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에서 똥의 재현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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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에서 똥의 재현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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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로서의 똥: 연암에서 퀴어, SF까지 한국문학의 분변학 | 김건형·김용선·박수밀·오성호·이경훈 외 6명 지음 | 소명출판 | 492쪽

 

많은 신화에서 똥은 풍요를 상징한다. 설화 전설 등에 넘쳐나는 똥 이야기를 통해서 민중들은, 우리 모두 똥 싸는 존재라는 점을, 젠체하는 양반들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했다. 그 똥은 어떻게 해서 비천화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 이후 뭇 생명에게 어떤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고 있었을까. 이 책은 한국문학에서의 똥의 재현을 다룬 글들을 묶었다.

‘밥-똥 순환’의 시기에 똥은 귀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양가적 대상이었다. 점차 신분제 사회로 이행하면서 똥의 양가성 역시 특정 부류의 인간에게 나뉘어 배치되었다. 똥을 다루는 농부 등에게는 비천함이, 생산에서 면제된 귀족에게는 고상함이 각각 차별적으로 배정되었다.

근대 들어서면 똥은 극적으로 비천화된다. 과학은 똥이 콜레라 등 각종 감염병의 원천임을 밝혀냈다. 똥비료는 화학비료로 대체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이런 변화를 먼저 이룬 서구인들은 제국주의 시대 비서구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그곳의 똥더미들을 야만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다. 동아시아지역은 똥비료를 활용하는 생태적 농법이 가장 활발했고 비교적 오래 유지되어왔지만, 서구인들의 비서구에 대한 야만화는 오늘 우리에게도 지배적인 인식이 되었다. 생태적 순환이 끊기면서 똥은 오염원으로 전락했으며 양가성을 잃고 비천화되었다. 우리가 매일 누는 똥은 이처럼 인류의 역사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존재를 똥처럼 취급하면서 시각에서 차단시켜 버리는가. 그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고정관념을 만드는가. 그것은 과연 정당한가. 감각의 차별적 배치는 사회적 차별을 즉각적으로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매우 자주 활용되었으며, 문학작품은 이런 지점을 포착하는데 적절한 예술의 갈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근대화과정에 비천화된 똥이 한국문학에는 어떻게 재현되어 있으며 우리의 인식을 만들었는지를 따져 묻는다. 한국문학은 지배적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그 통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에서 똥의 재현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 이 책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주제론적으로 관통하는 바, 다양한 시기와 작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조선후기에 한양 역시 다른 근대도시들처럼 인구집중에 따라 똥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넘쳐나는 한양의 똥을 모아 농촌으로 옮기는 똥장수가 나타나지만 사회적 비천함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다. 실학파의 거두답게 연암은 「예덕선생전」에서 똥장수를 등장시키고 그들을 양반과 대비시킨다. 똥장수는 똥을 밥으로 순환시켜 세상을 이롭게 하며, 엄행수를 비천시하는 양반들이야말로 똥만도 못한 존재라는 식이다. 신분에 따라 귀하고 천함, 아름다움과 추함의 감각이 차별적으로 배치되는 지배적 인식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이광수, 김동인, 심훈, 김남천 등의 감옥 서사에 주목한 논문도 있다(황호덕, 한만수). 일본은 조선인을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로 야만화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정당화논리를 찾았는데, 감옥이란 똥과 인간이 잘 구분되지 않는 장소이니 이런 야만화에 적절한 장소였다. 감옥서사들은 똥이 비천화의 주요 기제로 활용되는 감옥의 현장을 적실하게 묘사하지만, 동시에 비천화를 숭고로 반전시키고 있다. ‘말하는 입’과 ‘먹는 입’, 그리고 ‘싸는 구멍’의 계서화 및 그 반전이 작품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그리고 이광수와 다른 작가들의 감옥서사가 어떻게 구분되는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똥냄새와 새 상품의 냄새를 비교한 논문도 흥미롭다. 자연, 빈곤층, 조선인 등은 후각적으로도 타자화되었고 이를 통해서 과학, 부유층, 일본인 등은 주체화되었음을 확인한다(이경훈). 감옥이나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의 이런 경향과는 달리 심훈의 『상록수』를 비롯한 농촌소설에서 두엄은 된장, 밥, 고향냄새 등과 동일시되면서 구수한 것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 똥의 문학적 재현은 ‘불쾌’가 ‘쾌’보다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위생관념과 화학비료가 점차 보급되는 상황이었다는 점, 특히 근대화에 대한 작가들의 열망과 관련될 것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조선인 사이의 감각적 차별은 수그러들지만 민족 내부에서는 소수자들을 똥과 동일시하면서 비천화했던 지배자들의 은유체계는 여전했다. 문학은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너희야말로 똥이다’라는 식의 되받아쓰기를 구사하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였다. 특히 민중문학에서는 ‘똥=적’의 동일시에 의존하는 이분법적 인식이 강력했는데, 이는 외부의 적을 통해 민족, 민중 등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여성 등의 또 다른 소외를 불러오기도 했다는 지적도 주목할만하다(김철).

1980, 90년대 이후에는 생태주의, 도시문명 비판, 비인간(非人間)주체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똥의 재현은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정호승의 시에서 똥은 육체를 정화하고 영혼을 비상시키는 성속(聖俗)의 교차점에 위치한 사물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최승호의 시에서 똥은 인간의 탐욕이 농축된 혐오스러운 것으로, 하얀색 도기 변기는 문명의 세련된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각각 그려진다(오성호). 최승호 시에서 배설물 등 아브젝트(abject)는 근대적 인간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폐기되고 억압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되었다(정기석). 인간/비인간, 생명/죽음의 이분법적 위계에 대한, 상품과 쓰레기를 동시에 양산하는 자본주의 등에 대한 해체적 비판이 이 작품들에서 강력하다는 것이다.

시인 김현의 작품에 주목하여 퀴어가 똥이나 항문섹스와 연계되면서 비천화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작업도 흥미롭다(김건형). 김동인부터 김초엽까지 100여년의 SF를 점검한 논문도 있었다.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에서 똥을 식량으로 전환하는 모티프는 단순히 기발한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문제들을 서구과학에 의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형상화한 것이며, 최근의 SF들은 인류세 시대의 상상적 대안으로서 똥의 재자원화에 대한 상상력이 본격 대두된다는 지적이다(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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