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바꿔 놓은 설탕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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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바꿔 놓은 설탕의 세계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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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탕: 2500년 동안 설탕은 어떻게 우리의 정치, 건강, 환경을 변화시켰는가 | 윌버 보스마 지음 | 조행복 옮김 | 책과함께 | 624쪽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정제 설탕 없이 살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설탕을 피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설탕은 우리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꿨고, 노예제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극심한 환경 오염과 건강 문제를 초래했다. 설탕은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놓았다. 산업화, 이주, 식생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설탕은 부를 가져다주었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겼으며, 인종주의와 결합했고, 정부를 부패하게 하고 관료들의 정책을 형성했다. 설탕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대변하는 바로미터이자 그 움직임을 뒷받침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소수만이 맛볼 수 있던 희귀품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을까? 이 책은 그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세계 전역의 설탕 생산지와 그 복잡한 네트워크를 다루는 세계사다. 19세기까지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던 아시아는 물론이고 16세기 이래 사탕수수 설탕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지난 100년간 설탕 교역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 사탕무 설탕 생산지인 유럽과 미국을 다루며, 무역·금융·기술의 복잡한 연결을 보여준다. 

또 식민지 시대에 노예제로 고착되고 탈식민지 시대에도 예속된 노동력으로 움직인 플랜테이션 농장 경제, 인도와 자와의 소농 생산 체제, 수확기의 이주 노동자를 설명한 노동사이기도 하다. 더불어 자본가들과 설탕 가문들과 대기업들의 각축전, 그리고 이들이 국가의 정책에 행사한 영향력을 서술하며, 사탕수수와 사탕무의 재배부터 인력과 축력, 동력 기계를 통한 자당의 추출을 거쳐 설탕의 정제까지 설탕 생산 기술의 발전과 품종 개량과 같은 진보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설탕의 역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근대기 서구 제국주의하에서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다.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지속적인 상품화를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본다면 설탕 자본주의는 13세기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설탕 자본주의는 유럽인의 아메리카 침탈과 더불어 노예제를 기반으로 하는 플랜테이션 농장 경제를 일으켰다. 그 이후 노예제는 설탕 생산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혔다. 이른바 대서양 ‘중간 길’을 견디고 살아남은 1250만 아프리카인 중 3분의 2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끌려가 설탕 변경(邊境, frontier)을 개척했다. 폭력에 의해 가족과 고향에서 절연된 아프리카인들이 쇠약해진 상태로 도착하여, 굶주림과 장시간의 고된 노동 속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수확하고 가공하는 일에 투입된 것이다. 잔인한 처벌과 고문도 일상적이었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 목을 매거나 농장주들에게 손해를 끼쳐 복수하려고 사탕수수 즙이 펄펄 끓는 솥에 뛰어들기도 했다.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로도 영국은 쿠바나 브라질에서 노예가 생산한 저렴한 설탕을 수입했으며, 프랑스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쿠바에서 더 많은 노예를 이용하여 설탕을 생산했다. 노예가 점차 부족해지자 아메리카 백인 정착민 공화국들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유럽 대륙의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데려왔다. 중국인과 일본인, 심지어 조선인도 건너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했다. 이러한 노예살이 계약 노동자의 삶의 조건도 노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노예제 폐지를 준비하며 기계화에 투자하는 등 새로운 생산 체제를 모색했지만,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인종주의를 무기로 강제 노동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산업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예제와 강제 노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었다. 기계화를 통해 노동을 해방한다는 고상한 목표는 저임금의 가난한 노동자를 손쉽게 이용할 기회 때문에 무산되었다. 설탕은 산업화가 노예 기반 생산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설탕 자본주의에서 노예제와 강제 노동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설탕 자본주의는 가능하지 않았다.

책은 오늘날 설탕 산업의 여러 가지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우선 설탕은 빈곤을 초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잉 생산과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액상과당의 출현은 개발도상국의 설탕 생산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 또한 많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수확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한편 설탕 변경의 확장은 환경을 크게 파괴했다. 농장의 확장을 위해 숲을 불태우고 연료 등의 목적으로 마구 나무를 베어낸 결과 토양이 유실되고 수질이 오염되었다. 오늘날에는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서도 숲을 사탕수수 밭으로 만드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화석 연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설탕은 또한 충치뿐만 아니라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다. 일찍부터 의학계에서는 설탕이 건강에 해롭다고 경고했는데, 설탕 산업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탕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오히려 대량 생산한 설탕이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 깨끗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설탕 생산자들은 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건강에 대한 경고를 흐리게 했다. 국가와 정치의 역할은 보호무역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도널드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뒤 제약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어 감미료 아스파르테임의 금지를 취소시킨 것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정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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