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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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1.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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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27강_ 이동철 용인대 명예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네 번째 섹션 ‘오늘의 사회와 문화’ 제27강 이동철 교수(용인대 중국학과 명예교수)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이동철 교수는 먼저 ‘디지털 시대의 특성’과 ‘인문학의 의의와 위상’을 살핀 다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나 전 지구적 인류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 그리고 개인과 인류를 매개하는 문명에 대한 통찰이 가능할 경우, 그리고 이런 시도가 디지털 시대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디지털 매체와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인문학이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할 때 디지털 인문학은 “일단 “정보통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그와 관계된 창조적 저작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특징적으로 문학 연구자 프랑코 모레티가 말한 ‘멀리서 읽기’, 즉 “나무만이 아닌 숲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더해 “동일한 데이터를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처리한다면 당연히 동일한 결과”를 얻는 재현성을 갖는 만큼 “연구의 축적, 공유, 확장”이 가능해짐에 따라 디지털 인문학의 근본 정신이란 “개방, 공유, 협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그것은 “전통적인 인문학의 나무를 하나하나 읽고 헤아리는 것과 상호 보완이 될 때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끝으로 스스로의 “학문적 역정과 관련”하여 “동아시아의 고전을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 접근하되 디지털 시대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디지털 기술과 성과라든지 또는 디지털 인문학의 도구와 결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고전을 그것이 존재했던 당시의 맥락에서 근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디지털 신고전학을 제창한다. 

 

지난 1월 6일, 이동철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27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디지털 시대의 특성

디지털 세계의 특징으로는 첫째 디지털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달리 변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아서 장기간의 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복제하거나 복사할 때 정보에 손실이 없이 충실하게 복제 및 복사할 수 있으며, 그래서 무한하게 전파하는 것이 또한 가능하다. 심지어 비용적으로도 상당히 저렴하다. 셋째로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디지털로 인코딩된 정보는 조작이나 변환이 대단히 용이하다. 넷째 디지털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 지구적으로 또한 동시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 나아가 디지털 정보 세계에서는 확장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많은 것들이 모듈로 처리되기 때문에 분리라든지 결합이 아주 자유롭다.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보를 재생하려면 일반적으로 선형적으로 곧 순서대로 재생해야 하지만, 디지털 정보나 데이터의 세계는 무작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 강연자는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는 틀로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인 천지인(天地人) 삼재론(三才論)의 틀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천지인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로도 얘기되는데, 이 천지인 삼재론은 『주역』에 잘 나타나고 있다. 천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 이해이고, 지라고 하는 것은 공간적 이해이며, 인이라고 하는 것은 주체라든지 구성원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파악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천(天) 곧 시간적인 이해는 디지털 시대를 어떻게 시기적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지(地) 곧 공간적 이해는 디지털 기술이라든지 매체가 발전하고 도입되고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사회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다채로운 논의를 통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인(人) 곧 주체라든지 구성원에 대한 이해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 나아가 인류를 과연 우리가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2. 인문학의 의의와 위상

서구 인문학의 역사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신학과의 구별을 통해 세속적인 활동 영역을 확보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반면 19세기에 들어서는 그 당시 발전하고 있던 자연과학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인문학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이후 20세기에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과도 구별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학은 일반적으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분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의 인문학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문(人文)’이라는 말 자체는 고전인 『주역』 비괘(賁卦)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천문을 살펴 때의 변화를 알아내고, 인문을 살펴 천하의 교화를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이것을 근거로 서양의 인문학을 ‘人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인문 전통 또는 인문학을 파악할 때는 먼저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그것이 문헌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학문을 하는가”라는 주체를 통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기본적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문헌을 읽는 것을 통해서 학문 활동이 지속돼왔다. 문헌 읽기를 통해서 추구하는 학문의 본질은 이른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며, 결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조에서 사대부 계층이 주체가 되는 학문이자 교양으로서의 통치학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문명의 충격으로 과거(科擧)가 폐지된 이후 완전히 전환된다. 전통 문헌과 학문은 근대적인 아카데미즘의 세계에 편입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인문학은 문사철+외국어문학이라는 정도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 위기론에 대한 반응으로서 흔히 제시되는 반론에는 주요한 몇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인문학의 역할과 효용성이라든지 장점과 의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역할로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가 강조된다. 첫 번째 비판적 사고를 배양한다. 두 번째 문화적 의식을 함양한다. 세 번째 역사적 책임을 자각시킨다. 네 번째 유능하고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논자에 따라 네 가지 중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런 네 측면을 가지고 인문학의 의의라든지 정당성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그런 비판과 반론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의 대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인문학의 새로운 흐름으로서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세계인문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렌스 보트의 작업이다. 이 작업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서구 인문학 중심으로 파악된 인문학의 역사를 비서구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인문학의 분야를 문학, 사학, 철학만이 아니라 언어, 음악, 미술, 논리, 수사 등 다방면으로 확장하고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무용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현실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할 사례는 국내의 연구자들이 제창하고 있는 ‘지구인문학’이다. 현재 인문학과 관계가 깊은 인간(인류)의 활동은 인간 사회에만 머물지 않고 전 지구적 차원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현대 과학기술의 영향은 지구 표면의 문제가 아니라 지질학적인 변화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의식이 21세기에 들어와서 강조되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용어가 바로 인류세라고 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도 지구화라는 관점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인문학의 전개를 모색하는 시도가 바로 이 지구인문학이다. 

