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시효 없는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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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시효 없는 사회적 책임
  • 김일환 서울과기대·사회학
  • 승인 2023.12.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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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020년 12월 10일 재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이제 출범 3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위원회의 활동기한 종료는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2021년 5월 27일부터 3년간의 임기가 보장되었던 위원회의 활동 종료 시점은 2024년 5월 26일이다. 2023년 11월 30일까지 총 2만 323건의 접수 사건 중 약 49.3%인 1만 19건이 ‘종결’ 처리되었는데, 그중 진실 규명된 사건은 4,290건(약 21%)이지만, 진상규명 불능, 각하, 취하 등으로 종결된 것이 약 28%에 달한다. 그리고 접수된 많은 사건들이 조사가 완료되지 못한 채 책상 위에 쌓여 있다.

제한된 조사권한과 인력으로 출범했음에도 진실화해위원회가 굵직한 조사 결과들을 발표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자체에 큰 영향을 주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사건에 대해 위원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왔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권위주의 정권기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정부 위원회 차원의 공식적 진상규명 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분명한 성과다. 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부산시와 경기도 등 해당 지자체에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후속 조치 역시 진행 중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숙제들도 여전히 많다. 특히 ‘부랑인’, ‘장애인’, ‘윤락여성’ 등의 집단들을 격리된 시설에 수용했던 ‘집단수용시설’ 사건에만 국한해 보더라도,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문제의 전체적 모습이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과 같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시설들 외에도, 마치 하나의 촘촘한 네트워크처럼 존재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신체를 구속했던 장애인, 여성 수용시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여전히 적다. 진실의 일단을 담고 있는 공문서 자료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고, 피해당사자들은 고령과 낮은 문해력, 사회적 낙인 등으로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행정적 장벽에 부딪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부산 ‘영화숙/재생원’ 사건의 사례다.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영화숙/재생원은 1960년대 부산 지역의 ‘부랑아’, 성인 ‘부랑인’ 등을 수용했던 일시 수용인원 1,200명 이상의 대규모 시설이었다. 당시 부산 지역의 경찰, 공무원 등에 의해 단속된 집단들이 일차적으로 현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했던 시설로 격리 수용되었다. 특히 영화숙/재생원은 형제복지원의 ‘모델’과도 같은 시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 – 도시 공간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낙인찍기와 무차별적인 단속, 폭력의 민간 위탁구조, 영리사업화한 민간 사회사업, 시설 내부의 군대식 규율과 잔혹행위, 강제노역 등 – 의 원형적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영화숙·재생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 등 9개 단체는 지난 3월 14일 오후 2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용 감금 복지시설에 대한 직권조사를 촉구했다.<br>
영화숙·재생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 등 9개 단체는 지난 3월 14일 오후 2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용 감금 복지시설에 대한 직권조사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미 1960년대 당시부터 부산 지역에서는 영화숙/재생원의 운영 방식이 지닌 문제점이 공론화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1970년대 초에는 부산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영화숙 아동 구출’을 위한 서명운동이 지역 사회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힘입어 영화숙/재생원은 결국 1970년대 초에 폐쇄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폐쇄 이후에도 격리수용을 중심으로 한 부산시의 정책은 변함없이 지속됐다. 수용자들을 다른 시설로 차례로 전원조치되었고, 당시 시설 운영자는 벌금 30만 원의 형만을 받았을 뿐이다. 부산시가 1968년 제정한 「부산시재생원설치조례」는 1975년 이후 형제복지원이 부산시로부터 부랑인 수용 업무를 위탁받았던 법적 근거로 계속 활용되었다. 영화숙/재생원은 시설 운영의 양상부터 사건 공론화 이후 처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형제복지원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만약 1970년대 영화숙/재생원 사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었다면, 형제복지원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구술에서나 간간이 언급되었던 영화숙/재생원은 그 전모가 최근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제신문 등 부산 지역 언론과 당사자들의 진상규명 운동, 시민운동단체의 지원을 통해 비로소 참혹했던 영화숙/재생원의 내부 실상이 다시금 드러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형제복지원’이 비단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시설이 아니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낙인찍고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지역사회의 모순은 여러 시설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필자는 최근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의 극적인 만남과 진상규명을 향한 헌신을 지켜보면서, 집단수용시설 사건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음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2022년 10월 국제신문의 사건 보도 이후, 영화숙/재생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령층이고, 여러 건강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1970년대 초 영화숙/재생원이 폐쇄된 이후 50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시설 수용의 흔적은 이들의 몸에 새겨져 있다.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이들이 다시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협의회”를 만들고,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 자체가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8월 23일 영화숙/재생원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집단수용시설 사건에 대해 개별 신청사건만을 대상으로 진상규명 절차를 밟아온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전향적인 결정이었다. 이미 2022년 12월 9일 진실규명 신청이 마감된 상황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가능성 역시 다행히 열렸다. 그러나 불과 5개월여 남은 위원회의 활동 기간 내에 충실한 자료 수집과 진실규명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영화숙/재생원은 극적으로 피해당사자들의 조직화와 진상규명 운동이 진행되었던 예외적 사례에 가깝다. 집단수용시설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위원회의 활동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부 위원회의 선제적인 조사와 진상규명 작업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대구시립희망원’,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서울시립부녀보호소’, ‘양지원/성지원’ 등 인권침해 문제가 이미 널리 알려졌던 집단수용시설에 대해서도 일부 피해자들의 개별 신청건을 제외하면 본격적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못했다. 무수한 피해자들을 양산했던 이들 사안에 대한 책임 있는 진실규명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소임일 것이다. 위원회의 임기 연장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김일환 서울과기대·사회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한국의 교육·복지·의료 등 여러 영역에 뿌리내린 민간 재단의 독특한 구조와 성격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지은 책으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공저), 논문으로는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학위논문), 「지역에서의 ‘부랑인’ 수용과 민간 사회복지: 1960-70년대 부산을 중심으로」, 「'시설화된 돌봄'과 그 이면: 1960-70년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운영과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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