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대처하는 유학(儒學)적 마인드,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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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대처하는 유학(儒學)적 마인드,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연대
  • 안승우 성균관대·유가철학
  • 승인 2023.12.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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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인문학, 특히 유학(儒學)이라고 하면 현실사회와는 동떨어져 과거의 것만 다루는 고답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배워온 유학의 근본 정신은 현실 사회문제에 늘 깨어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앎을 일상 속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실용학문이라고 보기 힘든 유학이 현실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공부해온 철학으로서의 유학은 현실 사회문제의 근원이 되는 생각과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의 근원이 되는 사람들의 편견, 고정관념 등을 규명하고, 이를 깨뜨릴 수 있는 대안적 사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닥쳐올 위기, 재난에 대해 어떤 사고와 인식을 가지고 대비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다.

최근 변화의 속도가 해마다 빨라지는 것을 체감하며 앞으로 십 년 뒤 인문학, 특히 유학은 어떠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추위, 더위, 폭우의 양상을 통해 기후 변화를 체감하고, 해가 바뀔 때마다 지방 대학의 학생 수가 현저히 감소하는 현실을 접하며 인구 감소 문제를 체감한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 인구 감소 등 닥쳐올 사회문제들을 현실 문제로 체감하며 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기초학문으로서 유학을 비롯한 철학은 그 자체로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떠한 삶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가, 모든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인간다움의 근거는 무엇인가 등 인간 존재와 인간 삶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해온 유학의 수천 년간의 철학적 여정은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변치 않는 인간다움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하지만 유학의 근본 정신이 내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에서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세상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인 만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각종 변화, 위기, 재난의 문제에 대해 유학을 공부하는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유학이라는 학역을 넘어 앞으로 대학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연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나는 지역사회와의 경계 허물기를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지난 일본 학술대회 참가를 통해서였다. 나는 지난 11월 23일~26일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동일본국제대학에서 열린 제10회 한‧중‧일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학술대회의 테마는 “전인류적 위기를 위한 사상‧철학”이었다. 당시 나는 위기를 새로운 변화의 전환점으로 인식했던 유학의 관점에 기초하여, 인공지능시대에 유학이 앞으로 삶의 현장적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삶으로서의 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등의 유학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측 학자들의 발표가 거듭될수록 나의 위기와 재난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관념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일본국제대학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학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어났을 정도로 당시 이 지역이 큰 재난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 당시 학교 건물 일부가 손상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지역의 대학들과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 이 재난을 수습했고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대학의 연대는 더욱 공고해졌다고 한다. 이처럼 이들이 마주했던 위기, 재난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연대였다.

실존적인 재난의 한복판을 겪어나갔던 동일본대학의 미도리카와 히로시(綠川浩司) 이사장은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사상의 힘으로 『논어』의 사사로운 자신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인(仁)이라는 뜻의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라는 구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자기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절대적으로 지키는 탁월한 윤리적 태도,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이 학교의 역사를 알고 나니 『논어』 구절에 대한 그의 해석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자신만의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삶의 존엄성을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삶의 태도 그 자체가 위기와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닥쳐올 기후 위기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우리 일상을 어디까지 혼란스럽게 할지, 또 인구감소의 문제가 우리 현실 생활의 모습을 어디까지 변화시킬지 그 정도를 아직 가늠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가 혼자만이 아닌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지역의 대학이 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공공적 기초단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문학, 특히 철학은 지역사회와 대학의 구성원들이 함께 위기와 재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인드와 태도를 제시해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 함께 하는 삶, 의미 있는 삶 등 지역주민과 대학의 구성원들이 손쉽게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주제들을 제시해 줄 수 있기도 하다.

대학사회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인문학, 특히 철학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위기의 국면 앞에서 철학이, 또 철학으로서의 유학이 선제적으로 앞으로의 인문학의 변화, 대학사회와 지역사회의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해보는 학문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안승우 성균관대·유가철학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 조교수.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주역』 및 유교경전에 담긴 동아시아 사유와 문화의 원형 연구, 한국 유학자들의 『주역』 철학에 담긴 독자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또한 생명윤리, 탈북자 인식 문제 등 현실사회문제에 대해 유학이 어떠한 철학적 성찰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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