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렇게 하면 노벨과학상 수상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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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렇게 하면 노벨과학상 수상자 나온다
  • 강철구 배재대·경제학
  • 승인 2023.12.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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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일본에 노벨과학상이 많은 진짜 이유』 (강철구 지음, 어문학사, 252쪽, 2023.11)

 

부국이 되기 위한 선제 조건은 무엇일까? 과학기술을 이끌어 나갈 정부의 리더십과 고도 인재, 그리고 기업을 통한 기술력이 절대적이다. 여기에 더해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 그리고 기초과학을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시설과 첨단 기기를 확보할 자본력이 더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훌륭한 인재와 자본력도 갖추었다. 문제는 뒤쳐진 기술력과 분위기이다. 특히 핵심 기술을 선진국에 의존하다 보니 기술의 종속화가 진행되고,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과학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7월,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당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그리고 EUV레지스트 등 3개의 핵심 품목에 대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것 때문에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줄 알고 온 나라가 긴장하고 어수선했던 때를 기억해 보자. 다시 말하지만 단 3개의 품목이었을 뿐이다. ‘정신 승리’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의 기술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산준봉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렇게 다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는지, 일본식 과학기술의 역사적 과정과 패러다임의 흐름을 제대로 분석해 본다면 우리나라가 기초 과학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육성하는 데 있어 정책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4가지만 간추려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정책과 연구자들의 일관성이다.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은 총리 단독으로 또는 공무원이나 과학자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산·학·연 등 민간의 실무 전문가들이 자문기관이나 심의기관에 참여하여 함께 심사숙고하는 결정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정치가나 공무원들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고 동시에 정부 부처 간, 그리고 정부와 산업계·학계 상호 간에 국가의 기본 정책 방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아울러 각각의 행정기관은 자문·심의기관에서 결정한 기본 정책을 토대로 자기 부처의 고유한 특수성을 반영하여 구체적인 세부실천 사항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다. 좋은 사례가 있다. 1995년에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책정하여 1996년부터 2025년까지를 6단계(6기)로 구분한 후 30년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오고 있다. 6기에 해당하는 5년간(2021~2025)은 약 30조 엔 규모의 정부 연구개발 투자를 확보하였고,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능력을 키우는 사업에도 민관 합산 총 150조 엔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의 정책뿐만이 아니다. 연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로 국제학술계에서 주름잡을 때만 해도 변방의 무명 연구자였던 고베대학(神戸大学) 출신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는 2003년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로부터 5년간 3억 엔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인간인공다능성줄기(iPS) 세포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후 다시 5년간 총 70억 엔을 지원받아 같은 주제의 연구를 계속한 결과 ES 세포와 유사한 iPS 세포를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결국 이 분야에서 황우석 박사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의 연구비 지원은 일본처럼 몇십 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부 대형 연구단을 제외한 개인 연구자 대상 지원 사업은 모두 1년에서 3년짜리다. 그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연구비가 끊기기 때문에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안정적인 연구 주제를 택하게 된다. 우리도 일본처럼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른다면 노벨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둘째,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기초 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해 1901년 제1회 노벨상 수상이 시작된 해부터 꾸준히 후보를 낸 끝에 1949년 첫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를 배출했다. 일본 노벨상의 산실이자 기초 과학의 요람인 리켄(RIKEN, 理化學硏究所)이 설립된 해는 1917년이다. 한국은 1977년에야 미국과학재단(NSF)을 본떠 한국과학재단(현재 한국연구재단)을 설립했고, 본격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한 건 1980년 이후다. 국가 연구개발비(R&D) 총액이 1조 원을 넘긴 게 1993년이고, 유룡 단장 등 ‘국가대표급’ 과학자들의 연구를 장기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 진흥 사업은 1996년에 와서야 시작되었다.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고자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한 건 2011년이다. 일본 기초과학의 뿌리가 150년이 훌쩍 넘는 반면 한국은 이제 겨우 30년을 넘긴 셈이다.

