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의 키워드, 말의 역사를 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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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명의 키워드, 말의 역사를 다루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1.15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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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용어의 탄생: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312쪽

 

이 책은 ‘근대문명의 키워드’인 말의 역사를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문명의 키워드’는 전문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아니라, ‘문명’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반인이 자주 쓰는 말,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다. 

이를테면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에 자리잡은 비즈니스, 프로젝트, 리뷰 등의 외래어와 대통령, 자유, 헌법, 민주주의 등 흔히 사용하고 접하는 말들을 소개한다. 이 말들은 근대문명의 내력과 내면을 살펴보고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 역할을 한다.

‘키워드’로 선정된 말들은 외래어는 물론이요, 한자어로 옮겨서 사용할 경우에도 사실상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다. 말들의 번역 그 자체는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근원지’에서 이 말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흘러갔는지를 이야기할 따름이다. 우리말에서 외래어나 번역어의 모습으로 권세를 부리는 미 말들의 내력을 아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는 각 키워드에 따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는 역사 이야기를 조사하고 수집했다. 주로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활발히 쓰인 말들이 ‘근원지’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달라졌는지 아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근대문명’이라는 용어가 포괄적으로 뜻하는 체제, 제도, 문화, 가치, 정서 등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유지되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

‘근대’는 학자들이 때로는 ‘근대성’이라 부르는 대상, 즉 근대적 의식, 담론, 사상 등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근대’는 ‘담론’이기도 하지만 시대와 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키워드의 시대는 영국이 근대로 이행할 준비 단계인 17세기부터 ‘해가지지 않는’ 제국주의 전성시대인 19세기까지다. 하지만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18세기다. 그에 따라 공간적 배경도 영국이다. ‘근대문명’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중요한 요소인 의회정치, 시장경제, 자유출판시장, 제국주의 등이 모두 18세기 영국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주요 사상가인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밀턴 등을 소환, 인용하여 키워드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근대 영국 외에도 다른 시대와 다른 나라, 영어 외에 다른 언어가 필요할 경우 함께 다루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키워드들이 실생활에서 활발히 사용된 빈도, 즉 화려한 현실 참여를 반영하기 위해 문화나 사회에 해당하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이라는 포괄적 말을 택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변천되었는지 이해하기 쉽도록 가나다순이 아니라 알파벳순으로 차례를 구성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산업화를 거쳐 세상이 점점 더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들의 의미가 근대 이전 시대에 말속에 담겨 있던 지혜와 가치가 손상되어 단순하고 경직된 의미에 제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말들의 내력을 ‘역사’를 무기로 하는 잠바티스타 비코를 소환하여 설명한다. 인간들이 남긴 흔적을 탐구함으로써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에서 표현되고 기록된 된 바를 해당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또한 그렇게 탄생된 원문을 소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근대문명의 키워드’를 비코식 탐구의 이정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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