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런 후에 의사에게 부여된 특별한 지위와 역할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들이 그에 부합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합당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의사의 직업윤리와 관련하여 가장 큰 사건은 2000년 의사 파업이었다. 이 파업으로 의사들은 엄청난 비판과 비난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 직업군 전체가 자신의 사적 이익에만 혈안이 된 집단이라는 비판에 동조하였다. 반면에 의사들은 자신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른 윤리적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이런 항변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사태는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아무런 해명도 어떤 연구나 고찰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고찰이 없다면, 의사 전문직과 사회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왜 의사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였을까? 그 원인은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자신의 윤리적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아주 오래된 낡은 규약으로 현대에 적합한 윤리 규약을 제공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의사 파업은 의사의 권리에 대한 항변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들의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의사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근거한 의사들의 권리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 근거 없는 주장에 귀 기울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의사의 전문직 윤리를 오로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의거하여 주장하는 것이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의사 파업 이후로 의사 윤리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의료 전문직의 특성이 분명하게 해명되지 않은 채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측면에서 근거 없는 주장이 난립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무지는 사회 혼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무지가 혼란의 원인이라면, 배워 아는 것으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무지에 의한 혼란은 그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형성되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아주 색다른 무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가 그와 무관한 다른 분야에도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경우에 사회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이 그와 무관한 다른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오히려 이런 착각에 의한 사회적 혼란이 결정적이어서, 아주 색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더구나 이들의 착각은 자신이 가진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료 영역에 근거 없는 주장들만 난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는 엄격하고 충분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한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관한 전문 지식은, 한편으로 그 전문 지식에 대한 특정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회는 의사의 요구에 따라 의사에게 충분한 대우를 보장하고, 생명과 죽음, 그리고 건강과 관련한 거의 모든 특권을 부여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명과 죽음, 그리고 건강에 관한 전문 지식은 의사의 활동을 규제하는 근거가 된다. 사회는 의사의 전문 지식이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명과 건강을 위한 활동이 효율적으로 행사되기 위해 의사에게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의사의 활동을 제약하는 한편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이것이 의료 전문직 윤리의 핵심이다.

생명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사에게 높은 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의사의 희생을 동반한다. 그래서 이 희생에 따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 보상은 의사에게 부여된 특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의사에게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특권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서로 의존적이다. 의사가 누리는 특권이 보잘 것 없다면, 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성도 크지 않아야 한다. 그 역으로 요구되는 윤리성의 정도가 크다면, 의사는 그 윤리성에 상응하여 더 많은 특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에 요구되는 윤리성의 정도와 의사들이 누리는 특권은 밀접한 상호 비례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의사에게 윤리성만 요구하고 특권을 부정한다면, 의사들은 불만으로 가득하여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의사들이 특권만 요구하고 윤리성에는 무관심하다면,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비난으로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이런 갈등과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주어진 특권에 상응하는 윤리성을 만족시켜야 한다. 또한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특권을 부여해야 한다. 전문직 윤리에서 윤리와 특권이 비례한다는 것은 전문직 윤리의 핵심이며 본질이기 때문이다.

전문 직업인은 대가 없는 봉사자가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에 따른 규제와 강제는 충분한 보상을 요구한다. 의료 전문직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비록 의료 전문직이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직업인이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막연한 봉사나 희생을 요구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물론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전문 직업인으로서 의사에게 더 많은 제약과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해 보인다. 의사가 높은 윤리성을 가질 때 그들의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동익 공주교육대·윤리학

공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관심 연구 분야는 덕윤리, 의료윤리, 환경윤리 등으로, 규범윤리를 주로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은 말이야』 『낙태론자를 위한 변론』, 『덕 이론 - 그 응용 윤리적 전망』, 『로버트 노직, 무정부·국가·유토피아』, 『덕윤리 - 그 발전과 전망』, 『G.E. 무어의 윤리학』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덕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덕』, 『자유주의 정치철학』, 『삶과 죽음』, 『덕의 부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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