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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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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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21강_ 양재진 연세대 교수의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세 번째 섹션 ‘오늘의 정치와 경제’ 제21강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


양재진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라고 하며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지를 묻는다. 그 가운데 소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보건대 “기술 발전이 일자리 총량을 감소하게 한 적이 없다”라는 이해 아래 4차 산업혁명이 “노동 과정을 바꾸고,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특별히 “전통적 사용ㆍ종속 관계에 기반한 사회적 안전망의 보장을 받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수 있으며 그만큼 “고용 안전망의 혁신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전망한다. 아울러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0월 28일, 양재진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2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서론

노동이 인간의 활동을 의미한다면, 복지(福祉, welfare)는 그 결과로서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복지를 어떤 상태로 정의하지 않고, 그러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정부(혹은 국가)의 활동으로 본다면 그 역사는 오래지 않다.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인간의 노동력(勞動力, labor power)을 팔고 사는 노동 시장(勞動市場, labour market)이 성립한 이후의 일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때 국가가 개입하게 되면서 복지가 시작되었고, 복지 국가(福祉國家, the welfare state)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2. 노동과 복지의 역사

1) 산업화 초기, 노동과 복지

초기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는 토지와 유리된 채 도시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농민이 아니라 임금 근로자가 된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가서 무슨 일이든 하고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도시 근로자들은 전근대 농업 사회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험에 처했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거나 혹은 산업재해를 당해서 노동 능력을 상실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황이 닥치고 실업에 빠져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삶이 위태로워졌다. 생산력은 분명 크게 올라갔는데, 후대에 사회적 위험(social risks)라고 부르는 산업재해, 실업, 은퇴, 질병 등에 처하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국가별 사회 보험 도입 시기 / 자료: Christopher Pierson, Beyond the Welfare State?: The New Political Economy of Welfare, Cambridge, UK: Policy Press, 1991.

좀 뒤늦더라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대부분의 산업화 국가에서 산재, 노령, 의료, 실업 보험이 도입되었다. 그 적용 대상은 철강, 철도 등 기간 산업에서 시작해 대부분의 산업 근로자로 확대되었다. 한편, 사회 보험 방식이 아닌 일반 조세에 근거해 기초 연금과 의료 서비스 등이 제공되면서 자영업자와 농민을 포괄하는 보편주의적 복지 국가로 발전해갔다.

 

2)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와 복지

산업화 사회의 표준은 남성 일인 생계 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 즉 남성 외벌이 모델이었다. 남성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와 보살핌을 담당했다. 사회 보장 또한 남성 가장에 대한 소득 보장이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후기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식 기반 경제(Knowledge-based Economy)가 도래했다. 지식 노동에는 성별에 따른 직업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여성 고용이 급증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된 자율적 성원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이인 생계 부양자 모델(Dual Breadwinner Model), 즉 맞벌이 모델이 종전의 남성 일인 생계 부양자 모델을 밀어내고 표준이 되었다. 

많은 산업화된 선진국들이 이제 연금이나 실업 수당 등 소득 보장 정책에 더해 사회 서비스를 크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아동 수당, 학생 수당 등 가족에 대한 소득 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여성이 남성처럼 자신의 노동력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3) 근로 친화적 복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과 EITC

실업자에 대한 실업 급여 지급을 사후적인 ‘소극적’ 노동 시장 정책이라 하고, 상향적 재취업을 돕는 조치들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ies, ALMPs)이라 부른다.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은 장기 실업자, 이민 노동자, 경력 단절 여성, 청년 등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 취업 가능성을 높이고, 실업자를 노동 시장에 복귀시키는 정책으로 기능하고 있다.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은 유럽을 넘어 이제 미국과 한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은 대표적인 근로 친화적 사회복지 정책이 되었다.

미국 EITC의 설계: 소득 수준에 따른 급여 변화 (2020년) / 자료: Urban-Brookings Tax Policy Center, Internal Revenue Procedure, 2020.

