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의 인문학 지원기관 사례조사 및 정책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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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선진국의 인문학 지원기관 사례조사 및 정책 시사점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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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이슈 리포트]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 학술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교육과 연구의 이공계 쏠림으로 인문학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학문후속세대는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학문과 교육이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현재, 한국의 인문학은 기초학문의 토대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이념적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에 한국연구재단은 주요 선진국의 인문학 지원 기관 및 프로그램을 조사함으로써 21세기의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한국형 지원사업의 모색과 정책적 시사점 제공을 목표로 한 연구보고서 〈주요 선진국의 인문학 지원기관 사례조사 및 정책 시사점〉을 ‘NRF 이슈리포트 2023_ 8호’로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대상으로 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 독일 4개국으로, 각 나라의 인문학 연구 및 교육 지원기관은 21세기 인문학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목적과 방향성은 각기 다르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국립인문재단(NEH: 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 미국의 인문학 지원 최근 정책 동향 및 시사점

▶ 미국의 최근 인문학 연구지원 정책 동향

ㅇ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지원 확대 - 디지털 인문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인문학 연구를 수행하거나, 인문학적 방법을 이용해 디지털 기술을 분석하는 분야로 미국 국립인문재단(NEH: 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은 2008년 특정 학문분야로서는 유일하게 독립된 디지털인문학 전담 사무국을 신설하고 이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ㅇ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확대 - NEH는 기후위기, 인공지능 등 당면한 주요 쟁점에 대해 인문학적 접근을 적극 지원하는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미국 사회 전체에서 인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시사점 및 우리나라 인문학 위기 극복 대안

ㅇ 학제 간 융합연구 지원 확대 - 인문학적 주제를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접근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ㅇ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 - 인문학 연구의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고, 인문학적 문제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함으로써, 사회 전체에서 인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일 수 있다.

ㅇ 기관 주도 연구 확대 - 미국의 인문학 연구지원 정책에서 주목할 점은 개인 연구자보다 기관 연구에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수나 지원액 규모도 기관 연구가 압도적이지만 프로그램의 목적과 구체적 지원 내용 면에서도 기관을 통한 인문학 실천 및 발전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등교육 기관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커리큘럼 개발, 교수진 역량 강화, 교육 자원 개발 등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성과를 목표로 한다.

▶ 기타 정책적 제언

ㅇ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 지원 방향과 정책 지향점이 NEH의 경우처럼 ‘명시적으로’ 동시대, 역사, 글로벌 사회, 국가, 공동체, 교육기관, 소규모 집단 등을 위한 의제를 통해 구현될 필요가 있다.

ㅇ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지원이 개인 연구자의 과제 선정을 넘어 NEH 경우처럼 대학의 개별 특성과 지역적 조건을 바탕으로 한 커리큘럼 개발, 비인문학과의 연계 전공 창설, 다양한 교육 리소스 발굴 등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ㅇ 미국의 NEH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틀로써 실행하고 있는 사업과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등교육 전반으로의 인문학 수렴, 인문학과 비인문학의 복합적 연결망 구축, 정책 환경의 변화에 상호작용하면서 동시대 및 미래 공동체를 위한 인문 연구(개인과 단체)의 특화가 필요하다.

ㅇ 분과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연구에 적합한 기획 및 평가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영역이 정책 보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NEH와 같이 독립 인문재단으로서 분과 학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것이 정책의 수월성이 아닌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 일본의 인문학 지원 최근 정책 동향 및 시사점

최근 일본의 인문학 분야 지원사업은 세 가지 방향성을 보인다. △첫째는 신진연구자의 육성 및 지원, △둘째는 결혼과 육아, 간병 등 ‘돌봄’과 관련된 사정으로 인한 연구 단절 극복, △셋째는 국제적인 시각을 갖춘 연구 및 글로벌 네트워킹이다. 

ㅇ 인문학 분야 지원사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신진연구자의 육성과 지원사업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점이다. 신진연구자 육성과 관련된 사업을 통해 박사과정 대학원생의 생활비 및 연구비 지원과 박사학위 취득 후의 연구지원뿐만 아니라 ‘연구’에 대하여 초중등교육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ㅇ 최근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신진연구자 지원과 관련한 프로그램이다. 박사취득 후의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에서 ‘불안정한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강화해 탁월 연구원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도입하고 있다. ‘불안정한 연구 환경’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경제적인 불안정과 고용 불안정이다. 

ㅇ 특히 2023년부터 시행되는 연구환경 향상을 위한 신진연구자 고용지원사업(研究環境向上のための若手研究者雇用支援事業)은 대학과 연계하여 박사학위 취득자의 고용안정을 전면에 내세운 사업이다. 기존의 PD(박사후 과정) 지원사업이 일본학술진흥회가 직접 연구자를 고용하는 형태였다면 이 프로그램은 PD를 고용하고자 하는 대학 등의 연구기관이 일본학술진흥회에 신청하여 고용지원금 대상기관으로 선정되면 대학에서 직접 PD를 고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PD를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경비(인건비 포함)는 일본학술진흥회가 부담하고 PD 신청자는 대학과 직접 고용계약을 맺고 급료를 받게 된다.

