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갱신하는 유기체로서의 이상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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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갱신하는 유기체로서의 이상 문학
  • 조해옥 한남대·국문학
  • 승인 2023.12.1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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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이상 시의 문체 연구』 (조해옥 지음, 소명출판, 220쪽, 2023.11)

 

1930년대 문명의 찬미자이면서 비판자

이상의 수필 「추등잡필(「秋燈雜筆)」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전기기관차의 미끈한 선’과 ‘강철과 유리로 건축된 건물의 구성’이 지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된 교양인이 등장한다. 그는 끽다점(喫茶店)에 앉아 알 수 없는 차를 맛보고, 서양 음악을 들으며 몽상을 즐기는 자신의 취미는 도시의 근대적인 건축물과 전기기관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자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도시 풍경을 미적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여유는 그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 그에게 주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근대문명의 찬미자 이상은 비판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춘점묘(早春點描)」에서 이상은 근대 도시인 경성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에 가려진 모순들을 간파해 낸다. 이상의 시는 근대 문명의 향유자이자 동시에 그것의 숨겨진 이면을 간파한 자의 의식 위에서 탄생한다. 


생활언어로 시를 쓰다

이상 시는 시가 문헌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문자가 아니라, 시인의 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된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언어습관의 문학적 구현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 시의 문체 연구』는 이상의 언어적 환경인 서울방언이 이상 시에 문학적으로 재현된 양상에 대한 고찰이다. 이상 시의 문체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국문시에 투영된 서울 방언의 특징과 의의를 규명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상 시에 쓰인 서울방언으로 움라우트 현상과 모음상승 등이 나타나는데, 특히 인상적인 서울방언은 연결어미 ‘듯이>-드키’의 실현이다.

연결어미 ‘-듯이>-드키/듯키’는 이상 시 문체를 독특하게 생성하는 서울방언 가운데 하나이다. 연결어미 ‘-듯이>-드키/-듯키’는 이상과 언어 환경이 유사한 서울토박이들의 상당한 분량의 자연발화 녹취 사례에서도 ‘갈비탕 먹듯이>갈비탕 먹드키’와 ‘모자 쓰듯이>모자쓰드키’와 ‘그렇듯이>그러뜨기’ 단 세 차례만 발견되지만, 이상은 그의 시 네 편 - 「오감도 시제9호 총구」, 「오감도 시제10호 나비」, 「오감도 시제15호」, 「소영위제」 - 에서 ‘-듯이>-드키/-듯키’를 활용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상의 국문 시가 지닌 개성적인 시 문체는 이상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언어 실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배태되고 학습된 서울 방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감(語感)과 기능어(機能語)의 중요성을 인식하다

조사, 보조사, 보조용언 등의 기능어는 뜻을 지시하는 내용어를 도와 이상의 시 문체를 형성한다. 「위독(危篤)」 연작시에서 어감을 중시하는 이상의 언어의식이 나타나는데, 다양한 보조용언의 활용을 통해 이상 시의 어감과 의미가 다채롭게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은 그의 「危篤」 연작시에서 기능어에 속하는 보조조사와 보조용언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보조용언이 시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핵심적 자질은 아니지만, 보조용언은 화자의 감정과 의지를 강조하거나 세밀하게 드러내는 데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한다. 보조용언은 화자의 비판적 입장을 전달하기도 하고, 대상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화자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며, 화자의 욕구와 희망, 그리고 화자 자신의 행위 완료 후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내용어에 나타나는 의미 외에 화자의 심리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기능어인 보조용언이 맡고 있으며, 이 같은 기능어에 대한 이상의 새로운 인식이 이상의 시 문체를 독특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저자가 말하다_ 『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 육체의식을 중심으로』 (조해옥 지음, 소명출판, 268쪽, 2023.11)

 

육체가 인식의 주인이다.

이상의 시에 나타나는 육체는 정신 혹은 영혼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물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대상이 된다. 이상은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생적 힘을 육체에서 발견함으로써 관념의 허상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절단되고 파괴되는 육체를 통하여 시적 자아의 소외를 보여준다. 이상의 시에서 육체는 1930년대 경성의 이질적인 공간들의 부조화와, 그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심리적인 불일치를 체험하는 하나의 질료로 쓰인다. 

 

이상은 그의 시에서 절단되고 파괴되는 육체를 극적으로 그림으로써 육체의 존재를 극대화시킨다. 그의 시에서 육체는 의식하는 주체와 분리된 채, 독자적인 힘을 지닌 존재이다. 위의 시 「오감도 시제11호」는 육체와 의식의 대립과, 내가 알지 못하는 육체의 독자적인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나의 육체는 내가 이성으로 파악하고 통제하는 범위를 넘어선 존재임을 드러낸다. 나에게서 복제된 육체의 일부는 내 의식과는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접목처럼 팔에서 돋은 또 하나의 팔은 나를 위협하고 파괴시킨다. 나의 육체는 내 의식의 힘을 벗어난 존재인 것이다. 이상 시에서 자생적인 성질의 육체는 생동감이 확장된 의식 상태를 나타낸다.  


인간에 대한 추상적 관념을 깨뜨리는 시 「오감도 시제5호」

 

위의 시에서 이상은 인간에 대한 추상적 관념의 허상을 하나의 도형으로 간명하게 표현한다. 그는 인간의 장부를 물에 질척하게 젖어 있는 가축의 우리에 비유하는데, 사람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과연 동물의 몸과 구별할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기존의 관념과 형태를 거부하는 이상의 인식이 그의 작품을 새로운 시간으로 이끌어준다.

 

조해옥 한남대·국문학

한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제 34회 대전시 문화상 학술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1930년대 생활언어와 문화가 이상 문학에 재현되는 양상과 이상 시 문체 형성의 요인들을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연구를 하였다. 최근에는 1930년대 시로 연구 범위를 넓혀서 문체의 언어학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2001), 『이상 산문 연구』(개정 증보판 2016), 『도로를 횡단하는 문학』(2004), 『생과 죽음의 시적 기록』(2006), 『타오르는 기호들』(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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