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들 안에서 평등”과 “평등 안에서 자유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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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들 안에서 평등”과 “평등 안에서 자유들”을 찾아서
  • 이대희 부경대·지정학
  • 승인 2023.12.1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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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 콜레주 드 프랑스 마지막 강연』 (레몽 아롱 지음, 피에르 마낭 엮음, 이대희 옮김, 에코리브르, 104쪽, 2023.11)

 

<레몽 아롱의 자유와 평등>은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레몽 아롱(Raymond Aron)의 “콜레주 드 프랑스 마지막 강연”에 그의 제자인 정치철학자 피에르 마낭(Pierre Manent)이 해제를 붙이고 편집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마낭이 강연을 편집한 이유는, 1978년에 아롱이 한 강연은 당시에 타자기로 친 텍스트로만 ‘부실하게’ 남아 있을 뿐이어서, 마낭이 부실한 부분을 첨삭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롱이 1970년에서 1978년까지 재직한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분야에서 프랑스 최고의 연구·교육 기관이다. 이곳의 교수로 임명된다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콜레주 드 프랑스는 프랑스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성격의 연구·교육 기관이다. 이 기관의 특징은 무엇보다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데, 행정상의 자율과 함께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에서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며(교수들의 의무는 매년 13시간의 강의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는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대중도 무료로 자유롭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아롱이 퇴임을 앞두고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마지막 강연을 엮은 것이다.

학자로서 아롱은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교수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agrégation)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교수자격시험 합격은 박사학위 취득보다 더 권위를 인정받는다〕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소르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러나 그의 역량과 업적을 생각하면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소르본 대학(50세)과 콜레주 드 프랑스(65세)에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보다 한 해 전에 43세의 나이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임명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비교해 보면 그런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당시 프랑스 지성계의 상황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지성계는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어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아롱은 지성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주변부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1955년에 소르본 대학 교수로 선출될 때도 상당한 반대에 부딪쳤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면서 그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의 프랑스 지성계에서 좌파는 사르트르가, 우파는 아롱이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였다고 흔히 말하지만 - 두 사람은 고등사범학교를 같은 해에 졸업했다 - 당시의 지성계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 측면에서 보면 아롱은 사르트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또한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30년간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의 논설위원으로서 현실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사회학과 철학, 국제문제를 포함한 정치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술 활동이나 현실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는 사실 프랑스 지성계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학문의 칸막이화는 미국적 학문 경향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허무는 일종의 통섭은 프랑스 학문의 전통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인 앙가주망(engagement) 또한 에밀 졸라 이래 프랑스의 전통이자 지식인의 책무로 여겨져 왔다.

이 책에 담긴 아롱의 강연도 한편으로는 사회학적이면서 철학적이고 또한 정치학적 사색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강연에서 아롱은 학술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프랑스 사회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주제가, 그가 평생 성찰한 화두라고 피에르 마낭이 지적한 정치였을 것이고, 정치에서도 특히 자유의 문제였을 것이다. 이 강연에는 여러 소제목이 붙어 있지만, 크게 보면 ‘자유들’을 성찰하는 앞부분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 당시에 대두한 자유를 둘러싼 여러 사유와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뒷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롱은 자유를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실천적 차원에서 성찰한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는 하나의 대명사 ‘자유’가 아니라 복수의 ‘자유들’이다. 이런 자유들을 그는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안전과 이동, 경제 활동 그리고 종교 등에 해당하는 개인적 자유들, 통치자를 선택하고 반대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들 그리고 복지와 노조 활동 등에 해당하는 사회적 자유들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은 자유를 흔히 형식적 또는 절차적 또는 정치적 자유와 실질적 또는 사회경제적 자유로 구분하는 방식과 다르다. 그 이유로 아롱은 형식적 자유로 흔히 거론되는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 자유들도 엄연히 실질적인 성격이 있고 또한 이러한 자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전적’ 철학자들의 자유에 대한 성찰에는 자유가 추구하는 이상인 좋은 사회의 표상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의 미덕에 대한 강조가 항상 수반되었다고 아롱은 지적한다. 반면에 아롱이 이 강연을 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자유를 권리로만 인식해 쾌락주의가 만연하고, 지성계에서는 모든 권력과 권위를 억압으로만 간주해 부정한다고 아롱은 한탄한다. 즉 좋은 사회에 대한 표상이나 시민적 미덕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진다고 아롱은 우려한다. 이런 점에서 아롱은 피에르 마낭이 지적하듯이 전형적인 ‘고전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어떤 수준에서든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아롱은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강연의 내용 대부분이 자유들에 할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의 제목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롱은 강연에서 평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유 안에서의 평등”과 “평등 안에서의 자유”의 추구가 서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사회적 자유에 대한 설명에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그의 인식이 잘 드러난다. 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과 기업에서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사회적 자유들로 파악한다. 사회보장으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 국민은 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노동조합의 자유로 기업의 위계를 완화하고 경영자의 권한을 축소함으로써 기업에 민주주의를 도입한다는 설명에서 “자유 안에서의 평등”과 “평등 안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별개가 아니라고 보는 그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그가 사회적 자유들로 파악하는 이런 자유들을 우리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아롱은 자신이 논의한 자유들이 서구적 현상임을, 자신의 논의가 서구중심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서구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가 비서구 사회와 국가들에도 해당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담론을 결정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연을 마치면서 아롱은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누리는 자유들은 역사적으로나 현재의 세계에서나 예외적 현상임을 강조하고, 그것이 특혜임을 잊지 말기를 청중들에게, 프랑스의 청중들에게, 당부한다.

아롱은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사상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이 강연 이후 현실에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가 평생 화두로 삼은 것이 정치였으므로 해결책은 시장이 아니라 정치라는 견해를 밝혔을 것이다. 물론 그가 추구하는 정치는 자유민주주의였을 것이다. 오늘날 자유가 새삼스레 화두로 떠오른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자 아롱이 성찰하는 자유와 자유민주주의가 논의에 깊이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때의 창작은 번역자의 자율과 상상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자칫 원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그야말로 순전한 창작이 될 수도 있음을 번역할 때마다 느낀다. 특히 이 책처럼, 레몽 아롱의 강연은 구어체로, 피에르 마낭의 해제는 문어체로 되어 있을 때, 또한 구어체로 된 아롱의 강연은 얼핏 난해한 문장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번역이 쉬워 보이지만 실상 그 내용은 그렇지 않을 때, 창작이 그야말로 번역자만의 창작이 될까 두려워진다. 모쪼록 번역이 원저자들의 의도를 해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대희 부경대·지정학

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지정학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정치학으로의 산책》(공저), 《지방정치학으로의 산책》(공저), 《세계 지역의 정치》(공저)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문화변용과 적응》, 《한미동맹의 진화》, 《대륙의 발명》(공역), 《지정학 입문: 공간과 권력의 정치학》(공역), 《의지, 의무, 자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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