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보험문화의 출발과 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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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보험문화의 출발과 형성은?
  • 유주선 강남대·법학
  • 승인 2023.12.0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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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다수 사상가를 배출한 나라이면서, 우리와 유사한 법률을 가지고 있는 국가로 인식한다. 특히, 보험의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보험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사회적 연대성(soziale Solidarität)”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 ‘사회적 연대성’으로부터 공적부조, 근로, 교육 등의 다양한 제도가 독일에서는 작동하고 있다. 실업, 질병, 산재를 당한 경우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보험 역시, 비록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의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된 것이지만, ‘사회적 연대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고를 통하여 노동자 계층이 보호받게 되고 사회불안은 예방되며 안정된 사회적 기반이 구축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과거에는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으로서의 ‘사회’ 개념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과 개인이 모인 형식적인 형태의 ‘사회’라는 개념보다는 개인들 사이의 연결, 상호작용과 그 과정을 ‘사회’로 보는 경향이 짙다. ‘사회’ 안에서 나와 타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에서, 우리는 연대성(Solidarität)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가진 재능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성은 나의 권리는 타인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하는 것이고, 이는 사회국가원리의 기본적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실제로 독일 헌법 제20조는 “독일 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고 사회적 연방국가이다.”라고 하면서, ‘사회적 연대성’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국가(Sozialstaat)’를 표방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 신체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노령자, 임신부 등 보통 사람에 비하여 부족하거나 약하거나 소외된 사람과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자는 의미가 바로 사회적 연대성이다. 소외된 사람이 많아지면 그 피해는 결국 소외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적 연대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일종의 연대채무를 부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채무는 모두가 함께 나누어서 조금씩 분배하여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제 그 혜택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성’의 원리이다. 연대의 원리는 단순히 상대의 책임을 부담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 ‘사회적 연대성’ 원리가 시작되는 것이라 하겠다.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의료보험제도를 포함하여,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공보험(公保險)과 사보험(私保險) 제도를 통해서 의료와 관련된 많은 부분을 지원해주고 있다. 의료보험 외에도 국민 생활과 직결된 생·손보 영역에서 다양한 보험이 제공되고 있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공제조합(共濟組合)이 두드러지게 발달된 나라이다. 공제조합은 상부상조의 정신을 기반으로 그 지역이나 공통된 업종의 사람들이 발생하는 사고나 위험을 대비하는 제도이다. 많은 수로서 위험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를 통하여 위험을 감소시켜 주고 나의 위험도 감소할 필요를 인식한 사회구성원들은 ‘사회적 연대성’의 인식하에, 다양한 직종과 직업의 공제조직을 형성하였다. 위험공동체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성원이 납입하는 분담비(이른바 ‘보험료’)는 저렴해질 것이고, 그 구성원 사이의 확고한 공조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성’은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고,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 사이에서도 작동된다. 

보험사고 시 보험금을 정당하게 지급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보험계약자가 정당하지 않는 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받고자 하거나, 지급되지 않아도 되는 보험금을 보험회사가 지급하게 된다면, 보험의 중요한 메카니즘인 ‘수지상등(收支相等)의 원칙’이 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려 깊은 생각은 바로 ‘사회적 연대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보험은 사람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뜻밖의 사고나 손해를 당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경우에, 동일한 위험에 처한 다수의 사람들이 그로 인한 경제적 수요를 대비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보험은 위험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통계적 기초와 ‘대수의 법칙’에 따라 산출된 일정한 금액을 미리 갹출하여 공동기금을 형성하게 되고, 축적된 공동기금을 통하여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분배되는 구조다. 

우리는 “일인은 만인에게, 만인은 일인에게”라는 보험의 중요한 격언(格言)을 알고 있다. 이는 바로 보험의 ‘사회적 연대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독일 공제조합의 발달은 바로 “함께 가자”라는 모토 속에서 고양된 ‘사회적 연대성’에서 찾을 수 있고, 이러한 상호부조는 대규모의 보험회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보험회사를 포함한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보험수익자 등 보험의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연대성’을 가슴에 새긴다면, 건전한 보험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주선 강남대·법학

강남대 정경학부 교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석사 및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보험학회 차기회장, 한국경영법률학회 부회장이며, 국토교통부 공제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보험법》, 《기업법 I》, 《기업법 II》, 《보험중개사의 이해》, 《상법요해》제8판 (공저), 《핀테크와 법》제3판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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