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 역사에서 기후 재앙 시대의 돌파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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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역사에서 기후 재앙 시대의 돌파구를 찾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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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 세계사: 지구 생성부터 기후 재앙 시대까지 (전2권) | 피터 프랭코판 지음 |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966쪽

 

바야흐로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 시대다.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 지구 기온이 섭씨 2도 이상 높아졌다는 관측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파멸을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과연 파멸의 시점이 언제인가’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복잡한 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맥락과 시각과 교훈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저자 프랭코판은 이 책의 목표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지구사의 토대인 기후를 과거의 이야기에 다시 끼워넣고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날씨, 장기적인 기후 패턴, 기후 변화가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수천 년에 걸친 인간과 자연계의 상호작용 이야기를 제시하고, 우리가 환경을 어떻게 자기 뜻대로 활용하고 틀 짓고 변형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셋째, 역사를 보는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부유한 나라들이 아닌 다른 대륙과 다른 종교의 역사는 흔히 부차적으로 치부됐다. 이처럼 과거와 우리 주변 세계를 보는 왜곡된 방식을 바꾸고자 한다.

프랭코판은 역사적 기록만이 아니라 과학적 자료를 활용하고 분석했다. 라이다(LIDAR, 광학탐지측정기), 가시 근적외선 및 단파장 적외선 분광 데이터, 동위원소 자료, 나이테/광상(鑛床)/얼음시료/꽃가루 같은 자연기록 등등이다. 이런 기후 자료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실뿐 아니라 미래의 장기적인 지구 기후 분석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이처럼 방대한 과학적·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랭코판은 기후와 환경 요인을 인류사의 중요한 토대로서 자리매김했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를 재통합하는 것은 기후 변화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위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프랭코판은 수만 년 동안 지구에서 일어난 수많은 기후 변동의 사례를 든다. 빙하기, 화산 활동, 태양 활동, 호우와 가뭄 등 극적인 사건들뿐 아니라 장기적인 기후 패턴과 변화의 추이와 그 영향 역시 놓치지 않는다. 동시대 세계 각지를 아울러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고, 또 장기 추이로 살피다 보면 몇 가지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 기후 변동은 무조건적인 파멸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핵심은 애초에 각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위기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큰가였다. 즉 기후는 악화 요소일 뿐, 문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중요한 점은 예전에는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변동의 동시대적인 추이가 지역적으로는 편차가 매우 컸는데, 산업화 이후 세계 전체의 동질성이 매우 뚜렷해졌다는 사실이다. 즉 산업화 이후로는 지구 전반의 기온 상승 추세가 명백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이 책에 담긴 거시적인 분석은 오늘날의 첨예한 환경 이슈와 관련해 여러모로 중요한 통찰을 가져다준다. 

프랭코판은 “역사가는, 분수령이 되는 순간을 찾아내고 전환점으로 묘사될 만한 시간을 콕 집어내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유혹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면모가 바로 기후 재앙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덕목이 아닐까? 대책이라며 감축이니 재활용이니 대체니 하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일견 비효율적이고 느릴지라도 주변을 신경 쓰고 배려하며 찬찬히 나아가는, 생산과 소비 구조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랭코판은 자신의 이 저술 태도를 기후 재앙 시대의 돌파구로서 은연중에 제시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금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영웅적 한 방’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사려 깊게 내딛는 ‘모두의 한 발’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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