또 다른 근로 친화적 복지가 미국에서 고안되어 세계로 퍼져갔다. 다름 아닌 근로 장려 세제(EITC, Earned Income Credit)이다. 현대 복지 국가는 위험에 빠진 자에 대한 소득 보장을 넘어, 근로를 유인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EITC가 대표적이다. 저소득자가 소득 활동을 하면, 세금을 떼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보너스를 주는 제도다. 연말정산 때 보면, 저소득 근로자는 소득세 낸 것이 얼마 되지 않기에, 환급받을 소득세가 거의 없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들에게 환급과는 별도로 보너스를 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저소득 구간에서 소득이 증가할수록 보너스 액수가 커진다는 것이다. 일을 더해서 소득이 오르면 오를수록 가처분 소득이 가파르게 증가하게 만들어져 있다(증감 구간, 그림 5의 ①). 그러다 일정 소득이 되면 보너스를 정액으로 지급한다(평탄 구간, 그림 5의 ②). 이후 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보너스를 서서히 줄인다(점감 구간, 그림 5의 ③). 최종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면 보너스 지급이 중단된다. 이제는 더 이상 저소득 근로자가 아니니, 졸업시키는 것이다. EITC는 저소득자의 가처분 소득을 올려주면서도 근로를 유인하도록 설계된 복지 제도인 것이다.

 

3. 자본주의 생산 체제, 복지 국가 그리고 노동과 복지의 관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상품화(commodification)이다. 노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실업 수당이나 연금 그리고 공공 부조 같은 복지 급여는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 효과를 낳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복지 국가는 인간다운 노동을 지향할지언정, 탈노동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탈노동이 되어서는 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복지 국가는 위험에 빠진 자에 대한 소득 보장을 넘어, 근로를 유인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EITC나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공보육 등 사회 서비스도 그러하다. 복지 국가가 탈상품화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 사회의 생산력은 서서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탈상품화에 쓸 재원도 마련하지 못하고 복지 국가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선진 복지 국가일수록 근로와 생산 활동을 장려하고, 완전 고용을 추구한다.

현대 복지 국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작동을 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소득 보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고용을 늘리고 노동자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하는 사회 투자적 복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포퓰리즘적인 복지로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례도 다반사이긴 하다. 그러나 선진 복지 국가에서는 복지가 고용을 매개로 경제와 선순환을 그릴 수 있게 복지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4. 노동과 복지의 미래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의 성립과 함께 태어났고,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미래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이에 복지는 어떻게 조응할까? 

1) 4차 산업혁명과 노동 시장의 변화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뜻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발전이 일자리 총량을 감소하게 한 적이 없다. 단기적으로 기술 실업이 일부 발생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고용은 늘어왔다. 4차 산업혁명이 양적 차원에서 노동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기술 발전이 가져온 변화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노동 과정을 바꾸고,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변화로 생산 과정이 바뀌면 노동 과정도 함께 변하게 마련이다. 직업(occupation)은 여러 직무(task)로 이루어져 있고, 기술 발전은 일자리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 내용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는 관련 직무를 대체하고, 신기술을 다룰 수 있는 직무 능력을 새롭게 요구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수요 변화와 더불어 생산 방식과 고용 관계 또한 변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업들은 자체 생산보다는 외주에 의존하고,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산 과정의 유연성을 높인다. 주문형 거래가 늘어나면서 독립 계약자, 시간제 노동자, 그리고 파견 근로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경제의 플랫폼화로 배달 앱 배달원, 크라우드 워커처럼 다수의 사업자를 상대로 근로를 하는, 그러하기 때문에,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종속적 자영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고용 안전망은 전통적 사용ㆍ종속 관계, 전일제 근무, 그리고 장기 고용 계약하에서 형성된 노동 시장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전통적 사용ㆍ종속 관계에 기반한 사회적 안전망의 보장을 받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향후 플랫폼 노동을 비롯해 새로운 형태의 고용과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근로자가 증가하게 되면, 사회 보험의 사각지대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고용 안전망의 혁신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2) 복지의 미래

기술 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직무 변화 또한 거세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와 직무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배양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노동과 복지의 현재와 미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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