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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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12.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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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대학 구조개혁도 그런 일 중의 하나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니 당연히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취업률, 충원율 등의 평가 지표로 구조조정을 하기도 했고, 대학 자율에 맡기기도 했다. 사회 갈등이 빚어졌고,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수도권 인구가 과반을 넘어섰다. 집값은 더 오를 것이고, 경쟁은 더 격화될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 심해질 것이다. 청년들은 지방이 구리다고 서울로 몰려드는데, 정작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0.59이고, 경기도는 0.84다. 청년이 빠져나간 지역의 출산은 급감하지만, 수도권이 이를 상쇄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킨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지 못하면 저출생은 해결되지 않는다.

수도권 집중은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일자리도 거기서 찾는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간 소위 말하는 지역 인재들은 금의환향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정부는 반도체 공장도 수도권에 짓고자 한다. 저출생, 지역 소멸은 수도권 집중과 따로 있지 않다. 수도권 대학으로 몰려들지 않도록 해야 지방대 위기도 탈피할 수 있다.

모집 정원이 500명 이하면 소규모 대학, 2,500명이 넘으면 대규모 대학으로 구분한다. 소규모 대학에서 선발하는 입학 정원은 전체 모집 정원의 3.28%에 불과하다. 대규모 대학에서 정원을 줄여야 한다. 23년 기준 2,500명 이상을 모집하는 대학이 45개교인데, 28개 국립대 중 11개 대학, 154개 사립대 중 34개 대학이 대규모 대학이다. 국립대는 40%가 이미 대규모 대학인데, 또 통합으로 덩치를 키우려고 하니 대학의 교육과 연구 환경은 더 나빠진다. 사립대의 경우 대규모 대학의 절반이 수도권에 있는데, 특히 3천 명 이상 모집하는 사립대가 19개이고, 12개 대학이 수도권에 있다.

대규모 대학은 전임보다 비전임교원이 많고 콩나물 강의실이라 대학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이들 대학에서 집중적으로 입학 정원을 줄이고, 대신 대학원 중심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 경우 당장 n수생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게다가 사립대들은 학생들 등록금으로 유지하고 있으니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중규모 대학의 교육 투자가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정부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사립대에 왜 정부 돈을 주느냐, 없어져야 할 대학에 왜 주냐고 비난들이 쏟아질 것이다. 

정부는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 모든 일들은 수도권 중심주의와 학벌주의, 그리고 그 밑에 도도히 흐르는 능력주의와 경쟁지상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니, 이 나라의 소위 엘리트들은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자신들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니. 교육부가 묘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대학판 오징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판을 벌인 건 교육부고, 대학은 참가자다. 탈락하면 죽는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 조선의 대학 설립을 막았다. 조선인들은 하층계급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들은 대학을 세우고자 했고, 해방 이후에도 국가는 대학 설립을 게을리했다. 대학의 공공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나은 처지의 국립대 정규직들이 앞장서 국립대 줄이기에 나서는 비극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럼으로써 수도권 대학과 경쟁할 수 있다고 자위하는 것일까? 금오공대와 통합 논의 소식이 알려지자, 경북대 본관 계단에 잠바를 벗어 던졌는데, 물경 500여 벌이라 하고, 그 이유 중 하나가 한 수 아래인 금오공대와 통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경쟁지상주의에 미쳐 돌아간다.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여야 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건 고달픈 인생이고, 해방을 꿈꾸기보다 제국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지방도 소멸하고 있다. 수도권을 지탱하던 지방의 산업구조는 무너진 지 오래인데, 정부는 지역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 정책을 되뇌고 있다. 전체 대학의 80%가 사립대인 기형적인 구조는 더 기형적으로 변했고, 지방의 사립대는 위기에 빠졌고, 인문, 사회, 자연계열 학과들은 사라져갔다. 글로컬 사업을 추진하자 여기저기서 국공립대 통합이 진행되어 지역 소멸과 저출생은 심화한다.

부산대와 부산교대, 강원대와 강릉원주대, 안동대와 경북도립대, 충북대와 교통대의 통합을 보고 경북대와 금오공대, 부경대와 해양대가 통합을 준비한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가장 안락한 처지의 국립대 교직원들마저 자기는 살아남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청년들의 저출생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불안은 마침내 저들의 영혼을 잠식하였다. 학령인구 감소가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불안이 대학을 집어삼켰다.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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