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흐름으로 그려낸 서양 중세 천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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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흐름으로 그려낸 서양 중세 천년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1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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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인들: 서로마 몰락부터 종교개혁까지, 중세 천년사를 이끈 16개 세력 [전2권] | 댄 존스 지음 |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904쪽

 

오랫동안 서양 중세는 고대와 근대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여 있는 시기에 불과하고 야만성이 지배한 ‘암흑시대’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근래에 중세의 진면모를 찾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편견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저자 댄 존스는 이 책에서 로마인·프랑크인·아라비아인·몽골인 등 당대를 주름 잡은 민족을 비롯해 수행자·기사·건축가 등 중세를 상징하는 다양한 세력들의 활약과 흥망성쇠를 따라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눈앞에 생동감 있게 펼쳐낸다. 

서양 중세의 역사는 그의 손길을 따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에 걸친 거대한 공간을 무대로 삼아 1000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동안 펼쳐지는 매혹적인 이야기로 승화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다름 아닌 권력의 흐름이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중세사를 이끈 세력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전한 유산은 무엇인지를 추적한다. 특히 서로마의 몰락을 상징하는 410년 로마 약탈에서 시작해 종교개혁 시기 교황의 권위 추락을 상징하는 1527년의 로마 약탈로 끝나며 시작과 끝이 대칭을 이루는 신선한 구성을 통해 중세사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중세를 이끌어온 핵심 세력들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4부 16장으로 이루어져 총 16개 세력을 살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로마인, 프랑크인, 아라비아인, 몽골인 등 나라 또는 민족이 6개, 나머지 10개 세력은 수도사, 기사, 학자 등 어떤 직업을 갖고 있거나 어떤 일에 매달린 사람들이다. 이러한 구성만 보아도 중세 1000년의 흐름과 그 속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이 시기 역사를 이끌어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1부는 고대 세계를 주름잡았던 ‘로마인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들의 유산을 확인한다. 5세기 무렵 마침내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며 중세가 시작되는데, 로마의 뒤를 이어 등장한 세력들을 살펴본다. 로마를 무너뜨리고 유럽의 토대가 된 ‘이방인들’, 동로마를 새롭게 개조한 ‘동로마인’들, 그리고 초기 이슬람 제국을 세운 ‘아라비아인들’이다. 대략 5세기 초부터 8세기 중반까지의 이야기다.

2부는 ‘프랑크인들’의 시대에서 시작한다. 서방에서 기독교 제국을 세운 그들은 곧 무너졌고, 유럽은 여러 왕조로 쪼개지며 부침을 겪는다. 그 무렵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연성’ 권력의 두 축, ‘수행자들’과 ‘기사들’의 부상을 살피고, 그 두 부류의 사고방식이 융합해 탄생시킨 ‘십자군들’의 활동을 추적한다.

3부는 12세기 무렵 새로운 초강대국을 세운 ‘몽골인들’의 놀라운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잠깐이나마 세계의 절반을 잠깐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세계 지리정치학의 이 극적 변화를 배경으로 중세 ‘성기(盛期)’로도 불리는 이 시기에 등장한 다른 강국도 살펴본다. 새로운 금융 기법으로 자신들과 세계를 더 부유하게 만들었던 ‘상인들’, 고대의 지혜를 되살리고 대학을 설립한 ‘학자들’, 도시와 대성당과 성곽을 만든 ‘건설자들’도 만난다.

4부는 14세기 무렵 동-서를 관통한 세계적 유행병과 그 ‘생존자들’이 겪은 혼란으로 시작한다. 이어 세계를 재건하고 새 시대를 연 이들을 살펴본다. 문예부흥기의 ‘쇄신자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 마침내 가닿은 위대한 ‘항해자들’과 함께 여행한다. 마지막으로 ‘개신교도들’이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어떻게 종교개혁을 가져왔는지를 톺아본다.

저자는 중세사의 끝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 속에서 현재와 역사를 관통하는 매혹적인 접점들을 발견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중세사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따라서 로마는 단순히 고대의 위풍당당한 군사 강국이 아니라 훗날 유럽을 지배할 로마법, 언어, 기독교 신앙의 원천이며, 게르만족의 침략은 야만적인 무리의 소행이 아니라 서유럽의 정치적 틀이 확립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또한 아라비아인들의 정복은 단순히 기독교의 확산을 막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동서양을 괴롭히는 종교적 분열의 근원이며, 바이킹의 등장은 유럽과 북미를 잇는 최초의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노르망디를 건설함으로써 미래의 영-프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임을 드러낸다. 곳곳에서 브렉시트, 일론머스크의 이름 짓기, 켄드릭 라마의 음악 등 현대의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를 통해 중세와 오늘날을 비교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아울러 역사적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역사를 변화시키는 변수들에도 주목한다. 즉,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기후 변화·유행병과 같은 자연적 변수와 여기서 촉발된 대량 이주·기술 변화 등이 중세사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강조한다. 이로써 지구 온난화와 코로나 팬데믹, 난민 문제 등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중세인들의 삶을 움직이는 요소는 본질적으로 비슷했음을 깨닫게 하며,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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