‘노벨 시차’라는 말이 있다. 기초과학 연구로부터 노벨상을 받을 때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늦게 출발했으니 아직 수상자가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실망할 일이 결코 아니다.

셋째, 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은 세계적인 대가들의 강연을 듣거나 그들이 쓴 논문을 공부하면서 영향을 받은 케이스가 많다. 1922년,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그때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본인 이론물리학자들을 만나러 일본을 방문했고, 1929년에는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193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와 디랙(Dirac, 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초빙하여 교토대에서 강연회를 마련하였다. 이때 쿄토대학 2학년생이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4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가 이들 강연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들은 강연 내용도 그렇지만 그들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28세의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27세의 디랙은 22세의 유카와, 23세의 도모나가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이들은 이미 세계적인 물리학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모델이 나타난 후 이들은 노벨상에 도전했고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연아 선수 이후 어린 학생들 중에서 피겨 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처럼, 박세리 이후 ‘박세리 키즈’가 오늘날 한국 여자 골프를 세계에 우뚝 세운 것처럼,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도 누군가 영웅이 탄생해야 한다. 그래야 나와 같은 한국말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그분도 맛있게 먹네 하며 가까운 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롤 모델이 없으면 목표를 설정하기 어렵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는 가까이에서 한번이라도 롤 모델을 만난다면 그 꿈의 실현이 극대화될 것이다.

넷째, 과감한 연구비 투자이다. 

기초 과학에서는 특히 자본의 투입이 중요하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2002년 수상)와 가지타 타카아키(梶田隆章, 2015년 수상) 교수는 일본 기후현(岐阜県) 가미오카 광산(神岡鉱山) 지하 1천 미터에 설치된 초대형 실험 시설 ‘슈퍼 가미오칸데’를 활용하여 중성미자의 질량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장비빨’이 받쳐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연구 결과는 대부분 연구 장비, 그리고 분석 도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기초과학은 개인의 연구 분석에 한계가 있어서 정부나 대학 등의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이런 시설을 갖추었다.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 1천 미터에 세계 6번째 규모의 지하 실험 연구 시설인 예미랩을 4년 만에 준공(2022.10.5.)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암흑물질을 탐색하고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등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일본이 가미오칸데 시설에서 두 명의 노벨물리학상을 배출한 것을 뒤돌아보면 예미랩에서의 연구를 통해 향후 노벨물리학상의 수상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는 따라가는 과학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과감한 연구비 투자로 앞서가는 기초과학 강국이 되어야 한다. 

이제 정리해 보자. 지금까지 필자가 제시한 네 가지를 주의 깊게 숙고한다면 우리나라의 향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한마디로 우후죽순이라고 할 수 있다. 비 온 뒤 죽순이 막 나오는 것처럼, 이제부터 수상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유카와 히데키는 14번이나 후보에 오른 다음에야 상을 받았고,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는 1993년부터 시작한 연구가 23년이란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수상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상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시간의 축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의 성공 요인에 너무 집착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일제강점기(1910~1945)를 거쳐 왔으며, 한국전쟁(1950) 이후에는 당장의 배고픔과 굶주림이 일상인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인류 공영의 지식 증진’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 건 정말 사치일 뿐, 당장 우리에게는 경제 성장이라는 ‘실리’를 가져다 줄 응용 분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이유도, 과학기술을 축적하기에 늦었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우리가 지금부터 지식 증진을 위한 기초과학에서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본과 과학기술의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매달 수가 적다고 자존심 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은 양에서 질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탁상행정이 아니라 실행 가능성 높은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지속 가능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이공계를 기피하는 국민 의식 등이 개선된다면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연구자와 국민들이 일체된 모습을 보일 때 더욱 빛이 날 것이다. 

 

강철구 배재대·경제학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일본경제경영연구소 소장.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学)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거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행정연구소 선임연구원,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일본에 노벨과학상이 많은 진짜 이유>, <일본, 위험한 레트로>, <부동산 버블 붕괴는 어쩌다 시작되었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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