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화’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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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화’와 ‘해석’
  • 위대현 이화여대 환경공학전공 교수
  • 승인 2023.11.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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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몇 년 전에 사회관계망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접하였다. 오데드 바릴티(Oded Balilty)가 2006년 2월에 촬영하여 2007년에 특종사진 부문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감동적’인 사진은 어마어마한 수의 경찰특공대 위력에 맞서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홀로 외로이 저항하는 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십 명에 달하는 특공대원이 몰려들어 시위진압용 방패를 밀어대지만 ‘결의’에 찬 그녀는 사진이 찍힌 바로 그 순간 마치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관계망에 이 사진을 게시한 이는 “이스라엘 경찰”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한 어머니”의 싸움에 경의를 표하며, “모든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감탄하였다. 아마도 그는 이 사진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주의적 지배를 관철하려는 “이스라엘 경찰”이라는 ‘유대인 국가기구’의 폭력을, ‘팔레스타인 해방’을 갈구하는 “한 어머니”의 ‘순수한 모성’이라는 심상을 통해서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거 사건의 심상 표현, 특히 ‘가족애’의 호소는 강렬한 감정적 효과를 거두는데, 이 게시물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처럼 역사, 즉 과거 사건의 표현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는 이러한 감동의 위력에 주목한다. 그는 『우리 안의 과거』라는 책에서 “과거의 표현에는 한순간도 빠짐없이 해석과 동일화 사이에 내재한 밀접한 연계와 긴장관계가 담겨 있다.”고 적으며 사람이 역사, 즉 과거 사건을 대하는 두 측면을 이야기한다. ‘해석’은 “다양한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 사상이나 제도의 계보, 인간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의 탐구”인 반면, “과거 사람들의 경험이나 감정에 대해 상상하고, 그들의 고통이나 죽음을 애도하며,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인 ‘동일화’는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이다. 모리스-스즈키는 근대에 정립된 ‘해석’이라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이 아니라 ‘동일화’라는 또 하나의 효과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고찰하며 “정서적인 차원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면 필사적으로 빠져나온 난민의 모습이나 자살폭탄 테러로 산산이 부서진 희생자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잠깐 비쳤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것의 역사적 원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면서도 그 분쟁에 국제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This photo by Oded Balilty shows his Pulitzer Prize winning photograph of Israeli settlers challenging security forces at the West Bank outpost of Amona on Feb. 1, 2006<br>
This photo by Oded Balilty shows his Pulitzer Prize winning photograph of Israeli settlers challenging security forces at the West Bank outpost of Amona on Feb. 1, 2006

이제 다시 앞서 언급한 사진으로 돌아가면, 이 사진을 둘러싼 감동이야말로 이 ‘동일화’라는 강력한 감정적 효과, 뿌리 깊은 “정서적인 차원”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적인 증거처럼 보일 것이다. 이 감정은 너무나도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인 양 스스로를 즉각 실현해낸다. 그러나 사실 이 사진을 둘러싼 모든 사태는 차라리 이 ‘동일화’가, 그 강력한 감정적 효과가, 저 뿌리 깊은 “정서적인 차원”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 사진은 본래 팔레스타인인이 소유하고 심지어 소유권까지 정상적으로 등기되어 있던 토지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불법적으로 건설했던 아모나(Amona) 정착촌―서안지구(the West Bank)의 라말라(Ramallah) 근교―에서 찍힌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러하다. 고귀해 보이던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한 어머니”는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식민주의적으로―덧붙이자면 이스라엘 법령 기준에서조차 부당하게―침탈한 유대인 정착민이었고, 폭력적 ‘유대인 국가기구’의 화신으로만 보이던 “이스라엘 경찰”은 팔레스타인을 침탈한 불법적 정착촌의 철거를 집행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새로운 맥락에서 살펴보면, 일견 아무리 위대하게 보이더라도 그 ‘어머니’의 ‘순수한 모성’, ‘가족애’와 ‘자기 땅’을 지키고자 하는 그 ‘결의’는 그저 침탈자의 적반하장에 불과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철거는 반전활동가들의 탄원을 이스라엘 법원이 받아들여 비로소 집행되었으며, 그 후에조차 아모나 정착촌을 둘러싼 투쟁은 장기간 계속되었다. 유대인 정착민이 아모나 정착촌을 떠나게 되는 것은 사진의 사건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2017년이 되어서이다. 올해 이스라엘의 우파 정권이 ‘사법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법원의 권한을 제한하였는데, 정착촌 건설에 걸림돌이 되던 사법부를 무력화하려는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욕망 역시 그 배후에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유대인 정착민과 극우세력, 그 동조자가 서안지구―군대가 진군하여 전투를 벌이는 가자지구(the Gaza Strip)조차 아니다―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이 전하길, 2023년 10월에만 서안지구에서 1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희생되었다. 이 모든 맥락이 ‘동일화’ 과정에서 감정의 배설로 그냥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진을 게시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주의적 지배를 관철하려는 “이스라엘 경찰”이라는 ‘유대인 국가기구’의 폭력을 ‘팔레스타인 해방’을 갈구하는 “한 어머니”의 ‘순수한 모성’이라는 심상을 통해서 고발한다는 발상이 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가 이제 분명해진다. 아무리 게시자의 주관적 의도가 그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진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그 최종적 귀결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희화화와 무력화이다. 피아식별조차 제대로 못하고 ‘동일화’된 엉망진창 인식에 기초한 서사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지난한 운동을 지탱하고 그것에 적절히 연대하게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섣부른 ‘동일화’는 운동의 전진은 고사하고 이렇게 그동안 쌓아올린 성과조차 모조리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동일화’라는 감정과잉의 시대에 차라리 우리는 스피노자(Spinoza)가 『에티카』에 남긴 경고를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연민의 감정에 의해 쉽게 움직여지고, 타인의 불행이나 눈물에 의해 동요되는 자는 나중에 스스로 후회할 어떤 일을 종종 행한다는 것을 여기에 덧붙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정에 근거해서는 선이라고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고, 또 우리는 위장된 눈물에 쉽게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석’이다. 유효한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는, 더욱 철저한 ‘해석’이다.

 

위대현 이화여대 환경공학전공 교수

• 교수노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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