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문제는 어떻게 모더니즘 형성에 깊이 관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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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문제는 어떻게 모더니즘 형성에 깊이 관여했는가
  • 이순구 평택대·영문학
  • 승인 2024.02.0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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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섹슈얼리티 담론과 모더니즘 형성』 (이순구 지음, 동인, 252쪽, 2024.01)

                                                

이 책은 한편으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 문학 비평을 제시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역사가 1장, 2장, 4장을 차지한다면 모더니즘 문학 작품에 대한 개별 비평은 5장, 6장, 7장에 나온다. 3장은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이자 19세기 말 젠더와 섹슈얼리티 개념의 변화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다. 

이 책의 중심은 아마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을 다룬 4장일 것이다. 4장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와일드를 중심으로 일군의 세기말 작가들에 의해 표방되었던 탐미주의 문학 이론이 어떻게 법정에서 “성을 위한 예술”로 해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재판에서는 와일드의 작품들이 그의 ‘부적절한 행위’를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텍스트 해석은 다양한 독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들에 개방되어 있다는 탐미주의 미학이론은 거부당해야 했고, 대신 텍스트에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가 있다는 사실주의 문학 이론이 기선을 제압했다. 피고측 변호사 에드워드 카슨은 와일드의 글(혹은 작품)은 하나같이 소도미를 말하고 있고 따라서 청년 독자들을 소도미로 미혹시킬 위험성이 있다며 텍스트의 일부를 따와서 와일드를 맹렬히 공격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부도덕한’ 작가는 대영제국으로부터 추방시켜 마땅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영국다움'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의 쇠퇴,”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에서 도덕적이거나 부도덕한 작품이란 것은 없으며 아름다움 외 그 어떤 것도 문학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와일드였지만 당시 매슈 아놀드를 추종했던 중산층의 논리대로 도덕과 윤리의 잣대 앞에서 그의 문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와일드는 결국 그 자신의 ‘불온한’ 작품들로 말미암아 1885년 형사법 개정안 11조(Criminal Law Amendment Act 1885 Section 11)에 의거해 ‘범법자’로 몰렸으며 2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유럽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와일드를 무력화시킨 이 1885년 형사법 개정안은 1967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1910~20년대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을 중심으로 모더니즘 미학이 대두되었을 때, 그것은 문학이 그 자체로 법이며 다른 어떤 잣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형식의 실험이 중요했다. 소설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등이 중심이 되어 소위 ‘의식의 흐름’ 수법을 고안하여 고차원적인 리얼리티 창조를 위해 분투했다. 울프가 「모던 픽션」에서 “삶은 발광하는 무리다. 의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반투명의 봉투이다”라고 삶을 정의했을 때, 그리고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가족과 언어, 조국 등 자신의 감수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예술가로서 독립을 선언했을 때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에 대한 이들의 예술가적 반란은 세기말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탐미주의 문학이론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으로 와일드의 혁명적 문예이론이 20세기 초엽에 모더니즘 문학으로 다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에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모더니즘 문학은 미국으로 건너가 1차 대전 발발 이전에 이미 대학의 정규 커리큘럼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러한 모더니즘 문학은 그 기저에 19세기 관습을 뒤엎고자 하는 저항이 있었다. 특히 여러 관습 가운데에서도 기존의 성모랄, 성 윤리를 거부하고자 했다. 따라서 사실주의 문학의 단골 메뉴였던 낭만적 사랑과 결혼은 이들 문학에서 조롱당하거나 거부되었고 아예 부재하기도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앙드레 지드(Andre Gide), E. M. 포스터(E. M. Forster)를 비롯한 블룸스베리 그룹 출신들이 동성애자였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조짐은 실은 19세기 후반 이미 시작되었으며 문학적 사조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엽까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섹슈얼리티 문제가 어떻게 모더니즘 형성에 깊이 관여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모더니즘 문학을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작가별로도 내세우는 바가 다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서구의 모더니스트들은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모색했고 모든 방면에서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때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5장 프로이트의 『도라』, 6장 넬라 라슨의 『패싱』, 7장 파운드의 『더 칸토스』는 모더니스트 작가의 개별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다. 

 

이순구 평택대·영문학

평택대학교 피어선칼리지 교수.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U. C. 버클리 영어영문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과 젠더, 섹슈얼리티, 문화연구, 모더니즘 등이다.주요 저서로 『죠지 엘리어트와 빅토리아조 페미니즘』, 『오스카 와일드: 데카당스와 섹슈얼리티』, 『버지니아 울프와 아웃사이더 문학』 등이 있으며, 공저로 『페미니즘 시각에서 영미소설 읽기』, 『19세기 영어권 여성문학론』, 『버지니아 울프 3』, 『영국근대소설』, 『세계를 바꾼 현대작가들』 등이 있다. 평택대학교 피어선칼리지 학장,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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