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민초들의 꿋꿋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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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민초들의 꿋꿋한 의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1.20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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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전·장끼전 | 정출헌 옮김 | 문학동네 | 292쪽

 

『토끼전·장끼전』은 향촌 사회의 급속한 변화상과 세태를 비판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동물에 빗대어 희화화한 판소리계 우화소설이다. 『토끼전』은 충절이란 명분으로 백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봉건국가에서 토끼와 자라라는 힘없는 존재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준다. 『장끼전』은 장끼와 까투리로 대변되는 하층 유랑민이 엄동설한에 극심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비극뿐 아니라 과부가 남성들의 겁박에 맞서야 하는 수난을 그린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이 재치 있게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을 때로 희극적으로 그려내지만 고난에 찬 삶의 무게를 마냥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든다. 수백 년 전 소설이 오늘날 독자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 힘없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 겪는 수난과 고심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전승되던 동물우화를 소설적 편폭으로 확장시킨 우화소설이 유행했다.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구성원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대립을 다루는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화소설에서는 토끼와 자라, 장끼와 까투리를 비롯해 별별 동물이 다투고 경쟁한다. 그저 그런 부류들이 서로 잘났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든가 부패한 수령과 결탁해 재물을 탈취하려는 모습을 그려 세태를 희화화했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각축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부유한 평민과 실세한 사족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화소설은 그 같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포착했다.

『토끼전』과 『장끼전』은 미천한 신분의 광대가 판소리로 다듬어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넓은 공간에서 선보이며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판소리야말로 조선 후기 최고의 연행 예술로 꼽히는데, 열두 마당 가운데 우화소설이 두 편이나 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소설 작가들은 주인공을 으레 영웅적 인물 또는 재자가인으로 설정해왔다. 하지만 판소리 광대들은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그런 판소리 광대들이 길짐승 토끼와 날짐승 꿩의 삶에까지 눈길을 주었다. 꿩과 토끼야말로 힘없는 존재들이다. 향촌 주변 논밭을 전전하며 곡식 낟알을 주워 허기를 채우던 장끼와 까투리, 조정 미관말직에 있으면서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던 자라, 목동·포수·매 등에게 쫓기며 살아가던 토끼는 조선 후기 최하층의 부류인 유랑민의 모습과 비슷하다. 판소리 광대들은 유랑민이 고난에 찬 삶을 살아가면서 엄혹한 시련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우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봉건국가의 군주로 상징화된 용왕의 죽을병을 고치기 위해 육지 동물 토끼를 잡으러 가는 소동을 벌이는 『토끼전』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라에게 위험한 육지에 가서 토끼를 잡아오라는 임무가 부과되는 과정도 그렇지만, 수궁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던 토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용왕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던 자라와, 용왕의 요구를 거부하고 달아나버린 토끼의 엇갈린 행보라는 놀라운 결말은 충절이란 명분으로 백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봉건국가의 부당한 요구 앞에 선 개인의 선택을 보여준다.

『토끼전』은 이본의 양상이 흥미롭다. 어떤 작품은 결말까지 사뭇 다르게 난다. 어떤 이본에서는 토끼를 놓친 자라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자 용왕이 약을 구하지 못하고 죽는가 하면, 어떤 이본에서는 도사가 나타나 자라에게 불로초를 주어 용왕이 살아나기도 한다. 이처럼 결말에 차이가 나는 까닭은 『토끼전』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결말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일까.

딜레마에 봉착한 캐릭터는 자라다. 『토끼전』에서는 자라 역시 주인공이다. 그런 사실을 반영하듯, 『토끼전』은 이본에 따라 『별주부전』도 있고, 둘의 이름을 나란히 드러낸 『토별가』 또는 『별토가』도 있다. 19세기 중반 송만재는 『토끼전』을 읽으며 토끼 못지않게 자라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많은 사람은 자라를 조역으로 취급하거나 용왕과 함께 비판받아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지만, 실제로 자라의 작중 역할은 막중하고도 흥미롭다. 토끼와 자라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의 목숨을 노릴 정도로 치열하게 맞서지만 사실 그 둘은 진정한 적대자가 아니다. 진짜 토끼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토끼의 간을 필요로 하는, 곧 무고한 서민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용왕이다. 『토끼전』에서 토끼는 지혜를 발휘해 끝내 자유를 찾고, 용왕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라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초상 아닐까? 그가 직면한 애환이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장끼전』에서 까투리는 다섯 번 결혼하고서도 또다시 가장을 잃어버려야 했다. 작품의 현실적인 핵심 사안은 굶주림의 문제다. 콩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장끼는 덫에 걸려 비명횡사하고 까투리는 아홉 아들 열두 딸을 혼자 키워야 하는 과부 신세로 전락한다. 떠돌이로서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이 그들 부부 앞에 놓인 최대 문제였다. 장끼의 죽음으로 까투리는 험난한 세상에 또다시 혼자 남게 된다. 앞으로 모든 고난은 연약한 까투리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데, 장끼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숱한 잡새의 구혼으로 그 시련은 현실화된다.

그러나 까투리의 생명력은 질기다. 다섯 번째 남편이 죽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끝끝내 까투리는 좋은 짝을 찾게 될까? 과부를 차지하려는 수컷들의 회유와 겁박에 맞서 까투리는 수절과 개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정절이 목숨보다 중하다고 여기던 봉건 사회에서 까투리가 개가를 선택한다는 결말은 결코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다.

조선 후기 유랑민이 겪은 고난과 그로부터 비롯된 비극적인 삶, 그러나 그냥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까투리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하층 여성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봉건국가의 침탈에 시달리던 토끼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통해 지배층의 끝없는 탐욕과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문에 판소리계 우화소설이 이룩한 고도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부조리한 요구와 회유가 끊이지 않고 있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내릴지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지금 이런 시대야말로 판소리계 우화소설의 두 주인공인 토끼와 까투리의 결단과 선택이 더없이 밝은 빛을 발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부익부빈익빈의 사회현상이 점차 심해지며 재물의 위력이 힘없는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할 때 어떤 결단이 필요한가를 생동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 저자의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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