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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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던진 질문
  • 박필현 국민대·국문학
  • 승인 202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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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대학에서 논증적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해마다 유독 학생들의 관심이 몰리는 대상이 있다. 2023년의 인기 화제는 단연 챗GPT였다. 챗GPT는 오픈에이아이(Open 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GPT-3를 이용해 『사피엔스』 출판 10주년 서문을 작성해 본 유발 하라리는 GPT-3가 작성한 글과 자신이 작성한 글 사이에 별다른 수준 차이가 없어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유발 하라리를 놀라게 한 GPT-3의 베타 버전, GPT-3.5가 바로 챗GPT이다. 이 똑똑한 챗봇은 미국에서 의사 면허시험과 로스쿨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와튼스쿨 MBA 기말시험에서도 B학점 정도의 답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는 운전을 하고 바둑을 두고 그림을 그리더니 이제는 그럴 듯한 글도 뚝딱 써내게 된 것이다.

챗GPT 등장 이후 “과제를 할 때 챗GPT를 사용해도 되나요?”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자에게 차마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학생들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챗GPT가 잘 쓸 것 같은데 꼭 제가 직접 글을 써야 하나요?”하는 질문도 있었음직하다. 대학의 교양교육 교수자 입장에서 챗GPT는 일종의 화두다. 챗GPT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그 첫 번째는 기술 발전을 대하는 자세이다. 유나바머(Unabomber)라는 이름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간 테러활동을 자행했던 테드 카진스키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자유를 침탈하기 때문에 산업사회를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물론 이런 입장에 반대하는 기술예찬론자들도 많다. 이를테면 마벨테크놀로지그룹의 창업자인 세하트 수타르자는 “파괴적인 기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만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챗GPT는 많은 이들을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빠트릴 문제적 발전일까, 아니면 인류를 한 걸음 더 진보로 이끌 기술일까.

두 번째 고민의 지점은 글쓰기의 이유와 역할이다. 문자는 ‘문명의 엔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식 축적과 계승의 가장 주요한 도구라고 할 글쓰기를 통해 인간은 사유하고 성찰하고 소통해왔다. 대학의 근본적 역할이 비판적 사고 능력 신장이라고 할 때, 생각의 정립과 논리적 소통의 중심에 자리한 글쓰기는 일면 대학 교육의 정수라 할 만하다. 이처럼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인류 보편의 기술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 보편적 기술은 습득하고 활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고난도의 기술이기도 하다. 이는 챗GPT가 ‘나’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명쾌한 구조와 유려한 문장으로 책의 서문을 쓰고 연설문을 쓰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GPT제로 앱 등을 활용해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도 벌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오픈 GPT의 길로 가야 할 것인가. 애초에, 개발된 기술을 사용하면 쉽게 글을 작성할 수 있는데 굳이 직접 고민하며 써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이다. AI라는 기술은 운전을 하거나 바둑을 둘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챗GPT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형식에 맞춰 한 편의 글을 써낼 수 있어도 그 글의 의미나 영향을 생각하지는 못한다. 앞서 유발 하라리가 GPT-3가 쓴 글에 대해 수준 차이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떻게 말하고 싶은지를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GPT를 사용할 준비라 하겠다. 결국 어떤 행위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인식하고, 생성해 낸 글의 의미와 그 영향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어떤 행위가 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행위만 하거나, 생성해 낸 글의 의미와 영향을 생각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쓰고만 있다면 이는 미처 인간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 셈인 것이다. 챗GPT가 묻는다. 인간으로서 GPT를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GPT 하위 버전이 될 것인지. 기술 파괴나 기술 예찬의 어느 한 쪽에 서는 것보다 그 경계에서 매 순간 달라지는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단한 위치를 기꺼이 그리고 잘 감당하는 것이 AI 원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이자, 통제력을 잃지 않으며 진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박필현 국민대·국문학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속에 나타난 사회와 개인의 관계, 해방기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한국 여성작가 연대기』, 『김유정 문학과 문화 충돌』 등을 함께 썼으며,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 등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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