ㅇ 연구 기피 현상과 학령인구감소로 인해 학문후속세대 양성이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연구’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넓히고 산학관이 연계하여 ‘불안정한 연구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일본학술진흥회 지원사업의 방향성은 한국의 인문학 분야 지원 사업에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CNRS)

■ 프랑스의 인문학 지원 최근 정책 동향 및 시사점

ㅇ 프랑스는 국립과학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CNRS)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 특성화된 고등교육기관 사이의 공동 연구를 활성화하고 있다. 특히 국립과학연구원과 대학 연구소 또는 특성화된 고등교육기관 및 전문기관과 대학 연구소 사이의 유기적 결합을 강화하고 있다. 

ㅇ 대학 연구소와 연구 지원기관 사이의 긴밀한 유기적 결합은 연구 아젠다의 종합적 완성도를 높이는 주요한 촉진제이다. 인문과학원 네트워크를 통해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 및 학제 간 또는 다학문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기초인문학과 함께 인문융복합 시도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ㅇ 국립과학연구원 소속 책임연구원들은 대학 전임 교원과 공공기관 소속의 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fonctionnaire)으로서 안정적이며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연구단에서 대학 소속 교수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석사 및 박사 학생을 지도하여 수준 높은 연구 성과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ㅇ 에라스무스 문두스(European Region Action Scheme for the Mobility of University Students, Erasmus Mundus) 프로그램으로 연구의 국제적 협력과 확산을 통한 국제화 지수를 높임과 동시에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ㅇ 현재 대학별 연구소를 기반으로 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정지원을 하는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 체계는 단기적으로 새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거점 연구소를 빠르게 육성할 수는 있었지만, 학교별 연구소 중심의 이러한 시스템은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는 우수한 연구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손실이 크다.

ㅇ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 학계와의 교류를 통한 국제화는 BK21에 참여하는 사업단 위주로 소수의 연구소 위주로 실행되고 있으며, 경쟁을 통한 평가는 각 연구소의 관점에서는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적 수준의 연구 역량 강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석사·박사·박사 후 연수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이 국제적 협력을 통한 연구를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며,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유럽의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을 좋은 사례로 활용할 수 있다.

 

                                    독일 연구협회(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 DFG)

■ 독일의 인문학 지원 최근 정책 동향 및 시사점

ㅇ 독일은 대학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연구기관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과학기술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인문학을 지원한다. 독일디지털도서관(Deutsche Digitale Bibliothek)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위시해 디지털 인문학 분야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ㅇ 연방국가인 독일은 총 16개 주정부의 고등교육 담당 부서가 자신의 지역사회 상황에 맞추어 교육정책을 시행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대학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독일의 이러한 대학과 지역의 협력관계는 한국 글로컬대학 사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ㅇ 우리나라도 이공계 연구가 인문학과 협력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인문학의 위축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갈등, 정서적 황폐화, 과학기술의 위협에 우리나라 학계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다. 인문학자들이 안정적으로 다른 학문과 협력하여 사회문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이 획기적으로 증가해야 하며 학문후속세대들이 중단 없이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ㅇ 독일에는 대학 이외에도 수많은 연구소에서 인문학 연구가 진행된다. 국가가 설립한 연구소뿐 아니라 민간에서 연구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독일처럼 학문협의회(Wissenschaftsrat)를 설립해 창의성을 토대로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희소 학문 및 소수 학과에 대한 지원책 및 교육정책을 수립하여 다양한 학문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ㅇ 독일 학문협의회에서의 결정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최대 지원기관인 독일 연구협회(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 DFG)는 학문협의회의 제언을 참고해 자율적으로 연구비를 배분한다. 이처럼 학문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교육위원회가 2022년에 출범하였으나 독일학문협의회처럼 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제안을 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ㅇ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정책입안자, 언론계 등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독일처럼 인문학의 해를 지정해 각종 행사를 통해 인문학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하고,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사회 전체에서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  결론

ㅇ 각 나라가 인문학 및 인문학 지원에 대해 다른 방향성을 보이는 것은 그 나라의 사회가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근대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의 학문적 개념이 정착됨과 동시에 다양한 인문학 연구 및 지원기관이 자리 잡은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관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유기적으로 기능하며 인문학을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인문학 지원이 연방/국가의 대표적인 지원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현재의 사회적 가치의 창출과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인문학 지원에 접근하고 있다.

ㅇ 한국은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다양한 학문 분야의 매개자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학문과의 융합연구의 토대가 되는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에 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인문학 학문후속세대와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에서 인문학이 기초학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학문후속세대들이 중단 없이 연구할 수 있는 연구기관의 설립과 운영이 필요하고, 독일 학문협의회나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처럼 구체적인 연구를 토대로 중장기 인문학 정책을 수립할 상설기구의 설립 또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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