세 번째로 주목할 사례는 ‘확장인문학’으로서 뉴 리버럴 아츠 인문학이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은 우리가 책 특히 고전을 읽는 행위였으며 이를 통해서 문해력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는 현재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문해력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예를 들어 수학적 언어라든지 과학적 언어 또는 통계적 언어 또는 예술의 언어 등에 관련된 문해력으로 확장해가는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나 전 지구적 인류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 그리고 개인과 인류를 매개하는 문명에 대한 통찰이 가능할 경우, 그리고 이런 시도가 디지털 시대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디지털 매체와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때, 인문학이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토가 확장될 것이다.

 

3. 디지털과 인문학 혹은 디지털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은 일단 “정보통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그와 관계된 창조적 저작 활동”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정의를 요약한다면, “초학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융합으로서 디지털의 특성을 잘 구현한” 융합적인 시도이면서 인문 지식과 정보통신 기술이 융합된 연구 방법 및 교육 연구 시스템 등을 포괄적으로 얘기한다.

디지털 인문학은 작업 영역 단계를 설계, 구축, 분석, 해석, 시각화로 구별할 수 있다. ‘설계’는 대상 인문학 정보를 디지털에서 구현하기 위해 대상의 구조와 내용을 연구하는 것이다. ‘구축’은 설계를 통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 자원을 신규 구축하거나, 기존에 있는 데이터를 특정 목적 아래 재편성하는 것이다. ‘분석’은 구축된 데이터를 예컨대 언어 분석, 네트워크 분석, 지리 정보 분석 같은 디지털 분석 방법을 활용하거나 전통적인 인문학 연구 방법을 통하여 필요한 수치를 도출하는 것이다. ‘해석’은 분석을 통해서 도출된 수치에 인간의 관점과 사유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각화’는 컴퓨터에 최적화되어 있는 설계 구축 분석 그리고 해석을 다시 인간에게 출력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 진행되는 디지털 인문학은 연구에서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을까? 무엇보다 나무만이 아닌 숲을 볼 수 있게 만든다. 다음으로 재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일한 데이터를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처리한다면 당연히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현성 그리고 모듈성은 연구의 축적, 공유, 확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디지털 인문학의 근본 정신이 개방, 공유, 협업이 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이러한 개방, 공유, 협업의 정신이야말로 인문학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 인문학은 전통 인문학을 다 대체할 것인가 또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디지털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디지털 인문학의 중요한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문학 연구자 모레티는 ‘멀리서 읽기’를 제창한 바 있다. 그는 소수의 대표적인 정전만을 가지고서 문학사를 이해하는 종래의 방식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문제는 특정 시기에 출현한 수천, 수만 종이 되는 텍스트 전부를 우리가 읽을 수는 없다는 현실이다. 만약 나누어서 읽는다고 해도 이를 종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통계적인 처리 다시 말해 숲에서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보는 그런 멀리서 읽고 거시적으로 숲을 보는 방법을 통해서 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법론을 제창했다.

오늘날 디지털 인문학은 그러한 멀리서 읽기, 거시적인 읽기의 결과를 제시하고, 전통적인 인문학의 나무를 하나하나 읽고 헤아리는 것과 상호 보완이 될 때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인문학과 전통 인문학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4. 나와 디지털 또는 디지털 신고전학을 향하여

디지털 신고전학은 종래의 고전학에 대비하여 동아시아의 고전을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 접근하되 디지털 시대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디지털 기술과 성과라든지 또는 디지털 인문학의 도구와 결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고전을 그것이 존재했던 당시의 맥락에서 근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즉 과거 ‘거기 그때’를 ‘여기 오늘’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거기 그때’의 맥락과 시각에서 보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지향했던 서양 고전학의 정신과 방법을 수용하고 그것을 다시 동아시아 고전에 적용한다는 의미에서의 신고전학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시대 디지털 환경에서 전개하기에 디지털 고전학이라는 의미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그리고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어떠한 글자라든지 개념이라든지 표현이라든지 이런 것을 텍스트 내부에서도 종횡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에서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디지털 시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텍스트를 보다 깊고 꼼꼼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 자신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학문적 과제는 그러한 새로운 방법론에 의해서 중국 고전 문헌을 새롭게 이해하며 그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신고전학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디지털 신고전학을 제청하게 됐을까? 인간 H(Humanity)에서 H1은 각 개인이며, H2는 문명 속의 인간(homo civilis), H3은 인류(Humankind)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특히 문명 속의 인간(homo civilis) H2에 대해서 관심이 높고 이는 현실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국제 질서에서 이른바 G2라는 것도 정치 체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서구 문명과 중국 문명이라는 근원적인 거대 질서의 갈등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 중에서 가장 큰 과제가 양자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미국의 AI 기술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고 중국의 기술도 무섭지만 각 국가마다 자기의 고유한 정체성 즉 언어와 문화를 살린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바로 이른바 ‘소버린(Sovereign) AI’ 즉 주권 AI라고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미중의 양강이 아닌 제3의 길, 제3의 선택지로서 한국의 AI 관련 기업 네이버일 수도 있고 다른 한국의 기업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한국의 인문학이 디지털 시대에 미국과 중국이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할까 아니면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는 데 디지털 신고전학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 (이동철 용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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